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그동안 만장일치로 기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균열이 생겼다. 10월 금통위에서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소수 의견이 나오면서다.

시장에서는 단기간 내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서는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면서도 높아진 미국의 금리 인상 종결 전망과 중동 분쟁에도 최근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이면서 한은이 본격적으로 성장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라는 진단이 나온다.

9일 한은이 공개한 ‘2023년 제19차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지난달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3.5%에서 동결했다. 지난 2월에 이어 6차례 연속 동결로 공식적으로는 금통위원 전원 일치다.

다만 세부 의견에서는 엇갈렸다. 5명이 물가 안정 시점 지연을 근거로 추가 긴축 가능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1명은 물가 압력과 경기 하방 위험이 상충되면서 금리 인상과 인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 보였다. 금통위에서 금리 완화가 언급된 것은 지난 2021년 8월 긴축에 나선 후 처음이다.

완화를 언급한 한 위원은 “국제유가 추가 상승 가능성과 민간소비 회복세 약화, 주요국 긴축 기조 장기화 등에 따른 대외수요 약화 가능성 등 하방요인이 우세하다”면서 “국내외 금융시장과 성장 및 물가 추이를 관찰하면서 추가 긴축 또는 완화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수의 위원들이 유가 불확실에 따른 고물가와 주요국의 긴축 우려에 우리나라 역시 금리를 높여 대응해야 한다는 시각을 보였다. 하지만 완화를 거론한 위원은 고유가를 경기 회복을 저해시킬 요인으로 꼽고, 글로벌 긴축 기조에 대해서도 주요국들의 경기 부진으로 우리나라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풀이했다.

시장에서는 소수 의견 출현에 주목하고 있다. 금통위에서의 소수의견이 앞으로 금리 결정의 예고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금통위에서 소수의견이 등장하면 빠르면 다음달이나 늦어도 4~5개월 후에는 소수의견이 주장한 방향대로 금리가 조정되는 일이 자주 나타났다.

금통위 직후 시장 상황도 금리 완화 시각에 힘이 실리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10월 금통위 2주 후에 열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하자 시장에서는 곧바로 금리 인상 종결 해석과 연준이 늦어도 내년 하반기까지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는 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통해 “FOMC 회의에서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일부 완화된 측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소시에떼 제네럴(SocGen)은 “성장은 2024년에 더욱 느려질 것이며, 인플레이션은 2024년 봄에 있을 첫번째 금리 인하 전에 3% 아래로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가도 우려와는 달리 안정세를 보이며 물가 부담을 낮추고 있다. 미국과 중국 경기 둔화 가능성에 원유 소비가 줄고, 중동 분쟁 확전 우려가 낮아지면서다. 8일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는 배럴당 75.58달러로 이틀 연속 70달러대로 떨어졌고, 브렌트도 80달러 아래로 내려왔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날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중동 사태 영향에도 최근 국제유가가 지난 7월 수준을 회복하며 물가 개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는 높아졌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날 ‘하반기 경제 전망’을 통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4%로 8월 전망보다 0.1%포인트 낮췄다. 내년 예상치도 2.2%로 1%포인트 내렸다. 한은의 올해와 내년 전망치는 각각 1.4%와 2.2%로 이달 말 새로운 수치를 제시한다.

앞으로 금통위에서는 경기 부진에 금리 인하에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과 불확실성에 일단 동결하면서 긴축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미국 금리와 물가 불확실성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상황에서 한동안 동결 가능성이 높지만, 성장도 함께 고민해야 될 때가 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금리 완화’ 의견이 개인의 소신 발언으로 당장 금리 인하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완화를 긴축과 함께 언급했다는 점과 함께 물가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점, 최근 정부와 한은이 동시에 가계부채 급증을 주요 정책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한은이 단기간 내 금리를 움직이기 어렵다는 시각에서다.

이 총재도 10월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수 의견에 대해 “당장 금리를 내리자는 의견은 아니다”며 “앞으로 3개월 기간으로 봤을 때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있고, 낮출 수도 있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소수의견이 등장하면서 앞으로 금통위에서 위원들 간의 힘겨루기가 보일 여지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물가와 부채, 성장 불확실성에 당장 인하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을 내년 하반기로 예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njh3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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