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조아라 기자] 누군가 김흑우 씨의 돈을 들고 튀기 직전이다. 경찰에 신고할 시간 따위는 없다. 주위에 도와줄 사람도 없다.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골프채가 유일하다. 힘껏 휘두르면 때려눕힐 수 있는 거리다. 김흑우는 돈을 찾기 위해 결국 골프채를 이용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피해자들의 모습이 딱 이렇다. 이 웃픈 현실은 이른바 코인네스트 ‘골프채 사진’으로 잘 나타난다. 당시 암호화폐 투자자는 입금한 돈을 찾기 위해 골프채를 들고 거래소를 찾았고, 그제서야 입금 처리가 됐다는 뒷말이 커뮤니티에 파다하게 퍼졌다.

 

▲ 골프채를 들고 코인네스트 사무실을 찾은 투자자의 사진과 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투자자들.

 

이후 거래소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골프채’가 유일한 해결책으로 거론됐다. 골프채는 형법상 흉기에 해당한다. 흉기를 휘두르건, 투자자 여럿이 몰려가 항의를 하건, 폭행·협박·위력 등 범죄를 저질러야 투자금을 찾을까 말까한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실제 국내에서 일어난 해킹사건 수사는 모두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9월 코인이즈 ▲같은해 12월 유빗(구야피존) ▲올해 6월 코인레일과 빗썸에서 해킹사건이 발생했지만 수사기관은 아직 아무런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최근 국회를 통해 받은 답변은 ‘수사 중’ 세 글자로 끝났다. 제대로 보상을 한 곳은 빗썸이 유일하다.

결국 거래소 피해 투자자들은 자신의 돈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를 자구행위라고 한다. 자구(自救), 스스로 구한다는 뜻이다.

▲ 2018년 한 암호화폐 투자자가 커뮤니티 채팅창에 올린 글

현행법에 따르면 도저히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긴급한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 형벌을 줄여주거나 면제해준다. 저간의 사정을 봐준다고는 하지만 자구행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건국이래 국내 11개의 소송 중 단 두 사건만 자구행위가 인정됐다. 2016년 소유권 다툼이 있는 땅에 심어진 소나무가 자신의 것이라고 표시한 A에게 법원은 재물손괴죄 무죄를 선고했다. 2015년에는 시위 중인 자신을 촬영한 C씨에게 영상을 지워달라고 요구하며 가방을 붙들고 늘어진 B씨에게 자구행위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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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자구행위 무죄 선고가 잔뜩 기대되는 영역이 암호화폐 거래소다. 거래소가 내 돈 돌려달라고 폭행 또는 협박을 한 투자자를 고소해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물론 횡령이나 사기 등 거래소 위법사항이 없다는 가정에서다. 찔리는 게 많다면 고소가 쉽지 않을테니까.

그래서일까? 이제 이마저도 어렵다. 코인네스트는 골프채 사건 이후 사무실을 옮기고 더 이상 방문상담을 진행하지 않는다. 신생 거래소 올스타빗은 회사에 방문해 출금 지연을 항의하는 고객들이 늘어나자 별도 안내 없이 사무실을 옮겨 투자자들과 추격전을 벌였다. 코인레일은 버티기와 자사코인 찍어내기로 사실상 피해를 투자자에게 떠넘겼다.

 

▲ 2018년 6월 18일 서울 강남 신사역에 위치한 코인레일 본사 앞에 코인레일 해킹 피해자들이 코인레일 측에 대화를 요구하며 기다리고 있다.(사진=제보자)

▲ 2018년 6월 18일 코인레일 본사 정문에 방문상담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공지가 붙어있다. (사진=제보자)

이처럼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피해를 입어도 신고할 곳, 도와줄 곳은 대한민국 그 어디에도 없다. 엄연히 21세기 법치주의에 사법제도가 멀쩡히 존재하고 금융당국 민원실이 있으며 사방에 경찰서가 있는 나라에서. 그야말로 먹고 튀면 그만인 거래소 천국이 아닐 수 없다.

이 정도면 정부가 거래소 범죄의 방조범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골프채는 암호화폐 투자자를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이 됐다. 암호화폐 투자자에게 ‘역대급 불통’의 모습을 보여주는 정부가 골프채만도 못하다는 오명을 벗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투자자 보호를 골자로한 거래소 규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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