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최창환 선임기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누구인가? 사토시를 도와 비트코인 탄생에 기여한 할 피니가 사실은 진짜 사토시라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자칭’ 사토시 진위 재판에서 공개된 사토시의 이메일이 조력자 할 피니(Hal Finney)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증거라는 것.

2013년부터 암호화폐 투자를 해 온 시넴하인 벤처의 파트너 아담 코크란은 24일(현지 시간) 엑스에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이메일 내용을 상세히 분석해 이같이 주장했다.

자신이 사토시라고 주장하는 크레이그 라이트와 소송을 진행 중인 크립토 오픈 특허 동맹(Crypto Open Patent Alliance, COPA) 측 증인인 초기 개발자 마티 말미(Martti Malmi)와 작업증명(POW) 원리를 창안한 아담 백은 사토시 나카모토와 직접 주고 받은 이메일을 23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재판에서 최초로 공개했다

아담 코크란은 사토시가 2009년 7월에 다른 직업을 갖게 됐다고 말한 것에 주목했다. 이 시기는 할이 PGP사에서 근무하던 시기와 같은 시기다. 또 건강이 악화돼 8월에 루게릭병으로 잘 알려진 ALS(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진단을 받는다. 사토시는 이메일에서 “(지금부터는 다른 일로) 바쁠 것”이라고 말했다. 사토시와 할을 연결하는 근거다.

PGP사는 컴퓨터 파일을 암호화하고 복호화 하는 PGP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온라인 통신에서 보인 및 인증을 해준다. 필 짐머만이 창업자다. 필 짐머만은 이 기술과 관련해 미국의 체제를 위협했다는 이유로 무기 수출 통제 위반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처했었다. 짐머만은 실제 기술은 할 피니가 대부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2010년 3월 7일부터 5월 16일 사이 사토시는 바쁘다며 사라졌다. PGP사가 시만텍에 매각되고 할 피니의 건강이 악화된 시점이다.

2010에서 2011년 사이에 상위 비트코인 지갑주소가 생성되고 인출되지 않았다. 사토시는 2011년 비트코인 사이트 관리자 비밀번호를 제공하는 PGP 서명과 함께 마티 말미에게 메일을 보낸다.

2013년 3월 19일 할 피니는 ‘비트코인과 나’라는 메일을 공개했다. 2009년 ALS 진단을 받은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사토시가 사라진 시점과 거의 같은 시기다.

그는 편지에서 자신이 “2011년초 은퇴했다”고 말한다. 할 피니는 2010년 PGP사가 시만텍에 인수된 뒤 직장이 없었다. 할 피니는 1년간 어디서 무엇을 했고, 그리고 은퇴했다고 한 것인가.

할 피니는 2010년에 비트코인을 “재발견” 하고, 코인 대부분을 상속인을 위해 오프라인 지갑으로 옮겼다고 주장했다. 위에서 언급한 2010년 말부터 2011년 중반까지 자금이 옮겨졌지만 유출은 없는 대규모 지갑(사토시 지갑으로 알려짐)을 설명할 수 있다.

2013년 3월 22일 할 피니는 프로젝트에서 “우아하게 사라지기” 로 한 사토시의 결정을 칭찬했다. 사토시는 누구에게도 떠나는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사토시가 위키리크스 논란을 우려한 이유도 짐머만의 경험에서 유추 할 수 있다. 할 피니는 PGP와 관련된 자신의 역할이 잊혀지기를 원했다.

사토시는 영국인으로 알려져 있고 영국식 문장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가 활동한 시간의 대부분 PST(태평양 표준시)이다. 또 사토시는 마티 말미에게 보낸 메일에서 EU 회원국인 영국인이라면 알 수 있는 유럽의 결제옵션에 대해 질의했다. 또 그는 영국식 철자와 미국식 철자를 섞어서 쓰고 있다. 한 가지만 쓰는 게 당연한데 이같은 현상은 자신을 숨기려는 시도가 있음을 암시한다.

비트맥시들은 할 피니가 사토시라는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할은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보다, ‘비트코인이 무엇일 수 있는지’ 보았고 비트코인의 미래에 대해 진보적이기 때문이다.

할 피니는 한발 물러서서 비트코인을 모든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할 피니는 모두를 사토시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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