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혐의 고객 거래도 방치
거래소 “기존 AML 시스템 고도화할 것”

[서울=뉴시스]이지영 기자 = 국내 대형 코인거래소들의 불법거래 방지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이들 거래소는 20대 학생이 해외로부터 73회에 걸쳐 32억원 규모의 가상자산을 반입한 뒤 91회에 걸쳐 전액 현금화해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지난해 5개 원화마켓 사업자(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를 대상으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른 자금세탁방지 의무 이행 관련 현장검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은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

이번에 적발된 사례 중 비정상적 거래 유형이 가장 많이 드러난 것으로 확인됐다. 한 거래소는 급여 소득자인 고객 A씨가 9개월 동안 해외 등으로부터 1074회에 걸쳐 278억원 규모의 가상자산을 입고받아 1만2267회에 걸쳐 매도했음에도 FIU에 보고하지 않았다. 이때 현금화된 282억원이 712회에 걸쳐 전액 인출되는 비정상적 거래 패턴을 보였음에도 의심 거래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차명 의심 거래가 다수 적발됐다. 거래소는 95세 노인이 새벽 시간을 이용하여 30종 이상의 가상자산을 거래하거나, 73세부터 85세까지의 고령층 31명이 모두 동일한 해외 IP주소에서 프로그램 자동 매매를 이용하여 가상자산을 거래해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범죄 혐의가 있는 고객 거래도 방치했다. 수사기관으로부터 다단계 불법 행위 관련 영장 청구를 받은 고객 B씨의 가상자산 거래를 검토하지도, FIU에 보고하지도 않은 것이다.

유효하지 않은 고객 연락처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한 거래소는 고객 555명이 ‘011’ 또는 ‘017’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사용하여 연락이 불가능함에도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 또한 등록된 고객 전화번호 중 전화번호 172개는 복수의 고객이 동일하게 사용했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이같은 의심 거래들을 감시하는 체계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받는다. 거래소들은 의심 거래가 발견된 날부터 의심 거래 판단이 이뤄질 때까지 평균 80여일이 소요됐다. 검토기간이 가장 길었던 건은 의심 거래가 발견된 날부터 225일이 걸렸다.

의심거래 보고건수도 현저히 낮았다. 한 거래소는 고액거래자 2391명에 대해 발견된 의심거래(alert) 7만6970건 중 1118건만 FIU에 보고했다. 전체 의심거래 중 1.45%만 보고한 셈이다. 보고하지 않은 7만5852건에 대해서는 ‘동일인에 대해 기존 검토 이력이 있다’는 단순한 이유를 든 것으로 전해졌다.

배우자 계정을 이용한 임직원의 거래 행위도 발각됐다. 특금법에 따라 거래소 임직원은 해당 거래소를 통해 가상자산 거래를 할 수 없다. 하지만 FIU는 임직원이 자기의 계산으로 배우자, 직계존속 등 타인의 계정을 이용한 거래 행위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거래소 “기존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고도화할 것”

국내 대형 코인거래소들은 이번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기존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을 고도화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해당 대형 거래소 관계자 C씨는 “자체 이상거래탐지 모니터링을 통해 거래소 내 발생할 수 있는 이상 거래를 탐지 및 대응하고 있다”며 “또한 의심거래보고(STR), 고객확인(KYC) 등 특금법 및 금융당국 종합검사 기준과 항목을 중점적으로 보완하며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적발된 사례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 기존에 해왔던 시스템 고도화를 좀 더 집중해서 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대형 거래소 관계자 D씨 역시 “금융기관 수준의 AML 컴플라이언스 시스템 구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이의 일환으로 AML 전담 인력도 늘렸다. 앞으로도 AML 체계 고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례 적발로 거래소 의심 거래 보고 체계가 좀 더 강화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 E씨는 “은행은 이번에 적발된 사례들과 같은 유형을 FIU에 전부 다 보고하고 있다”며 “이번 사례 적발은 가상자산 거래소 정책이 상대적으로 느슨해서 발생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제 막 검사를 받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FIU가 요구하는 가이드대로 보고 체계를 좀 더 강화하면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불신도 점차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ee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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