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일본 국채시장이 유동성 악화와 금리 급등으로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주요 자산운용사들은 이미 이전부터 일본 국채에서 발을 빼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불안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재정 구조와 수급 여건의 취약성을 인식한 투자자들이 선제적으로 위험 헤지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뱅가드자산운용은 올해 초부터 일본 국채 특히 장기물에 대한 매수를 중단했다. 이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조기 총선을 추진하고 감세 공약을 내놓기 이전에 내려진 결정으로 이후 일본 국채시장이 급격한 매도 압력에 직면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뱅가드는 그동안 일본 국채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인 시각을 유지해 온 대표적인 해외 투자자였다.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이 장단기 금리차를 축소시키며 장기 국채 수요를 자극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초장기물 매수에 나서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초장기 국채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고 변동성이 확대되자 투자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다카이치 총리의 감세 공약 발표 이후 일본 30년물 국채 금리는 단기간에 30bp 가까이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여기에 국채 입찰 부진과 생명보험사의 장기 국채 매도 움직임까지 겹치며 시장 내 수급 불균형이 빠르게 드러났다.
알레스 코우트니 뱅가드 액티브 펀드 부문 글로벌 금리 총괄은 “장기 일본 국채에는 완벽한 폭풍이 몰아쳤다”며 “재원 대책이 없는 재정 지출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 세수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소비세를 건드리는 정책은 재정 건전성에 실질적인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뱅가드의 매수 중단을 단기 이벤트 대응이 아닌 구조적 리스크 판단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 축소 속에서 초장기물 시장은 소수의 기관 투자자에 의존해 왔으며 재정 정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경우 매수 기반이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 이미 인식돼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일본 국채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터스는 최근 일본 국채에서 투자 기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고 핌코 역시 시장 변동성을 기회로 보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선도 자금 일부가 이미 이탈했다는 점 자체가 일본 국채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평가가 나온다.
코우트니는 향후 일본 국채 매수를 재개하기 위한 조건으로 보다 신중한 재정 운용 기조와 일본은행의 명확한 통화정책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는 일본은행이 3월이나 4월 금리 인상에 대해 보다 매파적인 입장을 분명히 할 경우에야 투자 판단을 다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