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자금시장 ‘돈맥경화’를 해결하기 위한 국책은행들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국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에 경고등이 커져 기업지원 역량 약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은 국책은행들에 연일 기업들에 대한 유동성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등에 단기자금시장을 중심으로 정책프로그램의 매입 속도를 높일 것을 주문하는 한편, 채권 발행을 최소화할 것을 권고한 상태다.

산은과 기은은 당국이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추진 중인 ’50조+α’ 유동성 지원 조치에 따라 회사채·CP매입기구(SPV)의 추가매입 여력을 5조5000억원에서 10조원으로 확대했다. 또 증권사·건설사 보증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프로그램을 통한 매입도 실시하는 등 기업들의 ‘자금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올 상반기 3900억원의 정부출자에도 산은의 올 상반기 말 BIS 비율은 14.85%로 지난해 말(14.88%)과 유사한 수준에 그쳤다. 더욱이 올해는 산은이 최대주주로 있는 한국전력의 대규모 적자 영향으로 산은의 BIS 비율이 대폭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분법에 따라 한전 적자의 3분의 1이 산은의 손실로 잡히기 때문이다.

강석훈 산은 회장도 최근 내부회의에서 “연말 기준 BIS 비율 13% 방어가 쉽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BIS 비율은 BIS가 정한 은행의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로, 자본건전성 국제지표 기준인 바젤III는 주요 은행이 BIS 비율을 13% 이상 유지하도록 권고한다. 무엇보다 BIS 비율이 떨어지면 은행의 신뢰도 하락으로 고객 이탈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은행들은 이 비율 유지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도 조선·해운·철강·건설 등 위험업종의 경기회복이 가시화될 때까지는 산은의 자산건전성 관리 부담이 지속될 것으로 봤다. 지난 6월말 기준 산은의 위험업종여신 비중은 15.4%로 시중은행 평균(4.9%) 대비 높은 수준이다.

안태영 책임연구원은 “정부출자에 힘입어 자본적정성을 안정적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으나 지난해 1조1000억원의 정부출자에도 배당 확대와 위험가중자산 증가로 BIS자본비율이 전년 말 대비 하락, 보완자본 감소로 BIS총자본비율 하락이 더 크게 나타났다”며 “올 상반기에도 4000억원의 정부출자가 이뤄졌으나 기타포괄손익 감소로 6월말 BIS자본비율이 지난해 말 수준에 그쳤다”고 말했다.

윤재성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도 “기업들의 유동성 위험이 확대됨에 따라 산은은 피해기업들에 대한 대출 확대, 원금 만기 연장 등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채권시장안정펀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등을 통해 회사채 및 단기자금시장의 안정화에 나섰다”며 “금리인상 등 실물경기 둔화 가능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산은의 자산건전성은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기은의 지난 9월말 기준 총여신 중 위험업종여신 비중은 8.4%로 일반 은행 평균(9.1%) 보다는 소폭 낮다. 하지만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의 경우 2020년 3분기(8.7%) 이후 자산건전성이 개선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지난 9월말 요주의이하여신비율이 6.9%로 높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기은의 경우 설립목적상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지난 9월말 기준 79.6%로 일반은행(40.6%) 대비 현저히 높아 건전성 추이에 대해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양경 선임연구원은 “기업은행의 경우 가파른 금리상승으로 자산건전성 하방압력이 커지고 있다”며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 재연장과 취약차주에 대한 채무조정을 포함한 민생안정대책 추진은 금리상승기 급격한 부실 확대 방지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나, 잠재 부실 증가요인으로  자산건전성 관리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짚었다.

문제는 국책은행들의 건전성이 악화되면 유동성 공급 역할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자제령’으로 산업금융채(산금채)나 중소기업금융채(중금채) 발행도 녹록치 않다. 결국 이들 국책은행들이 BIS 비율을 높이려면 기업대출 등 위험자산을 줄이는 수 밖에 없다.

특히 강 회장은 올해 한전 적자가 21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이 경우 산은의 기업 지원 역량이 33조원 가량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그는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한전의 1조원 손실은 산은의 BIS 비율을 약 0.06%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다”며 “올해 말 한전의 손실을 21조원으로 예상할 때 산은의 BIS 비율은 1.37%포인트 떨어진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금융당국도 국책은행 등의 건전성 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산은을 비롯한 금융공기관들의 자본 적정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은 내년에도 자금조달 사정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며, 정부에 보다 적극적인 정책자금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내 주요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자금조달 사정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내 수출기업의 90%는 향후 6개월 이내에 자금조달 사정이 개선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또 안정적인 자금조달 환경 조성을 위해 정부가 우선 추진해야 할 정책과제로 ‘금리인상 속도 조절'(25.0%)와 ‘정책금융 지원 확대'(18.3%) ‘장기 자금조달 지원(18.0%)’을 꼽았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단기자금시장 경색 상황이 쉽게 풀리지 않고 기업대출 금리 상승폭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상황”이라며 “대내외 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금리인상에 신중을 기하는 동시에 일시적으로 자금경색에 놓인 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anna22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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