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시장과 금융시장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막대한 돈을 찍어내기 때문이다. 한 번 시중에 풀린 돈은 주식이나 주식, 금 등 어딘가에 달라붙는 속성이 있다. 암호화폐 수요도 분명 늘어날 거라 본다.” 6월 2일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과 화폐전쟁’이라는 주제로 열린 열린 B캐피털리스트 블록체인 트랜스포메이션 세미나에서 신제윤 전(前) 금융위원장은 암호화폐 시장을 이같이 전망했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 민족주의 우려
신 전 위원장은 “과거의 위기가 탐욕과 공포에서 비롯됐다면 지금은 무지와 공포, 즉 경제 외적 요인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가장 우려되는 건 경제 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다. 그는 “경제 민족주의가 등장하면 기간산업이 국유화되고 주요 원자재 등에 대한 수출이 가로막힌다”며 “국경이 봉쇄돼 자급자족 경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경제 민족주의가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경제 민족주의로 글로벌 총수요가 감소하면 일부 저개발국가는 채무위기에 빠지고 기업들은 줄도산을 겪게 된다”며 “그러면 대규모 부실채권이 생기고 금융경색이 심화돼 또 다시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ㆍ중 갈등, ‘무역戰’에서 ‘화폐戰’로 확산
이런 가운데 신 전 위원장은 미국과 중국 간 충돌이 무역에서 자본, 화폐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당초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하고, 우방국들에게도 중국 제품을 쓰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하지만 이러한 무역 분쟁은 어디까지나 ‘간보기’ 수준에 그칠 뿐 본격적인 대립은 자본과 화폐 분야에서 발생할 것이란 설명이다.

최근에는 화폐 방면에서 양국이 눈치보기 게임에 돌입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중국이 추진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현금없는 거래, 투명한 사회 구축을 명목으로 내세우지만 사실상 금융거래 통제를 강화하고 달러의 지급결제망에 도전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시중에 풀린 돈은 암호화폐에 달라붙는다
코로나 사태 이후 암호화폐 수요는 분명 늘어날 것이라는 게 그의 관측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실물시장과 금융시장의 디커플링 현상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당국이 찍어낸 돈은 어디든 가서 붙는다”며 “그게 주식이나 부동산, 금일 수 있고 암호화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암호화폐는 국가의 통화주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 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자국의 통화가치를 신뢰하지 못하거나 금융 인프라가 열악한 베네수엘라ㆍ짐바브웨 등이다. 하지만 그 외 국가에서는 시중은행이 암호화폐를 취급하도록 쉽게 용인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에서도 제도권의 입장이 아직은 강경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금까지 만나온 정부 관료들은 암호화폐란 단어만 꺼내도 극심한 부담감을 보였다”고 말하며 단기간 내 경색된 분위기가 해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권선아 기자 kwon.se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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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디와의 전제 계약을 통해 게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