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문예윤 기자] 디지털자산(가상자산)이 개인 투자 수단을 넘어 기업과 국가 차원의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디지털자산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기관급 보안과 관리 체계를 제공할 수 있는 수탁·인프라 업체의 역할 중요성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기관이 디지털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와 운영 체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라진 비트코인 700억… 공공기관 관리의 ‘민낯’
2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검찰이 약 700억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분실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확산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의 디지털자산 관리 역량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경찰에서도 디지털자산을 분실한 뒤 외부 커뮤니티에 기술적 도움을 요청한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업계 안팎에서는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이 모든 시스템을 자체 구축하기보다는 검증된 거래소나 수탁업체와 협력하는 방식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강희창 포필러스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블록체인에 익숙하지 않은 기존 기관들 사이에는 여전히 이해의 공백이 크다”며 “디지털자산 인프라는 해외에서 개발된 경우가 많아 공공 부문과 규제 금융기관이 깊이 있는 협업을 하기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판 인프라’ 3파전… 기와·마루·펄스가 그리는 미래
이 같은 배경 속에서 국내 기업이 주도하는 디지털자산 인프라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해외 인프라의 경우 국내 규제와 제도 변화에 즉각 대응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는 만큼, 한국 시장과 규제 환경을 전제로 설계된 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9월 열린 코리아 블록체인 위크 2025(KBW 2025)에서 국내 최대 원화 거래소 업비트가 공개한 ‘기와’ 프로젝트는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업비트는 이용자가 복잡한 서버나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지 않아도 기와 체인 위에서 서비스를 실행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신뢰성 있는 오라클을 통해 디지털자산 시세와 거래량 데이터를 제공하고 기존 웹2 데이터도 온체인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온체인 기반 인증 수단을 활용해 개인정보 노출 없이 이용자 인증이 가능하도록 해 보안성을 높였다. 특히 한국어 백서를 제공해 접근성을 낮췄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같은 시도는 기관이 디지털자산을 직접 보관·운영해야 하는 부담을 줄이고, 표준화된 환경에서 관리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법과 기술의 중간 지대’… K-인프라, 제도권 소통의 통로 될까
해시드의 자회사 해시드 오픈 파이낸스도 최근 레이어1 블록체인 ‘마루’ 개발에 착수했다. 마루는 규제 친화적인 구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고객확인을 완료한 사용자만 접근할 수 있는 ‘규제 경로’와 누구나 접근 가능한 ‘개방 경로’를 분리해 운영하는 이중 경로 구조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거래 금액·본인 확인 상태·제재 대상 여부 등을 거래 시점에 자동으로 판단하는 ‘프로그램형 컴플라이언스 레이어’도 제시했다. 법과 규정 변화에 맞춰 정책을 유연하게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설명이다.
레이어1을 도입한 점 역시 눈에 띈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별도의 토큰 발행이 필요 없는 레이어2 중심의 접근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해시드 오픈 파이낸스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OKRW를 네이티브 가스 토큰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강희창 연구원은 “국가 단위 인프라의 경우 자국 통화를 네이티브 토큰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특정 자산을 장려하는 것처럼 비칠 경우 오히려 규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한투자증권 역시 토큰증권(STO) 사업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추진 중이다. 금융기관들과 함께 펄스 네트워크를 활용한 구조를 검토하고 있다. 펄스 네트워크는 한국 규제 환경에서 실제 증권을 발행·유통하기 위해 설계된 금융 인프라형 블록체인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연동성이 높아 복잡한 시스템 교체 없이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제도 변화에 따라 기능을 유연하게 개선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도 평가받고 있다.
업비트의 기와, 해시드 오픈 파이낸스의 마루, 금융권의 펄스 네트워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규제 환경을 전제로 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국내 디지털자산 인프라가 본격적으로 구축될 경우 제도권 기관과 입법자들이 자신의 언어와 프레임 안에서 직접 실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중간 지대’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