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최창환 선임기자] 현재 위기 상황을 설명하면서 쓰는 용어가 은행 위기다. 금융 위기도 아니고 은행 위기란다. 미국 당국이 재빨리 수습에 나서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은행 위기가 진정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돈을 퍼부어도 구제금융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증시가 상승한다.

이러한 용어의 사용은 진실을 은폐한다. 부실한 은행 한 두 곳만 정리하면 세상은 예전처럼 잘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미국 정부와 연준이 그동안 보여준 능력을 보면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면 또 세상은 흥청망청 돌아갈 듯 보인다.

그러나 달러 위기로 보면 확 바뀐다. 달러를 관리하는 미국 정부와 연준의 능력을 의심하는 시각이기 때문이다.

달러는 현존하는 세계 경제 질서의 기반이다. 미 달러를 기축통화라 부른다. 축이 위기에 빠지만 세상의 모든 게 흔들린다. 자동차 바퀴 축이 빠진다고 생각해 보라.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렇다면 과연 달러 위기가 맞는가.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온다. 부자가 망해도 3대가 간다고 달러가 한번에 무너지고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가치를 담아두던 달러 항아리가 곳곳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금간 곳을 살펴보자.

망한 실리콘밸리은행(SVB)는 이번 위기의 본질이 아니다. 나름 잘해온 은행인데 갑자기 망했다. 고객에게 받은 돈도 잘 관리해 왔다. 미국 국채와 모기지채권에 투자했다. ‘안전자산’이라고 불린다. 특히 미국 국채는 금융시장에서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군림한다.

우리나라가 발표하는 외환보유고, 중국의 외환보유고 중 달러 자산 비중이 대부분 미국 국채로 이뤄져 있다.

SVB 사태는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가 안전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물론 국채를 만기까지 들고 있으면 원리금을 상환해 준다.(정말?) 그러나 미 국채를 시장에 팔면 문제가 발생했다.

국채의 시장가격은 수익률에 의해 결정된다. 이자율이 올라가면 국채가격이 떨어진다. 만기가 되면 본전을 찾을 수 있지만 저금리 상황에서 사둔 국채는 시장에 팔면 산 가격보다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한다.

SVB는 고객들의 예금인출에 대응하기 위해 국채를 팔면서 손해를 봤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뱅크런이 발생했다. 또 국채를 팔고 손실이 늘어나는 악순환으로 졸지에 부실은행으로 전락했다.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때문에 망했다.

위기의 원인은 미국 국채 때문이다. SVB가 헤지를 잘하고 국채보유가 적었다면 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문제의 원인을 SVB로 돌리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중에 돈을 너무 많이 풀었다. 그렇게 풀린 돈이 국채가 아니면 투자할 곳도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미국 당국이 이를 잘 알고 있다.

미국 예금보험공사(FDIC) 마틴 그루엔버그 의장은 미국 은행들의 미실현 손실이 6200억 달러(820조 원)에 달한다고 CNN 인터뷰에서 밝혔다. 막대한 미국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보유한 은행들의 평가손 규모가 6200억 달러라는 얘기다.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연준이 제로금리 수준에서 5%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올렸기 때문이다.

미국 은행들이 막대한 손실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가 미국 정부의 국채와 미국의 중앙은행 때문인 것이다. 개별은행의 잘못으로 돌리기에는 미국 정부와 연준의 잘못이 너무 크다. 이들은 달러 시스템을 유지하는 두 기둥이다. 미 정부의 국채, 연준의 달러 발행이 서로 맞물려 있다. 이들이 돈을 마구 찍어내고 금리를 낮춰 잔뜩 거품을 만들었다가 섣부르게 금리를 올려 이를 터트린 것이 현실이다.

달러가 발행되는 경로는 다음과 같다.

