[멕시코=심영재 특파원] 영국 블록체인 정보분석업체 엘립틱(Elliptic)에 따르면 이란 중앙은행(CBI)이 지난해 테더(USDT) 5억700만달러(약 7500억원)를 매입해 자국 통화 리알을 방어하고 국제 거래 결제에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엘립틱은 “이란 중앙은행이 확보한 USDT는 이미 모두 이동됐으며, 제재 회피보다는 안정적 환율 유지가 주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엘립틱이 21일(현지시각)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 중앙은행은 지난해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아랍에미리트(UAE) 디르함으로 결제하며 총 5억700만달러 상당의 테더를 매입했다. 이 거래는 ‘모덱스(Modex)’라는 중개업체를 통해 이뤄졌으며, 엘립틱은 이를 기반으로 중앙은행이 사용한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지갑 네트워크를 추적했다.
톰 로빈슨(Tom Robinson) 엘립틱 공동창업자는 “확보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란 중앙은행이 체계적으로 USDT를 축적해 최소 5억700만달러 이상을 운용했다”며 “이는 추정치의 하한선(lower bound)일 뿐 실제 규모는 더 클 수 있다”고 밝혔다.
이란 최대 디지털자산 거래소 노빗엑스(Nobitex)가 중앙은행의 주요 거래창구 역할을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친이스라엘 해커그룹이 노빗엑스를 공격해 9000만달러 상당의 디지털자산을 탈취한 이후, 중앙은행은 USDT를 트론(TRON) 네트워크에서 이더리움(ETH) 기반으로 옮기는 교차체인 브리지를 통해 분산시켰다. 이후 해당 자금은 탈중앙화거래소(DEX)와 중앙화거래소(CEX)를 오가며 다른 디지털자산으로 전환됐다.
엘립틱은 “이란 중앙은행이 USDT를 확보한 주된 목적은 외환시장에 달러 유동성을 공급해 리알 가치를 방어하는 데 있다”며 “노빗엑스로의 자금 이동은 이를 뒷받침한다”고 분석했다. “국제 제재로 SWIFT 결제망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란은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제재에 영향받지 않는 ‘디지털 달러 결제망’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분석업체는 이를 “장부 밖(off-book)의 유로달러 계좌”에 비유하며 “이란이 사실상 제재를 우회하는 ‘그림자 금융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엘립틱은 스테이블코인의 투명성과 프로그래머블 특성이 오히려 제재 집행을 더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모든 거래가 기록되므로, 오히려 제재 집행이 더 용이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테더(Tether)는 엘립틱 보고서 이후 “불법 활동에 연루된 지갑을 즉시 동결하고, 전 세계 62개국 310여 수사기관과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지난해 6월 이란 중앙은행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지갑 37백만달러 상당의 USDT를 동결했다.
테더는 “현재까지 불법 활동과 연루된 38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동결했다”며 “법 집행기관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테더의 투명성은 제재 회피가 아닌 법 집행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는 지난 한 해 동안 이란 내 디지털자산 거래 규모가 78억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란 내 디지털자산은 민간의 자산 보호 수단이자, 제재 하의 국가 금융 활동 수단으로 이중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