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김진배 기자]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는 고객 예치금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고객 예치금 대비 현금 보유량이 제각각이었다. 예치금 대비 현금 보유량이 떨어질 경우 투자자들이 출금을 못하는 등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증권사의 ‘고객예탁금 반환준비금’과 같은 법적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국내 4대 거래소의 보유 현금 대비 고객 예치금 비율은 모두 제각각이다. 국내 4대 거래소라 불리는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의 고객 예치금 대비 보유 현금 비율은 모두 100%를 넘는다. 업비트와 빗썸(126%)이 같은 수치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으며 코빗(104%), 코인원(100.4%)이 그 뒤를 이었다.

거래소들의 현금 보유 비율이 제각각인 이유는 명시된 기준이 없어서다. 암호화폐 거래소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현금 보유 의무나 가이드라인 등의 명학한 기준이 없다. 모두 거래소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고객 예치금 대비 거래소 보유 현금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거래소는 고객 예치금과 회사 자금을 함께 보관하고 회사의 현금 보유액으로 처리한다. 고객 예치금은 고객이 암호화폐 등을 구매할 목적으로 거래소에 보관하는 것으로, 투자자들이 요청할 경우 돌려줘야하는 금액이다. 주식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회사에 일시적으로 맡겨 놓은 예탁금과 같다.

증권회사에 맡겨진 고객의 예탁금은 예금자 보호법에 의해 보호된다. 또한 증권거래법에 의해 별도로 관리돼 증권사가 지급 불능의 상황이 되더라도 회수할 수 있다. 이밖에도 고객예탁금 반환준비금이라는 제도도 존재한다. 고객예탁금 반환준비금이란 고객의 반환 요구에 즉각 이행할 수 있도록 증권회사가 보유해야 하는 준비금이다. 증권사는 이 준비금을 한국증권금융에 의무적으로 예치해야 한다.

주식시장과 달리 암호화폐 거래소의 경우 투자자 보호를 위한 별도의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당국의 규제나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협회 등을 통한 자율규제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대규모 출금사태가 발생할 경우 당장 보유 현금이 적은 거래소는 출금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피해로 돌아온다.

벌집계좌를 이용하는 일부 거래소의 경우에는 고객 자산 유용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벌집계좌는 하나의 통장에 고객의 자산과 회사의 자산을 함께 보관한다. 실명확인 계좌의 경우 통장 관리 주체가 은행에 있지만, 벌집계좌를 이용하는 경우 그 주체가 거래소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벌집계좌를 이용하는 국내 중소형거래소에서는 고객 자금 유용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제스트는 고객 예치금을 거래소 운영자금부족의 이유로 세금 납부 등에 임의로 사용했고 현금이 고갈되자 수개월째 입출금을 정지했다. 코인제스트 전종학 대표 및 임원진은 투자자들로부터 업무상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고소된 상황이다. 회사 보유 현금 고갈로 인한 고객 자산유용이 발상한 경우다.

이밖에도 거래소가 투자자들의 자산과 암호화폐를 이용한 먹튀행위, 기획파산 등의 사건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투자자들은 법정싸움을 이어가고 있지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법안이 개정되면서 투자자 보호 등에 대한 법률이 생겨날 수 있는 토대는 만들어졌다. 지난 3월 ‘특정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따라 암호화폐 거래소는 내년 3월부터 제도권으로 편입되게 됐다. 세부 내용은 시행령이 결정돼야 알겠지만, 거래소가 규제의 틀에 들어오게 된 만큼 금융기관에 준하는 역할과 의무를 지게 된다.

특금법에 따르면 가상자산 사업자는 현재와 달리 고객 예치금과 거래소의 자산을 분리 보관해야 한다. 고객의 자산을 처음부터 분리 보관하기 때문에 회사의 자산으로 유용할 수 없게 된다. 다만 이 또한 금융회사등이 고객 확인의무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책은 아니다. 여전히 증권사의 고객 예탁금 반환 준비금과 같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방안은 공백 상황이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지금까지 거래소와 관련된 법안 자체가 없어 투자자 보호 등에 대해서는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 왔다”면서 “책임과 의무가 강화된 만큼 금융권처럼 투자자 보호를 위한 명확한 기준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특금법 시행령을 위한 의견 수렴 과정에서 일부 거래소가 예치금 대비 보유 현금 비율에 대한 내용을 특금법에 포함해 줄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비율을 정함으로써 AML(자금세탁방지)을 강화하는 한편 투자자 보호도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부 거래소가 현금 보유 비율을 규정함으로써 AML 및 투자자보호를 강화할 수 있으니 시행령에 이것을 포함해달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안다”면서 “취지는 좋지만 특금법이 투자자보호 등에 대한 내용은 전무한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법안인 만큼 관련 내용이 포함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새 법안이 필요하다. 김재진 한국블록체인협회 국장은 “특금법으로 인해 거래소가 제도권으로 편입되고 새로운 법률이 나올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 “향후 시장과 투자자를 위한 다양한 법 체계들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