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문예윤, 지승환 인턴기자] 비트코인 채굴 업계가 수익성 악화에 규제 압박까지 직면하면서 단일 전략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특히 미·중 관세 정책이라는 새로운 불확실성까지 더해지자 업계는 잉여·대체 에너지 활용,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환, 비트코인 매수 등 다양한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해시레이트 상승, 보상은 하락…기본 수익 구조가 흔들린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해시레이트는 이달 초 1.025제타해시(ZH/s)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1ZH/s를 넘어섰다. 해시레이트는 채굴 과정에서 수행되는 초당 연산량으로 채굴 난이도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반면 채굴 보상은 점점 줄고 있다. 지난해 4월 반감기로 블록 보상은 6.25 BTC에서 최근 3.125 BTC로 절반 가량 줄었다. 동일한 전력과 비용을 투입하더라도 수익은 절반 수준에 그치게 된 셈이다.
맞춤형 반도체(ASIC) 투자로 채굴 효율을 높이려는 시도도 있지만 장비 가격 상승으로 인해 수익성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다. 이와 관련해 디지털자산 분석가 루시드(Lucid)는 “비트코인 채굴은 더 이상 수익성이 없다”며 “앞으로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대형 기업만 채굴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좋은 ASIC 채굴기를 5000달러(약 710만원) 이하로 구하기도 어렵고 그마저도 전기료 때문에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지난 20일(현지시각) 코인데스크 보도에 따르면 비트코인 연산 단가인 해시프라이스는 약 44달러(약 6만2300원) 수준까지 떨어지며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채굴기 교체 주기가 빨라지면서 투자 부담도 커지고 있다. 장재윤 채굴TV 대표는 “기술 발전과 난이도 상승으로 인해 채굴기 교체 주기는 점차 짧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력 규제도 부담…채굴업계 주가 ‘급락’
전력 규제도 채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2021년부터 채굴을 전면 금지하자 채굴지는 북미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분산됐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전력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최근 캐나다 퀘벡은 신규 채굴업체에 전력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일부 기업은 수냉식 채굴기 도입이나 폐가스 전력 활용 등 대체 에너지를 통한 채굴 전략을 추진했다. 마라홀딩스는 채굴비용 절감을 위해 지난 2월 미국 텍사스의 풍력 발전소를 인수했다. 그러나 이는 초기 인프라 구축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채굴 난이도 상승과 보상 감소에 따른 구조적 수익 저하를 상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채굴 수익성 저하는 기업 주가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3월 보고서를 통해 14개 채굴업체의 주가가 내려가면서 시가총액이 약 60억달러(약 8조8074억원)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마라톤디지털(Marathon Digital)은 한 달 새 14.94%, 사이퍼마이닝(Cipher Mining)은 33.8% 급락했다. 3월 채굴 업체들의 하루 채굴에 따른 보상 수익은 평균 4만7300달러(약 6941만원)로 전월 대비 1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데이터센터·비트코인 투자로 눈 돌리는 채굴업체
채굴 업체들은 급격한 채굴보상 감소로 인해 새로운 수익원을 모색하며 사업 전략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AI 데이터센터 전환과 비트코인 매입 전략이다.
특히 채굴장은 △고사양 GPU △전력 설비 △냉각 시스템 등 AI 연산에 필요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이미 확보한 부지와 전력 계약으로 데이터센터사업 전환에 유리하다.
실제로 크루소에너지는 지난달 25일 “기존 비트코인 채굴 사업 부문을 매각하고 AI 연산 인프라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마라톤디지털도 지난해 일부 채굴 시설을 정리하고 엔비디아로부터 1억6000만달러(약 2282억800만원)를 조달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착수했다. JP모건은 “향후 10년간 AI 수요 확대는 채굴업체가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거의 유일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기업은 채굴 수익성 악화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직접 매입해 자산으로 편입하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마라톤디지털은 최근 약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비트코인을 대거 매입했다. 마라톤은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으로 간주하고 장기적으로 보유함으로써 자산가치 상승과 주가 안정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관세 등 ‘정책 리스크’ 부상⋯업계 해답은 ‘전략 다변화’
그러나 여전히 변수는 남아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채굴업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되는 ASIC 장비 대부분이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남아시아 소재 제조사들은 지난 9일 상호 관세 발효를 피하기 위해 전세기·바지선을 동원해 생산지에서 미국으로 장비를 긴급 수송했다. 항공 운송에는 평소보다 최대 4배, 해상 운송에는 20배에 달하는 비용이 소요됐다.
특히 미·중 양국은 서로 10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며 채굴기를 수출하는 중국의 제조 기업과 이를 수입하는 미국의 채굴 회사들이 모두 타격을 입게 됐다. 채굴은 고성능 장비 확보 여부가 수익 창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고성능 컴퓨팅을 수행할 수 있는 미국산 장비는 거의 없다”며 “비트코인 채굴기 제조 국가에 대한 관세 위협은 채굴업자들에겐 심각한 타격”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막대한 관세부담을 피하기 위해 생산거점·사업모델 다변화 등 다양한 출구 전략을 짜고 있다. 비트메인(Bitmain)은 생산 시설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분산했다. 마이크로BT(MicroBT)는 미국 내 생산기지를 활용해 라이엇 블록체인(Riot Blockchain) 등 기업과 계약을 확대하고 있다. 비트디어(Bitdeer)는 미국 내 채굴기 생산을 도모함과 동시에 자체적으로 채굴을 시도하는 전략을 계획하고 있다.
채굴 회사들의 사업 다각화에 대한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헛8(Hut8)은 단순 비트코인 채굴을 넘어 △AI △고성능 컴퓨팅(HPC) 서비스 △데이터센터 인프라 사업까지 확장했다. 디지털자산 분석가 마그너스(Magnus)는 “이러한 전략은 허트8이 비트코인 가격에 관계없이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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