미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한다. 연준이 매입한다. 연준의 대차대조표에 국채가 올라가고 달러가 미 정부를 통해 시중에 풀린다. 달러의 신뢰가 미 정부의 신뢰인 국채에 기반한 것이다. 국채가 미정부의 신뢰를 상징한다. 곧 미국 국채는 달러이고 달러는 기축통화다. 고로 국채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것은 달러에 대한 신뢰가 깨치는 것이다.

달러의 신뢰는 다른 곳에서 이미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현재 달러는 페트로(원유) 달러라고 불린다. 닉슨이 1971년 금태환을 중단한 뒤 금과 연계된 달러의 신뢰는 사라졌다. 미국 정부는 74년 사우디와 협정을 맺어 모든 원유결제는 달러로 하도록 했다. 사우디 왕정의 안보를 지켜주는 댓가다.

이 때문에 달러는 살아났다. 기름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달러는 기축통화자리를 유지했다. 페트로 달러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과 원유를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다는 신호를 여러차례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중재로 중동지역의 앙숙인 이란과 외교관계를 재개키로 합의했다. 미국의 힘이 예전 같지 않고 원유의 달러 독점 거래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미국은 국채를 통한 달러 발행, 원유 결제 대금을 독점하는 페트로 달러, 군사력을 무기로 한 안보협력을 통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전세계는 미국이 뿌린 달러에 기대 경제를 운영하고, 달러가 없으면 외환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에 처했다. 달러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던 세상이다.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한다.

너무도 당연한 최고의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가 과연 안전한 것인가.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이미 조용하게 행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각국 정부의 금 매입 규모는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중앙은행들이 미국 국채를 팔았다. 두 사실을 연결하면 미 국채를 팔고 금을 산 것이다.

세계금협회(WGC)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량은 1136t으로 1967년 이래 55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튀르키예와 중국, 이집트, 카타르 등 중앙은행은 지난해 금을 추가로 사들였다고 공표했지만 각국 중앙은행 금 매입 가운데 3분의 2는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 재무부 자료를 인용해 중국의 1월 말 기준 미국 국채 보유액이 8594억달러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전년 동기(1조338억달러) 대비 16.9%, 전월(8671억달러) 대비 0.9% 줄어든 것이다.

2009년 5월(8015억달러) 이후 14년 만의 최저치이기도 하다. 일본 중앙은행도 지난해 말 엔화 환율방어를 위해 수백억 달러의 미국채를 매각했다.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미국채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이스라엘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 배치비율을 조정하면서 위안화와 다른 3개 통화를 외환보유액에 포함시키면서 달러와 유로화 비중을 낮췄다.

중국은 미국 달러패권에 대해 노골적으로 도전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지난해 12월 “상하이 석유·천연가스 거래소(SHPGX)를 충분히 이용해 원유와 천연가스의 위안화 결제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우디와도 협력하고 러시아와는 루블화와 위안화로 결제하고 있다. 국제무역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위상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번 ‘은행 위기’는 이런 상황에서 발생했다. 달러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달러에 대한 도전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달러의 취약성을 노출하면서 일어났다. 그래서 달러 위기의 시작을 보여주는 것이다.

CNBC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비트코인이 상승했다”는 시황 기사를 내보냈다. CNBC는 “비트코인이 가치있는 대체자산으로 서사적인 변화가 발생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위험 속에서 나를 지켜줄 안전한 피난처로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역사 속에서 정부와 은행들은 무수히 시민들의 신뢰를 배반했다.

최초로 기축통화를 만들었던 아테네는 이를(드라크마 은화) 기반으로 세계를 호령했다. 로마도 데나리우스 은화를 기축통화로 만들었다. 세계를 지배했던 강대국들은 자신들이 만든 기축통화와 번영을 함께 했고 통화의 몰락과 함께 시들어 갔다. 과거 금속에 기반한 통화는 함량을 속인 과다한 발행에 따른 가치 하락이란 유사한 경로를 밟아왔다.

미국 달러는 예외일까? 달러를 대신할 무엇인가가 있을까? 비트코인을 주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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