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탈중앙조직(DOA)

[블록미디어 프로메타 연구소 최창환 소장] “우리는 오늘 역사를 만들었다.”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 작은 탄식이 터져나왔다. 지난달 소더비는 미국 헌법(Constitution) 초판 인쇄본을 경매에 올렸다.

이날 경매는 막판까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낙찰 가격은 4,320만 달러(약 514억 여 원). 이틀 후 낙찰자는 헤지펀드 시타델을 만든 켄 그리핀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핀과 끝까지 경합했던 경쟁자는 컨스티튜션DAO라는 이상한 조직(?)이었다.

“헌법을 사서 전시하겠다”

DAO는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s(탈중앙 자율 조직)의 약자로, 블록체인 기술로 무장하고 암호화폐로 재정을 충당하는 스마트 조직이다.

컨스티튜션DAO는 “경매로 나온 미국 헌법을 사서, 대중들이 언제든 볼 수 있게 전시하겠다. 이 헌법 문서를 기초로 대체불가능토큰(NFT)을 만들어 판매하고, 수익은 투자자들에게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다. 물론 암호화폐로. 이렇게 모은 돈이 4000만 달러에 달했다. 컨스티튜션DAO는 당당하게 소더비 경매에 참여했다.

졌지만 잘 싸웠다

경매는 치열했다. 그리핀이 최종 낙찰자가 됐지만 컨스티튜션DAO는 거의 헌법을 손에 넣을 뻔했다.

그리핀은 낙찰받은 헌법 인쇄본을 아칸소에 있는 박물관에 맡겨 전시하겠다고 밝혔다. 컨스티튜션DAO가 아니었다면 그리핀 안방 금고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이번 경매의 주인공은 억만장자 그리핀이 아니라 DAO의 대의에 동의하면서 몇백 달러씩 푼돈을 모아준 다수의 일반인들이었다.

컨스티튜션DAO는 트위터를 통해 “오늘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다. 우리는 소더비 경매에 참여한 최초의 DAO다. 그러나 마지막 DAO는 아닐 것이다”라고 밝혔다.

경매 낙찰에 실패한 후 트위터에 올린 컨스티튜션DAO 소감문. 자료=컨스티튜션DAO 트위터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든다

컨스티튜션DAO에 참여한 인원은 1만7437명, 평균 참여 금액은 206달러다. 이들은 이더리움을 이용해 돈을 모았다. 크라우드 펀딩과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스박스닷머니(Juicebox.money)라는 플랫폼을 통해 모금했다.

이 플랫폼에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암호화폐를 모금하는 프로젝트가 많이 있다. 유명한 SF 소설 듄(Dune)의 육필 원고가 경매에 나오면 그걸 사서 전시하겠다는 DAO도 있다.

혹시 먹튀가 아닐까, 돈만 챙기고 사라지는 사기꾼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많지만 그렇지는 않다. 블록체인 기술은 DAO가 목표로 한 바를 이루지 못하면 자동으로 모금한 돈을 환불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로 자금의 모금, 목적 사업의 수행, 사업 이후 환불 또는 이익 배분을 스마트 콘트랙트(Smart Contract)에 의해 자동으로 처리하도록 프로그램화돼 있다.

컨스티튜션DAO도 헌법 낙찰에 실패하자 모은 돈을 참여자들에게 반환한다고 밝혔다. 참여자들은 클릭 몇 번으로 돈을 돌려받았다. DAO는 분산 조직이고, 의사 결정을 민주적으로 하도록 돼 있다. DAO가 스스로 다른 곳에 이 자금을 쓰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DAO의 선전과 해체선언

컨스티튜션DAO는 이더리움으로 모금을 하면서 ‘피플(PEOPLE)’이라는 DAO 거버넌스(governance) 코인을 발행했다. 거버넌스 코인은 일종의 투표권이다. DAO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수익도 분배받는다.

DAO의 대의에 찬성한 사람들은 DAO가 공개한 지갑으로 이더리움을 보내고, 대신 거버넌스 코인을 받았다. DAO가 목적으로 했던 사업을 수행할 수 없게 됐으니, 조직을 해체하고, 돈을 돌려주면 된다.

