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래현 박광온 기자 = “차례상 예산으로 20만원 어치를 샀는데 생각했던 양의 절반밖에 못 샀어요.”

미국에서 살다가 추석 명절을 보내러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김은희(56)씨는 추석 장을 보러왔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맞는 첫 추석이라는 김씨는 “그동안 부모님이 챙겨주셔서 잘 몰랐는데 직접 챙겨보니 물가 체감이 많이 다르다”고 토로했다.

추석을 채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가운데 차례상 준비를 위해 시장을 찾은 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남부지방의 가뭄에 여름철 집중호우, 폭염이 겹쳐 농산물 가격이 비싸진 반면 지갑은 가벼워진 탓이다.

지난 22일 낮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은 사과, 배 등 추석 성수품을 사려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장바구니 수레를 끄는 이들이 시장 초입에 들어설 때부터 상인들은 “추석이니 몇 개 더 줄테니 여기서 사가요” “싸게 해줄게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대문구에 사는 한점숙(68)씨는 “집 앞에 마트가 있지만 사과나 배 등이 3개에 1만3000원으로 비싸서 멀더라도 그나마 싼 먹거리를 살 수 있는 경동시장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6일 전국 16개 전통시장과 34개 대형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주요 28개 성수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 올해 차례상 차림 평균 비용은 지난해보다 4.9% 낮은 30만3002원으로 나타났다.

전통시장을 이용할 땐 26만3536원, 대형유통업체를 이용할 땐 34만2467원으로 각각 지난해보다 3.2%, 6.2% 저렴했다.

하지만 추석 장을 보러 온 손님들은 선뜻 물건을 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상대적으로 소득은 감소한 반면 체감 물가는 올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 물가 지수는 121.16으로 7월(120.08)보다 0.9% 올랐다. 생산자 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앞으로도 물가 상승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추석 차례상에 올라가는 농산물과 축산물 가격이 전월 대비 각각 13.5%와 1.5% 올랐다.

경기도 광명에서 올라온 김모(75) 할머니는 떡집 주인과 한참 흥정을 한 끝에 송편값을 깎았다. 김씨는 “옛날부터 여기가 그나마 값이 싸서 왔다”며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물가는 오르기만 할 뿐 전혀 안 내려가는 거 같다. 송편도 같은 양을 5000원이면 사던 게 이젠 1만원줬다”고 했다.

한씨도 “5~6년 전만 해도 20만원 정도로 추석 준비가 가능했는데 지금은 30~40만원까지 필요하다”며 “오랜만에 손주들 얼굴 보는 건 좋지만 명절을 치르고 나면 지갑이 텅텅 비니까 무섭다”고 전했다.

지난달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전국 1인 이상 가구(농림어가 포함)의 월평균 소득은 479만3000원으로 전년 대비 0.8% 감소했다. 물가 변동 영향을 제거한 실질 소득은 3.9% 감소했다. 이는 가계동향조사에 1인 가구를 포함하기 시작한 2006년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수준이다.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직장인 김모(35)씨는 온라인에서 대구 고향 집에 보낼 과일을 주문하려다 비싼 가격에 직접 가락시장을 찾았다며 “시장도 과일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아서 과일 대신 현금을 보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좀처럼 주머니를 열지 않는 손님들을 맞는 상인들의 고심도 깊다. 10년 가까이 과일 가게를 운영해 온 이모(56)씨는 “손님들이 과일을 들었다가 가격을 보고 내려놓으면 속상하다”면서도 “우리도 최소한의 마진은 남겨야 하기 때문에 가격을 더 내릴 수도 없고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고 한탄했다.

먹거리뿐만 아니라 꾸준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기름값도 부담거리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달 2주 차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ℓ(리터)당 1759.6원으로 전주보다 9.6원 상승해 10주 연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60대 남성 이모씨는 “이번 추석에 고향인 전북 김제에 가야 하는데 기름값이며 차례상 비용, 용돈까지 다 하면 70~80만원은 나갈 것 같다”며 “차를 타느니 기차 타고 내려가면 친척이 데리러 나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추석 물가 잡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전날 주재한 ‘제31차 비상경제차관회의 겸 범부처 지역 투자 지원 전담반(TF) 1차 회의’에서 20대 성수품 가격이 작년보다 6.4%가량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 145개 전통시장에서 오는 27일까지 온누리상품권 환급(구매액의 30~40%) 행사도 추진한다.

서울시도 지난 18일부터 추석 연휴인 다음달 1일까지 시내 106개 전통시장에서 제수용품과 농수축산물을 5~30% 할인해 팔고, 시장별로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온누리상품권과 사은품을 증정하는 ‘추석 명절 특별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rae@newsis.com, light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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