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 법무법인 디코드 조정희 변호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020년 12월 20일 디지털자산 리플(XRP)의 운영사인 리플랩스(Ripple Labs, Inc) 및 그 임원들을 증권법 위반으로 제소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시장에서 논의되던 디지털자산의 증권성 여부가 정면으로 다뤄진 사건으로 디지털자산 업계는 물론,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SEC의 제소 요지는 XRP가 미국 증권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리플 측이 증권법상 요구되는 증권신고서 등을 제출하지 않고 이를 매수인들에게 홍보 및 판매하여 증권법을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 법원 약식판결의 논리, “판매 방법에 따라 증권법 위반 여부 다르다”

뉴욕 남부지방법원은 제소가 있고 2년 반 정도 지루한 절차적 공방을 주고받은 후 2023년 7월 13일 처음으로 이에 대한 약식판결(“약식판결”)을 내렸다. 

법원의 아날리사 토레스(Analisa Torres) 판사는 ‘XRP를 기관투자자들에게 판매한 부분(“기관 판매분”)은 증권법 위반이 인정’되지만, ‘디지털자산 거래소 등 거래플랫폼이나 거래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판매한 부분(“거래소 판매분”)은 증권법 위반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묘한 결론을 내렸다. 

위 법원은 XRP 홍보 및 판매가 미국 증권법 투자계약증권 여부 판단을 위해 적용하는 하위 테스트(Howey Test)를 충족하는지를 요건별로 면밀하게 검토하였다.

검토 결과 하위 테스트의 모든 요건을 충족하는 기관 판매와 달리, 거래소 판매는 매도인과 매수인이 서로를 알 수 없는 블라인드 거래(blind bid/ask transaction)로 이루어졌는바, 매수인들이 지급한 금원은 리플의 사업적 노력에 따른 수익에 대한 기대로 투자한 것이 아니어서 하위 테스트의 세번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 판단의 이유다. 

디지털자산의 판매방식에 따라 하위 테스트 적용여부를 달리 판단하며 거래소 판매분에 대해서는 증권법 위반이 아니라고 본 위 약식판결은, “모든 디지털자산은 기본적으로 증권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취하던 SEC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디지털자산업계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더욱이 이 약식판결에 대한 SEC의 중간항소 신청을 위 법원이 2023년 10월 3일 “의견 차이에 대한 실질적인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하였는데, 디지털자산업계는 이 역시 매우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

# SEC의 임원 제소 취하, 항복이 아닌 법적 논리 재정비 가능성 높아

그런데 위 항소 기각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2023년 10월 19일 이 사건에 사람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있었는데, SEC가 리플의 임원들인 크리스찬 라슨(Christian Larsen)과 브래드 갈링하우스(Brad Garlinghouse)에 대한 제소를 취하한 것이다.  

SEC는 당초에 리플과 그 임원들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인데, 임원들인 라슨과 갈링하우스에 대한 소송이 취하됨으로써 리플에 대한 소송 부분만 앞으로 법원의 추가 판단을 받게 되었다.

리플랩스 법무담당임원은 이에 대해 “SEC는 임원들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고, 이를 취하함으로써 굴복했으며, 이는 합의가 아닌 SEC의 항복”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라슨과 갈링하우스를 대리했던 로펌들도 이는 완벽한 승리라며 자축하고 있다.

SEC의 서슬 퍼런 소송 위협에 직면하며 응소할 수 밖에 없었던 이들 임원진들에게, 이는 물론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전 세계의 디지털자산업계에게도 자축할 만한 희소식일까.

이로 인한 영향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SEC가 왜 임원 개인들에 대한 소송을 취하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들이 나오고 있는데, 코인베이스 사건과 같은 보다 승소 가능성이 높은 사건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의견도 있고, 임원 개인에 대한 소송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리플에 대한 소송에 불리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올 수 있어서라는 의견도 있다. 

# 개인 대상 고의성 입증 어려워, 기업 대상 소송은 이어질 전망

SEC가 아닌 다음에야 소송을 취하한 속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SEC의 라슨과 갈링하우스에 대한 당초 제소 내용과 위 약식판결의 결론을 함께 생각해 보면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 사건에서 SEC의 소송 내용은 ‘(1) 리플 회사와 임원들을 함께 상대방으로 한 부분’과, ‘(2) 임원 개인들만을 상대방으로 한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리플 회사와 임원들을 함께 상대방으로 한 부분은 미등록 증권을 모집한 증권법 위반 혐의이고, 임원 개인들만을 상대방으로 한 부분은 이들이 “알면서 고의적으로 또는 무모하게(knowingly or recklessly)” 리플의 증권법 위반에 대해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였다는 방조 혐의다.

미국법에서 “knowingly or recklessly”라는 표현은 확정적인 고의(knowingly)와 미필적 고의에 가까운 무모함(recklessly)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SEC는 라슨과 갈링하우스가 리플의 증권법 위반을 “알면서 고의적으로 또는 무모하게” 방조하였다는 혐의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라슨이 XRP가 증권일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XRP의 판매를 강행하였다”거나, “갈링하우스가 XRP가 증권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 대해 경고 받았고 이해하고 있었다”는 등의 주장을 하였다.

그런데 위 약식판결에서 SEC의 바램과는 달리 판매방식에 따라 증권성 인정 여부가 달라진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그러한 결론이 유지되는 한에서는 위 임원들이 “알면서 고의적으로 또는 무모하게(knowingly or recklessly)” 리플의 증권법 위반을 방조하였다는 입증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고의에 가까운 주관적 요건은 SEC에서 입증을 하여야 하는데, 약식판결에서조차 판매방식에 따라 디지털자산의 증권성 여부가 달라진다는 결론을 내리는 상황에서 위 임원들의 증권법 위반에 대한 고의에 가까운 주관적 요건을 입증하기란 사실상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요컨대, SEC가 임원들 개인에 대한 소송을 취하한 것은 약식판결의 결론으로 인해 이들에 대한 승소가능성이 낮아졌기 때문으로 보이며, 이 자체는 디지털자산의 증권성 인정 여부와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SEC는 리플 회사에 대한 소송을 계속 유지하면서 다른 승소 가능성이 높은 사건들에서도 디지털자산의 증권성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지금 즐거운 결론을 맞이한 라슨과 갈링하우스와는 달리, 디지털자산 업계는 여전히 SEC와 힘겨운 줄다리기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축배를 들기엔, 아직 이르다.

#법무법인 디코드 조정희 대표 변호사

조정희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 디코드(D.CODE)의 대표 변호사로, 주된 업무분야는 기업자문, 벤처투자, M&A, 부동산,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데이터 법, 핀테크와 블록체인입니다.

조정희 변호사는 법무법인 세종의 디지털 테크놀로지 및 데이터 법 그룹을 이끌면서, KT, 구글, 카카오, 네이버, 업비트, 쿠팡 등 다수의 기술 기반 고객들에게 고객의 비즈니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자문을 제공하였습니다.

현재 대한변호사협회 블록체인특별위원회와 스타트업 규제혁신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D.CODE는 법무법인 세종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분야의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온 4명의 파트너들이 독립하여 2021년 6월 설립한 법무법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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