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시기 다가오는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 주목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전 세계 교역국을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 SNS에 올린 글에서 비관세장벽의 8가지 유형을 제시했다. 덤핑과 수출보조금, 부가가치세, 위조 등을 나열했는데 그중 1번은 ‘환율 조작'(Currency Manipulation)이었다. 넓게 보면 환율 조작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겠으나 무역적자 해소가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목표임을 감안한다면 주로 미국 무역상대국들이 자국 통화가치를 의도적으로 절하함으로써 대미 수출에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를 타깃으로 삼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본격적인 ‘환율 전쟁’을 개시할 것인지 전 세계 금융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교역상대국과의 전쟁에서 사용할 1단계 무기가 관세였다면 2단계는 환율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이미 1기 임기 때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며 압박한 바 있으니 그에겐 이미 익숙한 무기다. 더구나 최근 화제가 되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의 스티븐 미란 위원장의 보고서도 달러 강세를 해소할 ‘마러라고 합의’가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니 트럼프에게 환율은 앞으로 진행할 무역 협상에서 고분고분하게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상대국,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을 향해 언제라도 꺼내 들 수 있는 ‘주머니 속의 칼’이다. 만일 트럼프가 환율 전쟁을 시작한다면 그 신호탄은 미국 재무부가 곧 발표할 환율보고서가 될 공산이 크다.
미국 재무부는 종합무역법(1988)과 교역촉진법(2015)에 근거해 매년 4월과 11월 2차례에 걸쳐 미국과 교역규모가 20개국을 상대로 무역과 연계한 환율 정책을 분석하고 평가해 발표한다. 현재 교역촉진법에 따른 평가 기준은 ▲ 대미 무역흑자 150억달러 이상 ▲ 대미 경상흑자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 ▲ 외환시장에서 GDP의 2% 이상·연간 8개월 이상 달러 순매수 등 3가지다. 3가지 기준 중 2개를 충족하면 관찰대상국, 3개 모두 해당하면 심층분석국으로 지정한다. 환율조작국 지정은 종합무역법을 근거로 한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시정 요구를 거쳐 미국 기업의 투자 제한이나 미 연방정부 조달계약 제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감시 등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런데 종합무역법엔 조작국 지정 기준이 적시돼있지 않고 교역 촉진법의 기준도 몇 년마다 바뀌니 미국이 원하면 얼마든지 조작국이란 오명을 씌울 수 있다.
미국의 관세 공격에 대해 강경하게 대항하고 있는 중국이 또다시 첫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과 한국은 1988년, 대만도 1992년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됐던 적이 있으나 중국은 1994년에 이어 트럼프와의 무역전쟁이 한창이었던 2019년 또다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됐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함으로써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고, 5개월 뒤 중국과 1단계 무역 합의에 이르자 곧바로 해제했다. 현재 중국은 미국의 관세부과에 대응해 맞불 관세 부과는 물론 위안화 절하, 희토류 수출제한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강경 대응하고 있다. 중국과의 협상 성과가 시급한 트럼프가 환율 카드를 꺼내 든다면 또다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걱정이다.
작년 말 중국, 일본 등과 함께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한국이 이번 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작년 미국의 9번째 무역 적자국이었고 올 1분기에도 대미 무역흑자가 134억달러에 육박했으니 미국이 예의주시하며 압박을 가할 상대임은 부인할 수 없다. 우선 우리에겐 24일 시작될 한미 2+2 통상협의에서 미국 측이 어떤 요구사항을 제시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지만, 아울러 미국과 일본의 재무장관 회담에서 미국이 엔화 환율에 어떤 입장을 보이는지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미국이 엔화 절상을 요구한다면 추후 한국이나 중국에 대해서도 같은 요구를 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하다. 이래저래 이번 주엔 워싱턴에서 들려오는 뉴스에 귀를 기울여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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