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추진하고 있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가 현행 금융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CBDC는 중앙은행이 돈에 대한 통제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의 발현이며 탈중앙화를 바탕에 둔 암호화폐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CBDC, 구시대적 금융체계 유지하겠다는 취지”
11월 15일(현지시간) 마크 빈스(Mark Binns) 빅디지털애셋(BiGG Digital Assets) 최고경영자(CEO)는 코인텔레그래프 기고에서 중앙은행은 개인의 부와 자산을 통제하기 원하기 때문에 CBDC는 근본적으로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중앙은행들은 이용자의 사생활 보호와 민주적 자유를 허락하지 않은 채 이 같은 가치에 기초한 암호화폐 업계에 합류하길 원한다”며 “‘이길 자신 없으면 합류하라’는 식으로 CBDC를 실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빈스 CEO는 암호화폐가 주류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당국의 규제와 법 체제에 순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처음부터 당국의 주도로 추진되는 CBDC는 암호화폐와 노선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중앙은행은 서로간 가치 전송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최첨단 기술을 도입한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전하고 있다”면서 “결국은 구시대적인 금융 시스템을 현 시대에 좀더 효율적으로 끼워맞추도록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ㆍ러시아, 통제 범위 내 디지털화폐 허용
그는 CBDC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두 국가를 근거로 들었다. 먼저, 중국은 지난 6년여간 개발해온 디지털화폐(DCEPㆍ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를 국영은행 위주로 대규모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중국은 이중 레이어 구조를 채택하는데, 이중 하위 레이어인 시중은행에선 결제 체계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여지가 있으나 상위 레이어인 인민은행(중앙은행) 부문에선 중앙집권형 구조를 채택할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룬다. 암호화폐에 관해서는 위안화를 대체하는 가치를 지닌 경우 무조건적으로 금지 대상이다.

러시아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암호화폐에 대해선 부정적인 한편 CBDC 개발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 중앙은행 법률 부문 책임자 알렉세이 구즈노프(Alexei Guznov)는 “CBDC가 암호화폐의 발전에 기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암호화폐에 대한 수요를 낮출 수 있는 대안”이라며 “암호화폐는 돈세탁이나 테러자금조달 등 범죄에 사용되기 때문에 유통을 금지하는 등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금융 시스템에 대한 암호화폐의 도전을 CBDC로 정면 대응한다는 주장이다. 빈스 CEO는 “러시아는 디지털화폐라는 파이의 한 조각을 차지하길 원하지만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는 경우에 한한다”며 “이는 모든 CBDC의 근본적인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당국은 CBDC를 통해 개인과 부,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동-서 패권 다툼 아냐… CBDC-암호화폐 간 대립
중국이 DCEP를 발행하는 게 미국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는 일부 주장에 대해 빈스 CEO는 “동서(중국과 미국) 간 갈등이 아니라, 중앙화 체계와 검열과 통제를 저항하는 암호화폐와의 대립”이라고 강조했다. CBDC는 기존 국가 화폐를 디지털 형식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며,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정한 규칙을 벗어나는 금융 시스템에 불이익을 주기 위한 도구라는 설명이다. 그는 “유럽중앙은행(ECB)이 디지털유로에 관해 대중의 의견을 구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디지털유로가 자연재해나 유행병 등 재난 사태가 터질 경우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유로존 내 금융안정과 통화주권을 위협하는 해외 디지털 지불수단(암호화폐)에 대해선 경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권선아 기자 kwon.se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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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디와의 전제 계약을 통해 게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