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리플사와 리플 공동창립자 브래드 갈링하우스·크리스 라슨을 고소하면서 업계가 증권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SEC는 이번 고소에 역대 크립토 관련 기소문 중 가장 긴 71페이지 가량을 할애하며 XRP가 증권이라는 근거를 댔다. 또한 브래드 갈링하우스 CEO와 크리스 라슨 이사장이 XRP 판매를 통해 6억 달러 규모의 사익을 취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피고인 현재까지 146억개 이상의 XRP 판매…공동 창립자들은 6억 달러 사익 챙겨”

SEC는 기소문에서 우선 피고인들의 XRP 판매 현황을 언급했다. SEC 측에 따르면 적어도 2013년부터 기소문이 작성된 시점까지 피고인들은 미등록 증권인 XRP를 최소 146억개 이상 판매했다. 해당 XRP 판매는 현금이나 기타 자산을 받는 대가로 이뤄졌는데, 이를 법정통화 가치로 환산하면 약 13억 8000만 달러 규모다.

이에 대해 SEC는 “리플 공동창립자 브래드 갈링하우스와 크리스 라슨은 XRP판매 과정에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도 않고, 투자자들에게 판매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리플사 내부자들이 불투명한 정보로 장내에 XRP를 지속적으로 판매했다”며 “이 과정에서 이들이 개인적으로 얻은 이익도 약 6억 달러다. 이는 증권법 제5조 (a)항과 (c)항을 위반한 사례다”라고 설명했다.

증권법 제5조 (a)항과 (c)항은 SEC가 미등록 증권을 고소할 때 공통적으로 적용하던 조항이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증권으로 간주 됐을 경우, 증권신고서 없이 증권을 판매하면 불법이 된다. 이때 증권 판별 여부는 1946년부터 적용된 하위 테스트(Howey test)를 통해 가려낸다. 하위 테스트는 ▲돈의 투자 ▲공동의 사업에 투자 ▲투자 수익의 기대 ▲타인의 노력에서 비롯된 수익 네 가지로 구성돼 있다. 네 가지 사항에 모두 해당하면 증권으로 판명되는 셈이다. 지금까지 SEC가 증권법 제5조 (a)항과 (c)항 위반을 이유로 고소한 주요 크립토 프로젝트(센트라·텔레그램 톤·KIK 등)는 모두 패소한 사례가 있다. 패소하게 되면 미국 내 업체에서 더 이상 코인을 취급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증권법 제20조 (d)항에 따라 벌금이 함께 부과된다.

#”XRP가 증권이 될 수 있다고 이미 조언을 받았는데도 판매 강행했다”

둘째로 SEC는 리플 공동창립자들이 이미 변호사나 주변 관계자들에게 XRP가 증권이 될 수 있다고 조언 받았음에도 판매를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2012년 초에 XRP의 구조상 투자 계약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법률적 조언을 받았음이 드러났다”고 언급했다. 이어 SEC는 “리플 공동창립자는 해당 조언을 무시하고 증권 등록없이 XRP 판매를 시작했고, 결국 재정적인 관점에서는 최소 13억 80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하며 전략적 성공을 거뒀다”며 “해당 자금이 전부 어떻게 쓰였는지는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XRP는 화폐가 아니라 증권…리플사 사업 수익의 대부분은 XRP 판매”

한편 SEC는 XRP를 화폐가 아닌 증권으로 본 이유를 리플사 사업 수익의 대부분이 XRP ‘판매’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플 측은 ODL(구 xRapid) 서비스 등으로 사업 수익을 낸다고 주장했지만, 조사 결과 ODL 서비스로 인한 수익은 거의 없었다는 게 SEC의 설명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XRP와 리플사는 관계가 없다고 이야기했으나, 정작 리플사 수익의 대부분은 XRP 판매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증권법 상으로도 XRP는 화폐로 볼 수 없다는 게 SEC의 입장이다.

이외에도 ODL 서비스 과정에서 협업을 맺은 파트너십 업체에게 XRP를 법률적 절차없이 지급한 이슈가 언급됐다. 이에 대해 SEC는 “리플사는 2018년 12월부터 2020년 7월까지 ODL 서비스 파트너십을 맺은 기업에게 최소 3억 2400만개의 XRP를 지급했다. 이때 리플사는 각 업체에게 XRP를 보유하라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되레 XRP를 시장에 매도하게끔 방조했다”고 밝혔다.

#”XRP 대량 매도하면서 HODL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SEC는 갈링하우스 리플 CEO(최고경영자)가 여러 인터뷰에서 XRP 가격을 매우 낙관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을 눈여겨봤다. 이에 대해 SEC는 “2017년 12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갈링하우스 CEO는 XRP 가격을 매우 낙관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 그는 이미 6700만 개의 XRP를 매도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2018년에는 XRP를 ‘HODL’하는 쪽에 있다는 인터뷰를 진행한 사례도 덧붙였다. HODL은 미국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신조어로, 한국으로 치면 ‘존버’와 유사하다. SEC는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법원에 피고인들을 증권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Parker’s note XRP와 다른 암호화폐의 미래는?

그동안 SEC에게 고소당한 주요 프로젝트는 모두 패소했다는 점에서 향후 미국인이나 미국을 대상으로 한 XRP 유통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본 사건은 제이 클레이튼 SEC 위원장의 사임이나 바이든 정부 출범과는 별개로 계속해서 진행되는 재판이다. 결국 리플사가 미국과 미국인을 제외한 영역에서 의지를 가지고 XRP 사용처를 확보하거나, 본래 리플 측의 말처럼 리플사와 XRP는 별개로 가야 장기적인 XRP 펀더멘탈이 확보될 수 있다. 올해 에미 요시카와 리플 글로벌 운영 책임자는 조인디와의 인터뷰에서 “리플은 XRP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다. XRP는 오픈소스이며 탈중앙화돼 있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데 막상 XRP가 독립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프로젝트와 달리 XRP는 탈중앙 커뮤니티 기반이 강하지 않은 편이라, 리플사의 조치가 없으면 XRP 펀더멘탈이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점들과 투자자 리스크를 고려해 SEC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재 XRP 투자자들은 “XRP는 텔레그램 톤과는 달리 이미 여러 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실제로 증권법 위반이 결정되면 투자자들의 피해가 막대할 것이므로 법원도 쉽게 판결하지 못할 사항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은 그 규모상 암호화폐 증권 판별 기준에도 큰 이정표가 될 예정이다. 아직 판결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기소문을 읽어보면 운영사와 코인 간 탈중앙성 여부가 핵심요소로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곧, 어떤 코인이든 운영사와의 탈중앙성을 확보하지 못한 프로젝트는 SEC의 레이더 안에 모두 들어갈 수 있다. 운영사 비즈니스 모델의 거의 유일한 채널이 토큰 판매인 경우에도 SEC의 제재를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조인디 박상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