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김제이 기자]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산업의 초석이 될 디지털자산 기본법 입법이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정부안 제출이 여러 차례 지연되는 사이, 국회 주도의 입법 동력도 약화되며 산업 혁신 토대를 만들 법안 일정은 사실상 안갯속에 빠졌다는 평가다.
17일 디지털자산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해 국회 제출을 목표로 했던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 정부안이 아직 국회에 제출되지 않은 상태다. 금융위원회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은행이 과반 지분을 보유한 컨소시엄부터 허용한다는 기존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최후통첩’ 무색해진 정부안… 정부기관 간 기싸움에 입법 스케줄 ‘공전’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는 시작부터 매끄럽지 못했다. 당초 디지털자산 기본법 논의는 지난해 하반기 금융위원회의 정부안 제출을 기점으로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 등을 두고 정부 기관 간 이견으로 인해 입법 일정이 지연되기 시작했다. 특히 여당은 정부안의 조속한 제출을 수차례 독려했으나, 관계기관 사이 이해충돌로 약속된 시한은 번번이 미뤄졌다.
지난해 12월 초에는 여당이 “오는 10일까지 정부안을 제출하라”며 사실상 최후통첩에 나섰으나,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등 관계 기관 간 이견으로 무산됐다. 이후 제출 시점을 다시 지난달 22일로 잡았으나, 스테이블코인 발행 자격을 둘러싼 은행 지분 51% 요건과 협의체 구성 방식 등을 놓고 의견 차가 이어지면서 이날까지도 정부안은 국회에 제출되지 않았다.
정부안 지연이 반복되자 국회는 의원 입법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여당은 정부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안을 마련해 이달 중 의원 발의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정부 부처 간 조율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가 먼저 법안을 발의할 경우, 이후 시행령과 감독 체계 마련 과정에서 혼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리더십 실종’에 멈춰선 TF… 업계 “새 지도부, 규제 불확실성 해소 우선해야”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TF는 김병기 전 원내대표가 재임 당시 구성해 추진해 온 조직이다. 김 의원이 비위 의혹으로 지난달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면서 TF 운영 방향 역시 불투명해진 상태다. 이에 따라 향후 TF의 운영과 입법 추진 일정은 11일 열리는 원내대표 보궐선거 이후 새 지도부가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원내대표 보궐선거에는 한병도·진성준·박정·백혜련 의원이 출마해 4파전 구도를 형성했다. 임기는 약 4개월로, 새 원내대표가 디지털자산기본법을 포함한 주요 현안을 어떻게 정리할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시장에서는 신임 원내대표가 금융권 전반에 파급력이 큰 스테이블코인 관련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어떤 방향으로 처리할지 주목하고 있다. 특히 핀테크와 빅테크, 디지털자산 업계는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혁신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은행 중심·지분 제한’ 규제 역설… 글로벌 표준과 괴리된 한국형 입법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조율안에 담긴 일부 방향성은 글로벌 주요 국가의 제도 흐름과도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민간 주도의 경쟁 구조를 택한 해외 사례와 달리, 은행 중심 구조와 지분 제한은 시장 진입과 혁신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해당 안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시 은행이 컨소시엄 지분의 ‘50%+1주(과반)’를 보유하도록 하고, 디지털자산 거래소 대주주의 의결권 있는 지분을 기존의 절반 이하인 ’15~20%’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는 산업의 자율 혁신보다는 전통 금융권으로의 편입과 당국의 사후 통제에 초점을 맞춘 설계라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간 입장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민간 참여 확대를 통한 시장 활성화를 강조해온 반면,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영향과 금융 안정성을 이유로 보다 강한 통제 구조를 요구해왔다. 이견이 장기간 해소되지 않으면서, 입법 논의는 일정 지연을 넘어 구조적 정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 일정 역시 부담 요인이다. 오는 6월3일 예정된 지방선거로 인해 국회가 선거 모드로 들어갈 경우,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다시 입법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 한 국회 관계자 “이번 국회에서 큰 틀을 정리하지 못하면 입법 공백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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