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타 연구소 최창환 소장] 우리나라 가상화폐 시장은 안갯속에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한 달 안에 은행을 설득해서 계좌를 받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러나 감독당국이 정한 일정 안에 은행 계좌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거래소는 극히 일부다.

# 특금법 시행 앞두고 뒤숭숭한 암호화폐 업계
은행은 금융위원회 눈치를 본다. 계좌를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잘못되면 모든 책임은 은행이 져야 한다는 금융위의 으름장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이런 무책임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금융 경제 기자로 정부 부처 출입을 여러 해 했는데 이런 경험은 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가상화폐 시장은 기득권 관료들이 망치고 있다. 새로운 시장에 대한 비전이나, 육성책은 바라지도 않는다. 원칙과 기준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금융위원회가 밀어붙이고 있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의 실행과 거래소 신고 제도는 날림에 졸속이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장면을 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1. 8월 16일 정부는 현장 조사 및 컨설팅 결과 25개 가상자산거래소 중 신고 요건을 충족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고 발표했다.

도대체 기준이 무엇이고, 무엇이 미흡한지도 불투명하다. 신고요건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6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이용하는 ‘실체를 가진 거래소와 시장’을 ‘투명하지 못한’ 신고 요건 몇 개로 생과 사를 가르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 지 모르겠다.

동네 슈퍼가 문을 닫아도 불편한 게 현실이고 문닫은 업주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고객의 재산손실 가능성과 종업원들의 일자리 상실이 뻔한 조치를 관료들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실행하고 있다. 위험할 수 있으니 거래소를 옮기라고 이미 경고했다는 면피용 변명만 준비하고 있다. ‘거래소=사기꾼, 투자자=투기꾼’이란 게 당국의 기본인식이다.

이미 은행에서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일부 대형 거래소들만 살아남는다는 얘기도 있다. 어떤 잣대인지 몰라도 관료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폐쇄와 생존결정은 독과점과 특혜시비를 부를 게 분명하다.


다른 거래소 고객들에게 대형거래소로 옮기면 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무 기준이 없다.

왜 젊은 투자자들이 가상자산에 몰렸나 생각해보자.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희망을 잃어서다. 이들은 나름 희망과 기준을 가지고 거래소를 선택해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의 그런 희망과 기회를 박탈하려 하고 있다.

#2.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제때 신고를 안 하면 모든 가상화폐 거래소가 폐쇄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잘못된 투자를 하는 애들을 어른들이 가르쳐야 한다”고도 했다.

미국은 이미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같은 유수의 금융회사들이 비트코인 전용 상품을 팔고 있다.

그런데도 ‘애들이 투자하는 투기 상품’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국민들을 가르침과 교화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금융당국의 인식 자체가 국민을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이다.


특금법의 필수 요건인 은행 계좌도 따지고 보면 본질이 아니다. 감독당국은 책임 지지 않으면서 민간 은행에 책임을 떠넘기는 수단일 뿐이다.

나스닥 상장사인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미국의 거의 모든 민간 상업 은행과 계좌가 연결돼 있다. 은행 계좌는 여러가지 입출금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코인베이스와 거래하는 미국 은행들의 고객 계좌 연결 화면

금융위는 가상자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은행을 통한 간접 감독을 위해 은행 계좌를 무기로 쓰고 있다. 책임은 지지 않고, 감독권만 휘두르려는 비겁한 방법이다.

#3. “당신은 은행을 뚫지 못하니, 우리에게 거래소를 넘기세요.”

중소형 가상화폐 거래소의 오너들은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회사를 넘기라는 요구 때문이다. 금액까지 제시하면서 하는 말이 “당신은 은행을 뚫지 못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금융당국에 선이 닿는다면서 회사를 팔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정경유착, 금권로비 시절 얘기인가.

실제 이런 커넥션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투명한 정책 집행과 책임 지지 않는 금융당국의 행태 때문에 사기꾼들이 출몰하는 것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수긍할 수 있는 은행 계좌 발급 절차가 마련돼 있다면 이런 이들의 말에 솔깃할 이유가 없다.

