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규제 당국의 입장이다. ICO (Initial Coin Offering)을 통해 개발 자금을 모집하고 암호화폐를 발행해 주는 모델을 따르는 암호화폐는 굳이 Howey test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속성상 증권(Security)으로 볼 가능성이 매우 짙다. IPO (Initial Public Offering) 모델과 거의 유사하지만, 차이라면 국경 없이 자금을 모을 수 있어서 국가별로 자금을 모집해야하는 IPO모델에 비해서 훨씬 큰 자금을 짧은 기간에 모금할 수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매우 짧은 기간에 수배~수십배의 이익을 보고 exit할 수 있으므로, 새로운 투자처로 급부상 했었다. 첫번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만들어졌을 때만해도 암호화폐는 블록보상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그때는 거래소도 없었고 ICO라는 개념도 없었으므로, 이를 투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거래소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이더리움이라는 걸출한 ICO 플랫폼이 자리를 잡고 나서는 암호화폐는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진짜 돈과 바꿀 수 있는 증권 또는 주식과 매우 유사한 성격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최근에는 아예 증권형 토큰이라는 개념까지 나오며 아예 증권법 테두리 안에서 모금을 하기도 한다. 결국 현재의 ICO라는 모델은 국경 없는 IPO에 다름이 아니다는 결론에 이르며, 이렇게 보면 암호화폐는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산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국경의 장애 없는 자유로운 자본 이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암호화폐가 목표로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바로 탈중앙화라는 점인데, 탈중앙화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탈중앙화이다.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탈중앙화란 정부의 개입 없는 정치적인 의미의 탈중앙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p2p 플랫폼을 통해 이익의 공평한 분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탈중앙화란 거대 미들맨 제거를 통한 경제적 의미의 탈중앙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같은 단어이지만 전혀 반대의 지향점을 가진 다른 얘기를 하고 있으며, 시장에는 두가지 방향의 프로젝트가 혼재해 있다.

ICO를 통한 자금 모집에 이용되는 암호화폐는 자본시장법을 통해 규제해야하는 대상이 현재로서는 분명하지만,  ICO를 통해 자금을 모집하지 않고 직접 상장하거나 운영주체가 충분히 분산되어있는 경우 이를 규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생긴다. 앞서 언급한 주식 또는 증권으로서의 성격은 자금 모집에 사용하거나 운영주체가 분산되지 않아서 명확한 주체가 있는 경우에나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의 경우 운영주체가 충분히 분산되어 있어서 기술적으로도 규제를 할 대상을 정의할 수도 없고,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도 비트코인은 증권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결국 암호화폐는 무엇이다라고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고, 암호화폐가 표방하는 가치, 자금 모집 구조, 거버넌스 등을 고려해서 판단할 수 밖에 없으며, 이렇게 볼 때 암호화폐를 무언가로 정의하려는 노력보다는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모든 미들맨은 제거해야할 대상인가?

IT가 주도하는 현대 산업 구조에서 플랫폼 사업자의 위력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런 플랫폼 사업자의 특징은 콘텐츠를 자신들이 직접 생산하지 않고, 플랫폼 사용자가 콘텐츠를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네트워크효과를 통해서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수의 사용자가 플랫폼에 종속되게 된다.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처럼 느끼게 하면서, 광고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플랫폼 사업자(미들맨)가 취하는 이익이 너무나 큰데 비해 사용자에게 배분되는 이익은 너무나 미미하다.

아직까지는 사용자들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한계점이 있을 것이다. 그때 플랫폼 사업자를 대체할 수 있는 p2p 기술이 있다면 그 기술을 이용해서 피어(Peer)들 끼리 구축하는 플랫폼에서 서비스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그림이 아마 대부분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지향하고 있는 목표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모든 미들맨이 악의 축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수수료 경쟁으로 이미 낮아질 대로 낮아진 수수료로 서비스하고 있는 미들맨들은 사실 블록체인을 통해서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여기에도 경제 논리가 적용되므로, 충분히 낮은 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플랫폼은 그 자체로 이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비스의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이익을 가져가는 플랫폼이 아마도 블록체인 기반의 p2p 플랫폼의 경쟁상대가 아닐까? 블록체인의 혁신은 이렇게 경제적인 탈중앙화에서 시작해야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암호화폐 없는 블록체인도 가능할까? 그 블록체인이 제공하려는 서비스에서 수수료가 충분히 나온다면, 채굴자들에게 코인대신 법정화폐로 된 수수료를 나눠주면 되므로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 탈중앙화된 합의 알고리즘이다. 현세대의 블록체인 합의 알고리즘들은 탈중앙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작업증명이든 지분증명이든 결국은 자본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구조를 가지므로 탈중앙화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되면, 블록체인 기술로 플랫폼 사업자를 대체한다고 해도 별반 달라질게 없을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미들맨 중심의 플랫폼을 대체하려고 한다면 공정한 합의알고리즘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요즘 유행하는 위임지분증명 형태의 블록체인의 의미는?

요즘은 DPoS (Delegated PoS)라는 위임지분증명이라는 합의알고리즘에 기반한 블록체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DPoS 기반의 블록체인은 지분기반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소수의 노드가 PBFT기반의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형성해서 블록체인을 생성/유지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프라이빗/콘소시움 블록체인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앞서 프라이빗/콘소시움 체인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것은 블록체인의 본질과 매우 동떨어진 접근 방법으로 높은 신뢰/보안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공개 블록체인의 낮은 성능에 기인하며 이는 전세계에 분포하는 수많은 노드가 합의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태생적인 문제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런 DPoS 기반의 블록체인들이 본래 블록체인이 가지는 기술적인 혁신 요소는 제거하면서도, 암호화폐는 발행한다는 점이다. 많은 종류의 암호화폐가 성능을 위해서 이런 접근 방법을 택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서버풀에서 그냥 코인만 발행하는 형태인데, 데이터 구조가 블록을 해쉬로 연결했다고 해서 굳이 그걸 블록체인이라고 부를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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