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교환 사이트에서 만나서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이런 곳에까지 사기꾼이 있을 줄 전혀 몰랐죠.”

암호화폐 ‘로맨스 스캠(Romance scam)’ 피해자인 A씨는 아직도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질 않는다. 로맨스 스캠은 피해자에 대한 이성적 관심을 가장해 호의를 산 뒤 이를 악용하는 신용 사기 일종이다.

A씨는 언어교환 사이트인 ‘마이랭귀지익스체인지’를 통해 32세 중국 여성 니니(가명)을 알게됐다. A씨는 모바일 메신저 앱 라인(LINE)에서 니니와 언어를 교환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니니는 현재의 고급 인맥을 갖추기까지 다사다난했던 성장사를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면서 속마음을 터놓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니니는 큰 규모의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고 사진까지 보여줬다. A씨는 니니의 말을 믿었다.

'당신이니까 알려주는 거에요'…선뜻 믿고 투자했다가 낭패
니니(가명)가 마이랭귀지익스체인지 사이트에 올린 자기 소개 글이다./출처=피해자 A씨.

둘의 신뢰가 쌓이자 니니는 “아는 사람끼리만 은밀히 참여하는 투자가 있다”며 A씨에게 투자를 권했다. A씨는 “(니니가)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월 스트리트에서 잠시 일한 적도 있는 중국 명문대 교수가 자기한테 알려준 정보라며 씨티코인(CITI)에 투자하라고 제안했다”며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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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니의 라인 프로필 사진이다./출처=피해자 A씨.

이전까지 A씨는 암호화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니니는 암호화폐 구매 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A씨는 “처음에는 후오비 코리아에서 테더(USDT)를 구매해 씨티코인을 샀다”며 “수익이 나는 걸 보고 혹해서 빗썸에서 비트코인(BTC)을 추가로 매수해 씨티코인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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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BTC) 마켓과 테더(USDT) 마켓에서 매수 가능한 코인은 씨티코인이 유일하다./출처=citictb.cn 사이트 화면 캡쳐

‘citictb.cn’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면 비트코인과 테더로 씨티코인을 살 수 있다. A씨가 투자한 금액은 수천만 원 어치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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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코인을 씨티은행에서 발행한 암호화폐라고 설명하고 있다./출처=citictb.cn 사이트 화면 캡쳐

해당 사이트에선 씨티코인을 씨티은행에서 발행한 암호화폐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씨티은행은 지난해 3월 씨티코인 프로젝트를 접는다고 발표했다. 씨티코인 발행 본사로 나와 있는 주소 ‘뉴욕 399 파크 애비뉴(399 Park Avenue, New York City, USA)’는 지난 2016년까지 씨티그룹 본사가 위치했던 곳이다. 현재 씨티그룹 본사는 뉴욕 388 그리니치 스트리트(388 Greenwich Street)에 있다.

A씨는 “이번 달 초 유사한 피해 사례를 다룬 기사를 보고서야 사기 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아예 출금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일시적으로 거래가 정지됐다는 화면만 나온다”고 전했다. 그는 “그녀 말 대로라면 한 15배에서 20배 수익이 났을 것”이라며 “(그 말을 믿다니) 어리석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얼마 전 경찰에 피해를 신고했다.

암호화폐 이용 로맨스 스캠 피해 사례 속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접근해 친분을 쌓은 뒤 돈을 뜯어내는 사기 기법인 로맨스 스캠이 암호화폐 시장에 침투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실제 A씨의 사례처럼 암호화폐 투자사기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는 “지난 달 중순을 기점으로 총 4건의 유사한 스캠 피해 사례를 적발했다”며 “이 가운데 3건의 피해자 추정 인출 시도를 막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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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팍스에서 조사 및 확인한 암호화폐 스캠 사이트 리스트./출처=고팍스.

“피해 인지하면 바로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권단 디케이엘파트너스(DKL Partners) 변호사는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한국인에게 범죄를 저지르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며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경찰에 바로 신고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암호화폐 투자 사기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디지털 자산 피해 사건 추적 서비스도 등장했다. 비용을 내면 암호화폐가 이동한 경로 등을 분석해 보고서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그러나 피해자가 이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면서까지 피해 사실을 입증할 필요는 없다. 권 변호사는 “피해자가 수사 협조 차원에서 이 같은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해당 보고서가) 가해자 특정에 항상 유용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만약 해당 보고서로 최종적으로 암호화폐가 흘러 들어간 지갑 주소를 파악했다 하더라도 지갑 소유주가 누구인지까지는 암호화폐 특성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거래소 지갑이라면 수사가 비교적 수월하지만 해외 거래소 지갑이라면 국제사회 공조가 필요하다. 만약 거래소 지갑이 아닌 개인 지갑으로 암호화폐가 송금됐을 경우엔 지갑 소유주를 특정하기 힘들다.

디센터 도예리 기자

https://www.decenter.kr/NewsView/1ZAFYMM6JL/GZ03

※디센터와의 전제 계약을 통해 게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