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문정은 기자]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뚫는 자는 흥한다.”

한중섭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는 국내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현 상황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현재 암호화폐 산업 추진을 위한 강대국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 파워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중국은 정부 주도 디지털화폐전자결제(DCEP) 발행을 앞두고 있고, 미국은 페이스북 등 대형 기업들을 내세워 다양한 암호화폐 사업 추진을 발표하고 있다. 일본도 암호화폐 제도화에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강대국들이 이처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는 2년 넘게 ‘블록체인 사업은 육성하되 암호화폐는 규제하겠다’라는 입장에서 한발자욱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국내 암호화폐 거래량은 대폭 줄어들었고, 대기업들은 몸사리기에 나서고 관련 프로젝트들을 살 길을 찾아 해외로 떠나고 있다.

한중섭 센터장은 <블록미디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블록체인 산업의 국내 현황을 진단하고, 미래의 디지털 금융에 대한 시각을 공유했다.

– 일부 강대국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암호화폐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반해 국내는 여전히 규제 리스크 등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암호화폐는 나쁜 것, 블록체인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규제 기관의 보수적인 태도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금융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치안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투기성 매매를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암호화폐가 실생활에 활용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블록체인이 ‘글로벌 산업’이라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동남아시아, 중동 등 다양한 국가들이 이 산업의 패권을 쥐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고, 암호화폐에 친화적인 일부 선진국 및 금융 인프라가 낙후된 개도국 위주로 조만간 암호화폐 실생활 적용 사례들이 많이 등장할 것이다.”

– ‘디지털 자산은 000이다’에 답한다면.

“디지털 자산은 금융의 패러다임 변화다.”

– 변화 흐름 속에서 특히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디지털 금의 역할이 여러 암호화폐 가운데 ‘비트코인’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가.

“첫째는 ‘상징성’이다. 비트코인은 최초로 등장한 암호화폐다. 가장 역사가 길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내 주변에는 암호화폐가 비트코인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것은 비트코인이 엄청난 브랜드라는 것을 뜻한다.

비트코인은 실제 ‘금’과 같은 성질도 가지고 있다. 희소성을 지니고 있으며, 환헤지(환율 변동 위험 회피), 인플레이션 헤지 역할도 하고 있다. 통제하는 주체가 없는 비트코인이 현재 가치저장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 지난 8월 체인파트너스 보고서에 따르면, 키프로스 사태,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 북한 핵실험 그리고 최근 미중 전쟁 갈등 심화 등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 때마다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했다.)

“현재 비트코인의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는 높은 가격 변동성, 적은 유동성, 규제 환경 등은 대개 과거 금도 겪은 것이고, 이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암호화폐가 결제, 송금, 유틸리티 등 나름의 영역에서 쓰일 수 있겠지만, 디지털 금으로써 비트코인의 지위를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최근에는 미국 기업들이 비트코인 결제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백서에도 비트코인이 ‘P2P(개인 간 거래) 전자화폐’로 설명돼 있다. 어떤 이유로 미국 기업들이 뛰어드는 것일까.

“비트코인 결제 시장의 선구자들은 비트코인이 투기성 자산을 넘어 ‘인터넷 기축통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하고 있다. 이들은 비트코인을 결제에 사용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구축한 ‘커스터디’나 ‘오프체인(블록체인 외부) 솔루션’을 활용해 비트코인의 확장성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비트코인 결제 시장의 선구자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뉜다. ▲백트에 참여하는 스타벅스와 마이크로소프트 ▲미국 최대 전자결제 시스템 업체 월드페이(Worldpay)를 인수한 피델리티 ▲트위터와 스퀘어 등이다. 최초의 비트코인 결제 대중화는 2020년 스타벅스일 것 같다.” (백트는 비트코인 선물 플랫폼으로, 내년 상반기 중으로 비트코인 결제 앱을 출시할 예정이다. 비트코인 수탁 서비스를 시작한 피델리티는 지난 3월 월드페이를 약 40조원에 인수하며 결제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트위터와 핀테크 기업인 ‘스퀘어’의 대표인 잭 도시(Jack Dorsey)는 비트코인 예찬론자로 유명하다.)

– 그렇다면 가치저장 기능과 결제 수단 기능, 이 모두 비트코인으로 가능하다고 보는가.

“언젠가 비트코인이 안전 자산으로 기능하고, 실생활에서 결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비트코인이 투기성 자산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 비트코인은 자국 법정화폐 가치가 폭락하거나 금융시장이 불안하고, 불안정한 치안을 보이는 국가들 위주로 대안적 가치 저장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점차 하락하는 추세이고, 규제가 갖춰지고 있으며, 막대한 자본과 이용자 규모를 갖춘 글로벌 기업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지금은 비트코인이 자산과 결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황당하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패러다임의 전환은 언제나 한 순간에 찾아온다. 우리는 2년 뒤 미래를 과대평가하지만, 20년 뒤 미래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20년 안에 위와 같은 시나리오가 실현될 잠재력이 높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중국과 미국이 비트코인 채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것인가.

“2100만개 비트코인 중 약 85%가 채굴됐다. 신규로 채굴될 비트코인의 수량이 많지 않고, 2100만개 채굴이 끝난 후에도 채굴은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작동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주체다. 현재 비트코인 채굴은 중국계 자본이 장악하고 있는데 미국계 자본은 이러한 상황이 불편하다. 블록스트림, 레이어1 같은 서구권 기업의 채굴 사업을 독려하는 미국계 자본가들의 의도는 명백하다.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미국의 금융 파워를 활용해 비트코인 파이를 키우고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중국은 비트코인 채굴을 도태 산업으로 분류한 것을 철회했는데, 이와 같은 행보는 중국이 미국과의 비트코인 채굴 경쟁에서 주도권을 넘겨줄 생각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비트코인은 탈중앙화를 이념으로 등장했는데 현실은 국가 간 쟁탈전처럼 흘러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비트코인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개인적으로 탈중앙화는 순진한 유토피아라고 생각한다. 탈중앙화의 의의는 적극 공감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대단히 어려운 이념이라는 것이다. 마치 만인의 평등을 외치며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던 공산주의처럼 말이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모든 혁신적인 기술은 상업화와 규제의 단계를 거치면 ‘제국주의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역시 지난 20년간 인터넷이 발전한 양상과 유사할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도 초기에는 대단히 탈중앙적인 네트워크였으나, 1990년대 이후 상업화와 규제의 단계를 거쳐 디지털 제국주의의 무대로 변질됐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탈중앙화라는 이념은 앞으로 점점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비트코인은 전통 금융권에 흡수되고, IT기업의 금융 사업에 활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기존 금융 소외 계층이 포용적인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비트코인의 가치는 아마 지금보다는 훨씬 상승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비트코인에 기반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 및 비트코인에 초기 투자한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성공한 것이다. 다만, 아나키즘적인 성향을 가진 사이퍼펑크(탈중앙화진영) 입장에서는 실패다.”

– 이렇게 변화하는 금융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

“기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와 관련 민간업체 양성화는 규제 기관의 역할이다. 그러나 (여러 국가들이 이 산업 패권을 쥐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블록체인 선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이상, 글로벌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한국이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한국은 나중에 한국형 비트코인 은행, 한국형 디지털 자산 플랫폼 이런 것을 만들려는 시도를 뒤늦게 할 것 같은데, 그 때 가서 해봐야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한국형 유튜브, 한국형 넷플릭스, 한국형 페이스북을 만들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의미한 짓인지 알고 있다. 폐쇄적이고 변하지 않는 국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 격언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뚫는 자는 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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