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유동성 파티는 끝났다(Party is ending)”. “멀리 있던 ‘회색 코뿔소’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 수장들이 연일 ‘회색 코뿔소’를 이론을 언급하며 ‘주의보’를 내리고 있다. 회색 코뿔소란 이미 알려진 위험요인들임에도 방심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면 피하지 못해 큰 위험에 빠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회색 코뿔소가 거대하고 육중해 멀리서도 움직임을 알아챌 수 있지만, 모른 척 하다 막상 돌진해 올 때 피하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장이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처음 사용했다.

장기화되는 코로나19 상황,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테이퍼링 가속화, 금리인상, 중국 경기 둔화, 미중 갈등 같은 이슈 등이 최근의 대표적인 ‘회색 코뿔소’로 볼 수 있다.

그간 글로벌 긴축시계가 앞당겨지면 초대형 성장주, 부동산, 가상자산 등 과열된 자산시장이 조정을 받고 유동성으로 끌어올린 거품이 꺼져, 몸집이 크게 불어난 가계부채가 뇌관이 될 것이란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자산가격이 폭락하고 시중금리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면 ‘영끌’, ‘빚투’족과 빚으로 생계를 유지해 온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이자부담이 급증, 가계대출 부실이 현실화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부채의 규모와 질이 취약해 금리인상에 따른 부채발 리스크 전이에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분기 신용갭은 18.4%포인트로 ‘경보’ 단계에 진입했다. 이는 민간 부문의 부채 위험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2년 이후 최고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들 ‘회색 코뿔소’는 단순히 가능성을 넘어, 현실화 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글로벌 시장엔 유동성 파티가 이어졌다. 증시는 연일 역대 최고치를 찍었고, 부동산 시장과 가상자산도 급등을 넘어 폭등하는 등 호황을 누렸다.

코로나19 이후 시중에 풀린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지난해 3300선까지 넘나들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왔던 코스피 지수는 올 들어 하향세를 보이다 지난 28일에는 급기야 장중 한때 2600선까지 무너졌다. 비단 우리나라 뿐만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증시도 대부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3일 ‘경제·금융 전문가 간담회’에서 “회색코뿔소로 비유되던 잠재 위험들이 하나둘씩 현실화되고 있는, 그야말로 ‘멀리 있던 회색코뿔소’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26일 뉴시스가 ‘2022년 금융정책 방향’을 주제로 개최한 금융포럼에서도 특병강연을 통해 “코로나 뿐 아니라 (불안한)금융시장 상황으로 인해 마음이 무겁다”며 “미국 시장 하락 등 걱정이 많은데 정말 회색코뿔소가 다가오는게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수 차례 ‘퍼펙트 스톰’을 경고했던 정은보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5일 금융 연구기관장들을 만나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조정될 경우 국내 금융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경고음을 울렸다.

◆”가계부채 부실·부동산 거품 붕괴 등에 충분히 대비해야”

금융당국은 올해 금융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가계부채와 자영업자, (비은행)금융권발 리스크 관리 집중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당국은 지속된 저금리 기조와 부동산 시장 과열 등으로 1800조원까지 불어난 가계부채 규모와 증가속도 조절을 위해 강도 높은 ‘총량한도 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지난해 보다 1~2%포인트 낮춘 4~5%대로 관리하겠다는 목표여, 금융사들은 올해 가계부채 증가금액을 지난해 보다 13조원 가량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고 위원장은 “지난해엔 강도 높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총량 규제에 주력했다면, 올해는 가계부채 시스템 관리에 초점을 맞추겠다”며 “차주단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확대 등 시스템에 기반한 가계부채 관리를 기본틀로 하면서 총량규제는 실물경제, 금융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탄력적으로 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영업환경 악화로 지난 2년간 급증한 자영업자 등 개인사업자대출도 우리 경제의 ‘회색 코뿔소’로 지목된다. 코로나19로 인한 영업타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통화긴축에 따른 금리상승까지 더해지면 이들의 대출 부담과 부실화가 우리 경제의 또 다른 뇌관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대출은 584조원에 달하며, 해당 차주들이 받은 가계대출은 304조원로 총 888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증가율(전년동기비)은 14.1%에 달한다.

이에 금융당국은 코로나19 금융지원조치 종료 일시에 급격한 상환 부담이 몰리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등 질서 있는 정상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아울러 취약차주발 리스크가 금융시장으로 증폭·전이되지 않도록 금융권에 충당금 추가 적립 등 손실흡수능력을 강화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고 위원장은 “금융권은 현재의 경제·금융여건을 냉철히 평가하고, 불확실성 확대와 금융불균형 누적에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이후 우리 금융권의 손실흡수능력 제고 노력이 주요국에 비해 충분치 못하다는 평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은보 원장도 “금융회사들은 부동산 관련 자산에 대해 충당금을 충분히 적립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당국에 따르면 국내 은행(지주회사)의 코로나19 전후 평균 대손충당금 전입액 증감율은 55.7%로, 같은기간 해외 평균(127.9%), 북아메리카(309.5%), 유럽(234.5%) 등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도 금리인상시 우려되는 가계부채 부실과 부동산 거품 붕괴에 사전적으로 충분히 대비해 연착륙을 유도하는 등 충분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영수 키움증권 이사는 “대출규제 등으로 부동산 시장의 조정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가계부채가 시스템 리스크로 파급되지 않도록 대비가 필요하다”며 “부동산 시장의 조정이 금융부실로 전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회사의 충당금 적립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자영업자 대출관련 리스크가 누적되고 있고 최근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대출 등이 증가하며 경기변동시의 잠재 리스크가 확대됐다”며 “취약차주 및 비은행권발 리스크 확산에 대비해 취약차주에 대한 지원책 마련과 함께 비금융권에 대한 감독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anna22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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