컨스티튜션DAO의 경우 피플 코인을 소각하고 이에 해당하는 이더리움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면 됐다. 지금까지 절반 정도 환불을 받고, 코인도 그만큼 소각됐다.

“환불받지 않겠다”

그런데 피플 코인을 가지고 있는 일부 DAO 참가자들이 환불을 받지 않았다. 피플 빌리버(People believer)라는 필명을 쓰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렉스 존은 5만6,000 개의 피플 코인을 메타 마스크에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더리움으로 돌려받기 위해서는 약간의 비용(gas)을 내야 한다. 가스비가 아깝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코인에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존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코인들이 무너질 때 피플 코인은 가격이 오히려 오르더라구요. 그때 생각했죠. 이건 밈(Meme) 코인이다.”

예상치 못한 진화… 밈코인

지난 추수감사절 직후 존이 들고 있던 200달러어치의 피플 코인이 7,200달러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 오미크론 공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최초 타격한 그 시점에 피플 코인은 급등세를 나타낸 것이다.

자료=코인게코

 

암호화폐 거래소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오케이이엑스(OKex)라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피플 코인을 상장한 것. 암호화폐 거래량을 추적하는 코인게코 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24시간 동안 피플 코인은 오케이이엑스 거래소에서 1억2,000만 달러(약 1,300억 원) 이상 거래됐다.

피플 코인은 0.5센트 수준에서 거래를 시작했다. 추수감사절 연휴 중 최고 16센트까지 가격이 올랐다. 현재는 5센트 정도한다. 최초 거래 가격 대비 10배 이상 오른 상태다.

스스로 진화하는 DAO와 커뮤니티

밈 현상은 딱히 이유가 없다. 왜 이걸 좋아하는지, 왜 이것에 열광하는지. 그저 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냥 좋은 거다. 피플 코인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DAO의 특성과 밈 문화가 결합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화를 시작한 것.

DAO는 자율조직이다. 피플 코인의 경우 미국 헌법을 경매로 낙찰받아서, 이걸로 NFT를 만들고, 전시도 하고, 나중에 다시 경매에 붙여서 수익이 나면 코인 투자자에게 돌려준다는 ‘사업 목적’이 분명했다.

낙찰을 받지 못했으니 환불받고 조직을 해체하면 끝이다. 그런데 DAO가 스스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피플 코인 보유자들(커뮤니티)이 ‘자율적으로’ 해당 코인을 밈코인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뚜렷한 목적이나 코인의 쓰임새도 없다. 코인값이 오르면 좋다는 생각뿐. 최초의 사업 목적이 없어졌지만 커뮤니티 파워로 코인을 부활시킨 셈이다. DAO와 DAO 거버넌스 코인이 밈 문화, NFT 등과 결합, 디지털 자산시장을 전혀 다른 새로운 길로 이끌고 있다.


블록체인과 DAO

스마트 콘트랙트의 대명사인 이더리움도 사실은 거대한 DAO다. 이더리움은 비탈릭 부테린이라는 창시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더리움의 발전 방향은 부테린이 정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테린이 발전 방향을 정할 수 없다.

이더리움의 대의에 공감하는 수많은 노드(node), 수많은 개발자, 수많은 이용자들이 ‘자율적으로’ 이더리움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부테린은 이 커뮤니티의 일원이다. 그가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할 수 있지만 이걸 실행하기 위해서는 노드, 개발자, 이용자들의 자발적 동의와 참여가 필요하다.

누가 억지로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이더리움이 다른 유사 암호화폐보다 거래 속도가 느리고, 수수료가 비싸지만 비트코인 다음으로 넘버 2 암호화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정 세력, 특정 인물이 조직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자율 조직이 스스로 움직인다. 이더리움에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가 나서서 그 문제를 푼다. 블록체인의 탈중앙 철학이 조직화했을 때 그 조직이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컨스티튜션DAO가 스스로 부활한 것처럼 말이다.

인류는 어쩌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전혀 새로운 진화 단계로 이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본 칼럼은 12월 11일 한국일보 기승전비트코인 칼럼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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