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 외환보유액 4167억7000만 달러
#196억6000만 달러 감소…2008년 이후 최대폭
#한은 “외환보유액 충분…IMF는 신흥국 기준”
#한은 “1997년·2008년 위기때와 달라”
#CDS 프리미엄 코로나19 초기 수준으로 올라
#전문가들 “외환보유액 감소속도 빨라…위기 우려”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지난달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하는 등 고공행진을 지속하자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에 나서면서 ‘외화 비상금’인 외환보유액이 한 달 만에 200억 달러 가까이 증발했다. 올 연초부터 5개월 동안 감소한(256억7000만 달러) 것과 맞먹는 수준의 외환보유액을 한 달 만에 환율 방어에 써 버린 것이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고 순채권국가인 데다 경제 기초체력도 양호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 같은 경제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반면 전문가들은 ‘실탄’ 역할을 하고 있는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각종 경제 지표가 빠르게 악화하고 있어 국가 신용도가 하락할 수 있고, 경제위기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167억7000만 달러로 전월(4364억3000만 달러)보다 196억6000만 달러 감소했다. 2008년 10월(-274억2000만 달러) 이후 13년 11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으로, 역대 2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외환보유액은 3월(-39억6000만 달러), 4월(-85억1000만 달러), 5월(-15억9000만 달러), 6월(-94억3000만 달러) 4개월 연속 감소했다가 7월(3억3000만 달러) 반짝 늘었으나 다시 감소 전환하면서 8월(-21억80000만 달러), 9월(-196억6000만 달러) 등으로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보면 463억5000만 달러나 줄었다. 외환보유액이 단기간 이 정도로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외환보유액은 대외 지급결제와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경제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 외환보유액이 줄어들 경우 정책 여력이 줄어들어 환율이 급등하거나 급락 시 변동성을 방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올 들어 외환보유액이 급감하고 있는 것은 외환당국이 시장 안정화를 위해 환율 매도 조치로 개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통상 환율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급등이나 급락 등 시장 안정을 위협할 정도로 일정 방향으로 쏠리면 외환당국이 외환보유액을 사용해 달러를 사거나 팔아 시장 안정 조치를 취한다. 또 달러 강세로 인해 유로화 등 기타통화 외화자산의 미 달러 환산액이 줄어든 영향도 크다.

금융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한 달 동안 6.9% 급등했다. 이는 월간 기준으로 2011년 9월(10.43%) 이후 11년래 최대 상승 폭이다. 같은 기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미 달러화 지수인 달러인덱스(DXY)는 112.25로 8월(108.77)보다 3.2% 상승했다. 달러 상승폭 보다도 원화 가치가 2.3배나 더 가파르게 하락했다.

외환당국은 올 2분기에도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치솟으며 외환시장이 요동치자 150억 달러 이상을 내다 팔아 환율을 방어한 바 있다. 한은이 최근 홈페이지에 공개한 ‘2022년 2분기 외환당국 순거래’에 따르면 외환당국이 올해 1분기 실시한 외환 순거래액(총매수액-총매도액)은 -154억9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외환당국이 외환 순거래액을 공개하기 시작한 2019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외환시장에 154억900만 달러를 순매도했다는 뜻이다. 총매수액과 총매도액 등 세부 내역은 공개되지 않는다.

원·달러 환율은 3월 말 1212.1원에서 6월 말 1298.4원으로 올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전망에 달러 강세 기조가 이어지면서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해 외환당국이 매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위기 때 안전판 역할을 하는 외환보유액이 가파르게 감소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 권고 수준을 밑돌고 있어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IMF 권고치(6455억5000만 달러) 보다 2000억 달러 가량 부족하다. IMF는 연간 수출액의 5%, 시중 통화량(M2)의 5%, 유동 외채의 30%, 외국인 증권 및 기타투자금 잔액의 15% 등을 합한 규모의 100~150% 수준을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산출한다.

한은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외환보유액 절대 규모도 봐도 8월 말 기준(4364억 달러)으로 세계 8위 수준인 데다, IMF 기준은 신흥국 기준인 만큼 우리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금화 한은 국제국장은 “과거 외환보유액이 가장 큰 폭 감소했던 2008년(2000억 달러)과 비교해 외환 보유액이 두 배 가량 많아 우리 경제 펀더멘털 감안했을 때 충분한 규모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IMF의 외환보유액 기준은 신흥국 기준으로 IMF도 우리에게 외환보유액을 더 쌓으라고 추전하지 않는다. 우리와 규모가 비슷한 선진국의 경우 외환보유액이 아주 작다”고 말했다.

한은은 외환보유액이 큰 폭 감소하고 환율도 1400원을 돌파하는 등 급등하고 있지만,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등 과거 위기때와는 다르다는 지적이다. 외환보유액 감소가 국가 신인도 하락이나 경제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낮다고 보고 있다.

오 국장은 “종전에는 외환보유액 감소와 환율의 급격한 변동시 외환위기라고 평가했지만 최근에 원·달러 환율이 절하된 것은 우리의 요인이라기 보다는 대부분 글로벌 달러 강세 때문으로 환율의 큰 폭 절하만으로 외환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며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있고 단기외채 비율도 양호한 데다 우리나라가 순채권 국가라는 점에서 건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대외자산-대외부채)은 7441억 달러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또 같은 기간 준비자산(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비율도 41.9%로 3월 말(38.2%) 대비 3.7%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2012년 6월 말(45.6%) 이후 10년 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국가 신용도 위험 수준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높아지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는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이 지속되면서 한국 기초체력이 약해진 영향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CDS 프리미엄(5년물 기준)은 이달 4일 기준 54bp(1bp=0.01%포인트)를 기록해 지난해 말 보다 33bp나 올랐다. 올해 초 20bp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 큰 폭 상승한 것으로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초기때(57bp)와 비슷한 수준이다. 650bp까지 폭등했던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해서는 양호한 수준이다. CDS 프리미엄은 우리나라 대외신인도를 나타나낸 지표로, CDS 프리미엄이 높을 수록 부도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올 들어 외환보유액 감소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데다 환율도 1440원까지 올라서는 등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금융위기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 등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 연준이 금리를 예상만큼 올리고 통화스와프도 체결하지 않는다면 연말까지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커 우려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외환보유액 감소 속도에 환율 절하폭을 합한 숫자인 외환시장압략지수(EMP)가 높아지면 외환위기 시그널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는데,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큰 폭 오르면서 외환위기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율의 급속한 과도한 변동성을 막기 위해 달러 매도를 통한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은 필요하다고 보지만 추세를 꺾기 위한 개입은 외환보유액만 소진하고 효과도 없어 안 하는 게 좋다”며 “외환보유액이 줄어들 경우 다른 국가들에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상황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고, 이로 인해 외환위기가 발생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한편 시장에서는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는 등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은은 이와 관련 지난달 개입 효과가 유효했다며, 앞으로도 쏠림 현상 시 외환보유액을 통한 시장 개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오 국장은 “금융시장에서 한쪽으로 쏠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중앙은행이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지난달 개입방식이 유효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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