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엔화값이 어느새 1000원대에 올라섰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타격에 따른 리세션(경기 침체) 우려에 달러 대신 엔화가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으면서다. 달러당 엔화 가치는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뛴 반면 원화 가치는 미·중 무역 마찰 불똥에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화값이 더 탄력을 받는 반면 원화값은 저성장 우려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 등으로 약세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영향으로 연말 무렵 원·엔은 2020년 수준인 1050원 대로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30분 원·엔 재정환율은 매매기준율 기준 100엔 당 1007.7원에 거래됐다. 1년 전만 해도 800원 후반대였던 원·엔은 지난해 7월 900원대로 올라섰다. 그러다 올해 들어서 꾸준히 상승세를 타다 결국 이달 초 1000원대에 올랐다.
최근 원·엔 상승세는 엔화 강세와 원화 약세가 동시에 영향을 미쳤다. 엔화는 달러를 대신할 안전자산으로 각광받으며 꾸준히 수요가 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방위적인 관세 정책 발표 후 중국의 반격 등의 미국의 경기 둔화 가능성이 불거진 결과다.
마이너스 금리를 포기한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기대도 엔화값을 높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제조업의 대미 수출 흑자 원인으로 슈퍼 엔저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도 향후 엔화값 반등 가능성에 힘을 싣는 요소다.
올해 초만 해도 달러당 엔화값은 160엔을 위협했지만, 최근 140엔대로 급락하더니 급기야 전날에는 한때 140.55엔까지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140엔 선까지 내려가며 강세를 보인 것은 지난해 9월 중순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반면 원화는 경기 부진 우려에 짓눌리고 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트럼프 무역 정책에 따른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주요 교역국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 장기화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 경제에 악재다.
해외IB를 중심으로는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1%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우리나라를 아시아 국가 중 트럼프 관세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된 국가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기 둔화 가능성에 안전자산 중 달러가 힘을 쓰지 못하면서 엔화에 수요가 쏠린 측면이 있다”면서 “원화는 위험 통화에 가깝다 보니 원·엔이 세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엔화 강세가 이어지며 원·엔 환율이 중장기적으로 상승 흐름을 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골드만삭스는 BOJ가 점진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 올해 말 엔·달러가 135엔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최 연구원도 엔화의 추가 강세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며 원·엔 역시 더 높은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달러당 엔화값이 연말에는 138엔까지 떨어질 수 있다”며 “원·엔의 경우 1000~1050원 사이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달러에서 빠진 돈이 엔화로 쏠리고 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지나치다고 판단해도 길게 보면 원·엔이 140엔 이하로 떨어지며 연말까지 원·엔은 1020원 수준까지 갈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