신고의 핵심이 은행 계좌를 얻는 것인데, 금융위 눈치만 살피는 은행들은 어떤 조건이면 되는 것인지 속 시원히 얘기해주지 않는다.

입출금 수단 중 하나인 계좌 연동 문제를 놓고, 트레블 룰(가상화폐 송금자와 수신자를 추적하는 것)이 완비될 때까지 계좌 입출금을 하지 말라는 황당한 요구까지 한다. 금융위가 은행을 통한 간접 감독을 하려고 하니, 가상화폐나 디지털 자산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은행들이 이런 갑질을 하게 된다.


디지털 자산시장이 발달하고, 탈중앙금융이 확산하면 기존 은행은 설 자리가 좁아진다. 혁신주체인 가상화폐산업이 혁신대상인 은행에 감독을 받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

#4. 모피아와 금피아의 거래소행

돈이 있고, 정보력이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금융당국과 나름의 ‘라인’을 만들려고 혈안이다. 기재부, 금융위, 금감원 출신 고위 공직자들을 서로 모셔가려는 것. 이들은 이미 대형 로펌과 은행들에도 포진해 있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로비스트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직 모피아(금융위 출신)나 금피아(금감원 출신)를 영입한 로펌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이들을 통해 ‘로비’를 한다. 이들의 활동은 공식적으로는 자문이지만, 실제로는 업계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인허가 편의를 봐주는 일을 한다.

정부 서울 청사

금융위가 지난 3년간 전 세계에서 이뤄진 가상자산과 디지털 자산시장의 혁신을 세심하게 들여다봤다면, 지금과 같은 특금법 파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디지털 자산은 인정하기 싫지만, 시장이 이렇게 커지니 세금도 받고, 감독권도 행사하려고 졸속으로 특금법을 실행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들 금융모피아에 목을 맨다. 디지털 자산이 전혀 이 산업에 공헌하지 못한 모피아에게 새로운 밥줄이 된 셈이다.

관료 집단이 시장 발전을 저해하고, 자기 이익에 몰입하는 동안, 국민의 대표인 국회는 뭘 했을까. 지난 3년간 가상화폐를 인정하고, 제도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는 묵묵부답이던 정치권은 2030세대 표를 의식해서 앞다퉈 관련 법안을 내놓고 있다.

법안이 충분한 준비 없이 마련되다 보니 각론에서 엉성하기 짝이 없다. 가상화폐가 증권인지, 유틸리티 토큰(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토큰)인지, 스테이블 코인인지조차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법 안에서 규제를 하려 한다.

미국의 경우는 가상화폐가 새로운 혁신기술로 새로운 먹거리를 만든다는 데 동의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재무부, 연준, 국세청, 사법기관 등이 세밀하게 규제를 다듬고 있다. 한두 달 뚝딱 공부해서 업권법(산업관련법률)을 내놓을 사안이 아니다.


# 특금법 시행을 차기 정부로 넘겨야

지금이라도 정치권은 미래 먹거리인 블록체인에 기반한 가상화폐를 성장산업으로 인정하고 , 기존 자본시장법이나, 금융 관련 법안에서 어떤 지위를 부여할 것인지부터 토론해야 한다. 그리고 가상자산업사업자를 규정하고, 관리하는 업권법을 만드는 것이 순서다. 특금법에 의한 거래소 신고는 이 모든 절차 중 일부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특금법 실행을 연기하고, 감독당국과 업계, 정치권이 진심을 다해 관련 규정을 정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국민들의 손해와 종사자들의 억울한 실직을 막고 산업발전도 함께 챙겨야 한다.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금융위원장으로 지명된 고승범 내정자의 합리적인 결정을 기대해본다.

* 본 기사는 8월 28일 한국일보 [기승전 비트코인] 칼럼에 가상화폐 거래소 정리 코앞인데..기준도 원칙도 없다 제목으로 게재된 것입니다. 블록미디어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제목을 수정하여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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