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이 부동산 거래에 활용되면서 부동산 공인중계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블록체인이 부동산 거래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그동안 거래 시장을 독점해온 공인중개사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어서다. 지난 9월 기획재정부는 ‘2021년 예산안 홍보자료’를 내놓으면서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 등 19개 분야 블록체인 활용 실증’이란 문구를 포함시키면서 논란을 키웠다. 공인중개사들이 이에 강력 반발하며 집단 행동을 예고하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은 “확정된 사업이 아니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부동산 거래에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것은 소비자의 효용을 극대화해주는 기술 혁신일까. 아니면 부동산 공인중개사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위협요인일까. 디센터는 현재 부동산 업계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해 어떤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공인중개사 없는 부동산 거래가 정말 가능한 일인지 등을 살펴봤다.

부동산 유동화 증권 발행…소액 투자 가능해져

부동산 업계에서 블록체인이 활용되는 대표적 사례는 자산 유동화다. 부동산을 유동화한 증권을 일반 투자자에게 발행 및 유통하는 서비스다. 증권은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디지털 자산화된다.

지난해 금융위원회 규제샌드박스로 지정된 카사코리아의 ‘카사’가 오는 10월 중 첫 공모를 앞두고 있다. 투자자는 부동산 신탁회사가 발행한 수익증권에 투자하고, 이를 카사 앱에서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다. 수익증권 보유자는 건물 임대 수익과 시세 차익 등을 배당금으로 받을 수 있다. 세종텔레콤도 유사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지난 7월 부산시 블록체인 규제 자유특구 2차 사업자로 최종 선정돼 ‘블록체인 기반 부동산 집합 투자 및 수익 배분 서비스’ 실증 운영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루센트블록도 규제 특례를 신청하고 비슷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엘리시아는 투자자가 건물 지분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익에 대한 권리를 증명하는 ‘수익증권’을 발행하는 위의 업체들과는 조금 다르다. 엘리시아는 각 건물마다 건물을 소유하는 자회사 법인을 세운다. 그리고 법인에 대한 증권을 블록체인 상에서 발행한다. 투자자들은 법인 지분에 투자하고, 보유한 지분에 따라 건물 매매 등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건물이 매각되면 수익을 지분 투자자에게 나눠주고 법인은 없어지는 방식이다.

임정건 엘리시아 대표는 “이러한 사업 모델은 특정 직군이 사라지는 개념이 아니”라며 “투자자가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투자 상품을 구축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서비스를 운영할 때 “전문적으로 중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가치 등 다각도에서 정보를 수집해야 하기에 다양한 플레이어의 참여가 필수적이란 설명이다.

부동산 경매를 온라인으로…블록체인으로 데이터 무결성 보장

랜드박스는 블록체인 기반 비대면 부동산 경매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랜드박스 관계자는 “법원 경매 같은 경우 오프라인에서만 진행되고 필요한 문서도 많다”며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법정을 못 여니 채권채무 회수가 안 돼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까닭은 입찰 데이터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려는 데 있다. 블록체인에 기록된 정보는 위, 변조가 불가능해 데이터 무결성이 보장된다. 랜드박스 관계자는 “플랫폼에 경매 교육 등도 제공할 예정”이라며 “경매 대중화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오는 12월 중으로 첫 번째 물건 거래를 해볼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부동산 경매는 본인이 직접 참여하거나 공인중개사에게 대행을 맡길 수 있다. 누구나 쉽게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이 구축되면 공인중개사에게 위협이 될 수 있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랜드박스 관계자는 “공인중개사의 판매 채널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답했다. 공인중개사가 보유한 물건을 경매 플랫폼에 올려 판매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공인중개사끼리 서로 매수자와 매도자를 연결해 계약을 체결하면 수익을 5대 5로 나눠 가져야 하지만 경매 플랫폼에 올리면 수수료가 훨씬 적다”고 설명했다. 다만 경매 물건은 시가보다 가격이 낮게 책정이 돼야 하기 때문에 랜드박스 선정위원회가 사전에 권리분석, 가격 등을 검토하고 시가보다 높은 가격의 물건은 플랫폼에 올리지 않는다.

자산유동화·경매·담보대출까지…부동산으로 영역 확장하는 블록체인
출처=셔터스톡.


부동산 담보대출에 필요한 각종 종이문서 줄인다

블록체인 전문 기업 블로코는 꾸준히 부동산 관련 플랫폼 구축에 관심을 가져왔다. 지난 2018년 ‘블록체인 클라우드 기반 부동산종합공부시스템 시범 사업’에 참여했다. 이 사업은 국토교통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손잡고 추진한 시범사업이었다.

블로코는 정부망에 있는 부동산 데이터와 블록체인 장부를 연결하는 기술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다. 제주도 내 토지대장을 비롯한 부동산 장부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블로코 관계자는 “그 이후 후속 사업으로 연결되진 않았다”고 전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발표에 대해서도 과거에 진행했던 사업과는 별개 사업이라고 전했다. 그는 “만약 실제 그러한 시범과제가 나온다면 지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8월엔 부동산 종합서비스 업체인 리얼티뱅크와 블록체인 기반 부동산 서비스 및 플랫폼 개발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관계자는 이 플랫폼은 “일반적인 부동산 계약하는 플랫폼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리얼티뱅크는 부동산 담보대출에 전문성이 있다”며 “담보대출을 할 때 필요한 서류를 블록체인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고 전했다. 그는 “공인중개사 등의 밥그릇을 뺏으려는 게 아니라 플랫폼으로 기존 직업군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4차 산업혁명…피할 수 없는 흐름, 협력해야”

현재까지는 공인중개사 역할을 대신하는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가 등장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래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장담하기 어렵다. 유선종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공인중개사가 하는 일을 블록체인이 대신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흐름”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판이 바뀔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러한 흐름에 개인 사업자가 대부분인 공인중개사가 주도적으로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국토교통부,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등이 협력해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협회가 변화를 무조건 거부하기 보다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사회 발전을 도모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도예리 기자 yer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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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터와의 전제 계약을 통해 게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