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미국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과 반세계화 정책 여파로 안전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면서다. 미국의 리세션(경기 후퇴) 가능성에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 훼손과 금리 인하 압박도 ‘셀USA’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반면 엔화는 달러 수요 이탈에 따른 안전 피난처로 각광받으며 가치가 치솟고 있다. 향후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기대와 미국이 무역 전략으로 엔화 강세를 유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엔화에 힘을 싣는 요소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엔고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1일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상대적 가치를 의미하는 달러인덱스(DXY)는 장중 한때 97.9까지 떨어지며 2022년 3월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올해 들어 달러가치 하락률은 10%에 달한다.
달러 약세는 미국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못하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방위적 관세 정책 발표 후 중국의 반격에 미국의 성장 균열에 대한 우려로 이어졌다. 미국과 동맹국 간의 무역 마찰에 정책 불확실성까지 높아지며 안전자산으로의 가치가 훼손됐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해임 시사와 금리 인하 압박도 ‘셀USA’를 부추기는 요소다. 통화정책 독립성 침체 우려와 함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교차하며 ‘탈달러화’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 가치가 의심받으면서 이탈된 수요는 달러와 함께 대표 안전자산으로 꼽혀온 금과 엔화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같은날 금값은 온스당 3500달러로 치솟으며 최고가를 경신하며 치솟았다.
엔화 환율은 장중 한때 달러당 139.93엔까지 하락해 7개월 만에 처음으로 130엔대로 들어섰다. 올 초 160엔에 달했던 것이 비교해 14%나 가치가 뛰었다. 엔화는 안전자산 성격과 미·중 갈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이 투자 수요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달러당 엔화값이 치솟자 원·엔 재정환율도 곧바로 1000원대로 올라섰다. 1년 전만 해도 원·엔은 800원 후반에 불과했다. 올 들어 상승폭은 70~80원에 달한다. 특히 원화는 달러 하락에도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타격과 저성장 우려에 짓눌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닛케이 신문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 속에 달러 이탈 현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피난 자금이 점차 엔화로 몰리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아울러 유럽중앙은행(ECB)과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진 가운데 일본은행(BOJ)은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지목했다.
BOJ는 지난해 3월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고, 7월에는 기준금리를 0.25%로 높였고, 올해 1월 또다시 0.5% 인상에 나서 추가 인상 시기를 저울질 중이다. 반면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이 연내 3회 이상 금리를 낮출 것이란 전망은 60%를 넘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꾸준히 일본의 대미 수출 흑자 원인으로 슈퍼 엔저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도 향후 엔화 가치 반등 기대를 높이는 요소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환율에 대해 “달러가 너무 강하다”며 엔화 약세를 강하게 비판하고, 일본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엔고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BOJ의 점진적인 금리 인상을 이유로 올해 말 엔·달러가 135엔까지 떨어지며 엔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국내서도 엔화 강세에 원·엔 눈높이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달러당 엔화값이 연말에는 138엔까지 떨어질 수 있다”며 “원·엔 재정환율의 경우 1000~1050원 사이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