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신지은 기자] 오는 11일은 중국 최대의 쇼핑 시즌인 ‘광군(光棍)절’이다. 미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다. 2017년에는 하루만에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 매출을 뛰어넘었다. 시진핑 주석의 ‘블록체인 육성’ 발언에 이은 중국發 기대감이 암호화폐 시장에 퍼지고 있는 이유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CBDC(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 발행 기대감 때문이다. 앞서 주요 외신들은 인민은행이 11월 11일 중국 광군절 전후로 CBDC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CBDC엔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공룡 기업들이 참여할 전망이다. CBDC 출시에 대한 기대감에 앞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CBDC를 발행하기 위한 ‘인프라’다. 수십 억 명이 디지털 화폐를 사용하기 위한 기반인 ‘디지털 신원 증명’에 대한 사회적 기반, 얼마나 마련됐을까.  

◆ FATF, ‘각국 정부, 디지털 신원 인증 대비해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10월 31일 디지털 신원인증 관련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하면서 디지털 결제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조류임을 재확인했다. FATF의 초안에 따르면 2020년 예상 연간 디지털 거래 건수는 7260억 건에 이른다. FATF는 2022년까지 전세계 GDP(국내총생산)의 60% 규모에 달하는 거래가 ‘디지털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FATF의 입장에서 디지털 금융 거래의 성장은 곧 ‘개인의 신원이 어떻게 식별되고 검증되는 지’에 완벽히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FATF는 초안을 통해 ‘디지털 아디덴티티(ID)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며 다양한 시스템이 등장하고 있다’면서 ‘정부 및 규제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임을 명확히 했다.

 

디지털 ID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검토 절차. 출처: FATF

 

디지털 신원 인증 생태계의 국제적 확산에 대비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정부와 피규제 기관, 그리고 자금세탁방지(AML) 및 테러자금(CFT) 관련 규제를 받는 여타 이해당사자들이 이 가이드라인의 대상이다. FATF는 디지털 ID 시스템의 위험성에 대비한 체계적인 준비를 강조하면서도 디지털 ID 시스템이 AML/CFT 관리, 고객 편의 향상, 규제 대상 기업의 비용 절감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 앞서나가는 ATA, 안면인식기술에 정부 데이터로 ‘철벽방어’ 

‘중국에서는 거지도 QR코드로 구걸을 한다’는 말이 있다. 중국 모바일 결제 서비스의 대중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모바일 결제에 필요한 디지털 신원 인증에서 정부와 기업의 협업이 눈에 띈다. 특히 ‘ATA(알리바바,텐센트,앤트파이낸셜)’이 주목받는다. 협업을 통해 결제 뿐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미 디지털 ID를 활용한다.

FATF는 중국의 ‘앤트 파이낸셜(Ant Financial, 蚂蚁金服)’을 사례로 들었다. 앤트 파이낸셜은 알리바바에서 이용되는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의 모회사다. 앤트 파이낸셜은 정부와 협업해 신원 인증 시스템을 갖췄다. 알리페이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기기 앞에 서있기만 해도 자동으로 결제되는 ‘안면인식’ 결제도 도입했다. 이러한 시스템과 더불어 중국 공안부(MPS)의 데이터베이스도 확인한다. 앤트 파이낸셜의 디지털 ID 서비스는 이미 수 억 명의 알리페이 사용자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지난달 베이징에 있는 모든 KFC 매장에도 안면인식 결제 방식이 도입됐다. 연금 조회 및 징수, 세금 신고, 배송 조회용 얼굴 확인, 호텔 체크인, 대중교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러한 방식이 활용된다. 금융에도 활용된다. 보험, 펀드, 소액 금융 등의 금융 서비스 제공은 물론 고객 식별, 고객 위험 평가 등의 서비스에도 이용되고 있다.

화웨이와 텐센트도 힘을 보태고 있다. 4일 화웨이는 공식 위챗을 통해 화웨이와 인민은행 산하 디지털통화연구소가 핀테크 연구 협력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2018년 화웨이 페이에 통합된 eID 파일럿 프로그램을 런칭했다. 중국 공안부가 발행한 eID를 화웨이폰 내 보안칩에 저장해 신원을 보증했다. 텐센트는 이미 2017년 12월 위챗을 통해 본인인증을 거친 사람들에게 휴대전화를 통해 모바일 신분증 발급을 시작했다. 중국 공안 부설 연구소와 협력해 금융 분야에서 활용될 경우의 리스크도 줄였다.

◆ 블록체인 기반 ‘신원 인증’..형사사건 등에도 활용 

이렇게 활용되는 디지털 신원 인증은 ‘사람’과 ‘결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공급망 추적도 가능하다. 알리바바를 통해 다이아몬드를 구매한 고객이 블록체인 기반 기록으로 등급이 매겨진 과정, 가공 과정 등을 모두 추적할 수 있는 등이 예다.

중국 저장성 샤오싱 법원은 지난 5일(현지시간) 중국 최초로 ‘분산원장기술’을 활용해 사건을 해결했다고 밝혔다. 1만 위안(한화 약 165만 원)을 탈취한 범죄자에게 1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었던 근거를 블록체인을 활용해서 찾았다. 앞서 샤오싱 법원은 증거 확보를 위한 블록체인 시스템 개발을 위해 앤트 파이낸셜과 협업했다.

장 후이 앤트 파이낸셜 블록체인 담당 이사는 “6억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온라인 쇼핑을 시작했지만 디지털 분야에서 따라잡을 부분이 아직 많다”면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블록체인을 결합해 정보를 연결시키고 거래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다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낸스 리서치는 지난 9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CBDC는 자금세탁, 테러자금 조달, 탈세방지 지원 등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금융기관과 규제기관 간 정보 비대칭도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디지털 공룡을 등에 업은 중국 정부의 디지털 신원 인증 가속화가 CBDC 발행과 사회 전반의 ‘가짜’와의 싸움에 힘을 보태기 위함임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