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2023년 미국 국채를 블록체인에 올린 ‘BUIDL’ 프로젝트를 출시했다. 이를 두고 투자자들은 “이제 진짜가 왔다”고 평가했다. 전통 자산의 온체인화가 본격화된 셈이다. 그러나 이 조용한 혁신의 이면에는 종종 간과되는 기술, ‘오라클(Oracle)’이 있었다.
# 오라클이란?
오라클은 블록체인과 외부 세계를 연결해주는 ‘정보 배달원, 데이터 게이트웨이’다. 블록체인 프로그램인 스마트 계약이 외부 데이터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컨대 “비 오는 날 사고 발생 시 보상금 지급”이라는 보험 계약을 블록체인으로 운영하려면, 비가 오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역할을 오라클이 수행한다. 기상청 데이터를 가져와 블록체인에 전달하면, 스마트 계약은 조건 충족 여부를 판단해 실행한다. 환율, 주식, 센서 데이터, 심지어 임상시험 결과까지도 오라클을 통해 블록체인에 연결될 수 있다.
# 디파이(DeFi)와 오라클
대표적 사례는 디파이 대출이다. 에이브(Aave), 컴파운드(Compound)와 같은 플랫폼에서는 사용자가 이더리움(ETH) 같은 암호자산을 담보로 맡기고 스테이블코인을 대출받을 수 있다. 이때 담보 자산의 실시간 가치는 오라클이 제공하는 데이터에 기반한다. 예컨대, 체인링크(Chainlink)는 여러 데이터 노드들이 코인마켓캡(CoinMarketCap), 코인게코(CoinGecko) 같은 다양한 출처에서 이더리움 가격을 수집한 뒤 평균을 내고 검증한다. 그리고 그 값을 기반으로 스마트 계약은 “이더리움이 1700달러니까, 담보 가치 이하네. 청산하자”라고 자동으로 판단한다.
# 외부 데이터를 조작할 위험은?
오라클은 현실과 블록체인을 잇는 통로지만 동시에 취약점이기도 하다. 외부 데이터를 통한 공격 변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2022년 망고 마켓(Mango Markets)사건에서는 조작된 오라클 가격이 해킹을 가능하게 했다. 당시 공격자는 MNGO 토큰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30배 부풀린 뒤, 이를 담보로 대규모 대출을 받아 수 백억원의 자금을 갈취했다. 이 사건은 오라클 데이터가 조작되면, 아무리 스마트한 계약이라도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 오라클, 다중 보안 및 상호 검증으로 진화
오라클은 블록체인의 ‘아킬레스건’이자 핵심 인프라다. 그렇기에 오라클의 신뢰성과 보안성은 블록체인 인프라 전체의 신뢰도와 직결된다.
에이브나 컴파운드 등 주요 디파이 플랫폼은 단일 거래소의 가격 정보만 신뢰하지 않는다. 여러 출처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평균값을 검증하고 이를 블록체인에 전달하는 다중 소스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여기에 다중 노드 운영, 비잔틴 내성 합의 알고리즘, 암호화된 전송 프로토콜 등의 보안 메커니즘이 결합된다.
주요 디파이 플랫폼은 단일 소스를 배제하고 다중 출처와 검증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체인링크는 이런 고도화된 구조를 대표적으로 구현한 사례다. 중앙화된 데이터 제공자에 의존하지 않고, 탈중앙 네트워크 내에서 상호 검증을 통해 정확한 데이터를 도출해낸다.
# 오라클의 두번째 전성기 “RWA”
이제 오라클은 단순 가격 중계를 넘어 ‘현실 반영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특히 실물 자산(RWA)의 온체인화가 가속화되며, 오라클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부동산, 국채, 예술품 등 실물 자산은 가격뿐 아니라 위치, 상태, 수익률, 법적 소유권 등 복합적인 데이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맥킨지는 RWA 시장이 2030년까지 2조 달러,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는 4조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 오라클 3강 구도…체인링크 선두, 파이스·레드스톤 추격
현재 오라클 시장은 초창기 혼전 양상을 벗어나 체인링크(Chainlink)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가운데, 파이스 네트워크(Pyth Network)와 레드스톤(RedStone)이 각자의 강점을 앞세워 ‘전문화된 오라클’로서 본격적인 추격전을 시작했다.
