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이더리움 공동 창립자 비탈릭 부테린이 이더리움(ETH)의 실행 시스템을 근본적인 변화를 제안했다. 그는 스마트 계약을 처리하는 현재의 이더리움 가상머신(EVM) 대신, 범용 오픈소스 명령어 체계인 RISC-V 기반 구조를 도입하면 실행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복잡해진 시스템을 단순하고 효율적으로 재설계하자는 취지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부테린은 지난 20일 이더리움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RISC-V는 단순성과 효율성을 모두 갖춘 구조로, 실행 계층의 병목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일 수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복잡하고 오래된 구조를 정리하고, 실행 방식을 처음부터 새롭게 설계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RISC-V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오픈소스 명령어 체계다.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구조가 단순하고, 최적화 도구가 잘 갖춰져 있어 블록체인 환경에서도 높은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
엄상현 디스프레드 그로스 리드는 “비탈릭이 제안한 것처럼 현재 여러 프로젝트들이 이미 RISC-V를 활용해 그 효율성을 검증하고 있다”며 “일부 연구에서는 RISC-V를 적용할 경우 EVM을 직접 증명하는 방식보다 최대 100배까지 성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ZK 증명 환경에서 EVM의 비효율성은 수치로 드러났다. 지난해 3월 ZK 롤업 스타트업 서킷(Succinct Labs)은 자체 zkVM 실험을 통해, 기존 EVM 방식이 전체 증명 시간의 절반 이상을 코드 해석에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반면, RISC-V 기반 구조를 적용하면 중간 해석 과정이 줄어들어 일부 작업에서 최대 28배의 증명 효율 개선이 가능하다는 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물론 근본 시스템을 바꾸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윤승식 타이거리서치 연구원은 “RISC-V를 통한 성능 향상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이를 이더리움 생태계 전반에 완전히 통합하기 위해선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며 “지금은 제안 초기 단계로, 더 많은 기술적 논의와 실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신중론 속에서도 실행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논의는 이더리움의 설계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이더리움은 실행·합의·데이터 저장 기능을 분리해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시키는 모듈형 구조(modular architecture)를 채택하고 있다. 메인 블록체인인 레이어1은 보안과 합의를, 레이어2는 거래 실행과 확장성을 담당한다. 이 구조는 확장성과 탈중앙화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지만, 레이어1의 처리 효율이 낮을 경우 전체 네트워크 성능을 제한하는 병목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레이어1의 실행 성능 한계는 최근 수익성 저하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거래 수수료 수익은 약 2억800만달러로, 전년 대비 60% 이상 줄었다. 이는 202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사용자들이 메인넷 대신 수수료가 저렴한 레이어2 솔루션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퀸리반 산티멘트(Santiment) 마케팅 디렉터는 “레이어2는 거래 비용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면서도 “동시에 레이어1의 수익 기반을 잠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코인베이스가 운영하는 베이스(Base) 네트워크는 초당 80건 이상의 거래를 처리하며, 레이어2 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사용량을 보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부테린은 레이어1 자체의 처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RISC-V 기반 실행 구조 전환을 제안한 것이다.
엄 리드는 “ZK 기술 중심으로 이더리움 구조를 전환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로드맵에서 명확히 드러나 있다”며 “RISC-V는 그런 흐름을 반영한 제안으로, 레이어1의 실행 효율을 높이면서 ZK 환경에 더 적합한 구조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시도”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러한 구조 전환이 단기간 내 이더리움 전반에 적용되기는 어렵다는 신중한 분석도 제기된다. 윤 연구원은 “실제 전환 과정은 부테린이 설명한 것보다 더 복잡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탈중앙화금융(디파이)처럼 민감하고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예상치 못한 동작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전환에는 충분한 테스트와 세심한 조정이 수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엄 리드는 전환 과정에 현실적인 과제가 있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이더리움의 경험과 생태계를 고려할 때 전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컴파일러나 디버깅 도구의 호환성 등 기술적 과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더리움은 그동안 EIP-1559, 계정 추상화(Account Abstraction) 같은 복잡한 업그레이드를 안정적으로 수행해온 이력이 있다”며 “성숙한 개발자 커뮤니티와 탄탄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이번 구조 전환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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