- 체인링크, 전통금융까지 넘보는 압도적 1위
2017년 설립된 체인링크는 현재 오라클 시장의 절대 강자다.2025년 3월 기준 총 담보가치(Total Value Secured, TVS)는 약 310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전체 오라클 TVS의 53.3%를 차지한다. 또한 토큰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시장의 76.9%를 점유하고 있다.
초기에는 디파이(DeFi)를 위한 가격 피드 서비스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스마트 계약 자동화(Automation 2.0) △무작위 수 생성(VRF) △교차체인 데이터 전송(CCIP) △프라이버시 데이터 전송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다기능 오라클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특히, 스위프트(SWIFT), UBS와의 공동 실증 프로젝트를 통해 RWA(실물 자산 토큰화)와 전통 금융과의 연계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는 오라클이 디파이의 보조적 기술에서 벗어나 블록체인-금융을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 파이스, 초저지연 특화한 솔라나 대표 오라클
파이스는 초저지연 데이터 전송을 강점으로 하는 솔라나 기반 오라클이다. 밀리초 단위 반응 속도와 윈터뮤트, 플로우데스크 등 기관이 직접 데이터를 제공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현재 65개 이상의 퍼블릭 체인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며, 2024년 출시한 익스프레스 릴레이(Express Relay) 기능을 통해 MEV(Maximum Extractable Value)를 프로토콜 수익으로 전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특히, 초 단위도 아닌 밀리초 단위의 데이터 반응 속도는 솔라나 기반의 고빈도 트레이딩 환경에서 중요한 요소로, 파이스를 고속 오라클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 레드스톤, 유일한 푸시·풀 동시 지원…AI 시장까지 겨냥
레드스톤은 오라클 시장의 가장 빠르게 영역을 확장 중인 도전자다. 70개 이상의 퍼블릭 체인과 통합되었으며, 기존 오라클들이 선택해야 했던 ‘푸시(Push) 또는 풀(Pull)’ 방식이 아닌 두 가지 방식을 동시에 지원하는 유일한 프로젝트다. 푸시 모델은 실시간 반응 속도에 강점을, 풀 모델은 요청 기반으로 가스비 절감과 유연성을 제공한다.
또한 AI 프레임워크 CLARA를 선보이며, AI 에이전트 간 블록체인 기반 데이터 교환 구조를 구축 중이다. 현재 유로존 국채 ETF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면서 RWA 기반 데이터 통합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 다중데이터 증가…전문화된 오라클 본격화
최근 오라클 산업은 단일 가격 중심에서 다중 데이터 요구로 이동 중이다.게이트리서치는 이 흐름을 “오라클 산업의 제2막”으로 정의했다. 과거에는 ETH, BTC 등 단순 가격 중심이었지만, 현재는 IoT 센서, AI 모델 출력값, 의료·임상 데이터, 날씨, 스마트 계약 코드 등 속성과 처리 방식이 다른 다중 데이터를 요구하는 프로젝트가 부상하고 있다.
예컨대, PoDW(Proof of Device Work) 기반의 IoT 오라클은 솔라나 기반 프로젝트 에코링크(Echolink)를 통해 800만 개 이상의 디바이스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연결했다. AI 코드 오라클은 비텐서(Bittensor)와 같이 알고리즘 경쟁을 통해 우수 모델을 선별해 데이터를 기록하고, 바이오 오라클은 임상 데이터를 토대로 분자 자산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활용된다.
# 오라클, 탈가격화 시대의 핵심 인프라
오라클은 더 이상 가격 전달자가 아니다. 산업 맞춤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연결하는 멀티 인프라로 변모하고 있다. 이른바 ‘2에서 N으로’ 확장되는 생태계 속에서 오라클은 블록체인 외연 확장의 열쇠이자, 미래 인프라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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