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셔터스톡

[파커’s Crypto Story] “노동생산력을 최대로 개선 및 증진시키는 것과 노동을 할 때 발휘되는 대부분의 기능 숙련 판단은 분업의 결과로 보인다. 비록 소규모 제조업이지만, 오늘날 핀 제조업 공장에선 그러한 분업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핀을 만드는 중요한 작업은 약 18개의 독립된 조작으로 분할되고 있는데, 어떤 공장에서는 이 18개의 조작을 18명의 직공들이 나눠서 하고 있고, 다른 공장에서는 한 직공이 두세 가지 조작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완성품을 만든다면,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이 특수 업종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면, 그들 각자는 분명히 하루에 20개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하루에 1개도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산업혁명이 태동하던 18세기 후반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자신의 저서 국부론(1776년)에서 분업의 원리를 간파한 대목입니다.

같은 시기 동양의 최강국으로 평가받던 중국 청나라는 ‘강건성세’라는 전성기를 구가하며 그 위세가 서양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유럽 일부 학자들은 “중국이야말로 유토피아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윽고 절정기이던 1800년 기준 중국의 GDP(PPP) 순위는 서양을 통틀어 압도적인 1위를 자랑하게 됩니다. (물론 GDP 바깥의 기술적·질적 요소에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밀리는 추세이긴 했지만요) 심지어 19세기 초 유럽을 뒤흔들었던 나폴레옹은 “중국은 잠자는 사자이며 깨어나기만 하면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을 바라보는 서양의 시선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50년도 안되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데 청나라가 영국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사건이 바로 1840년의 아편전쟁입니다. 50년도 안되는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학자들은 수치상의 GDP를 뒤로 하고 인적·기술적 인프라에서 이미 18세기 후반부터 역전이 일어났다고 평가합니다. 유럽이 동경하던 중국은 ‘강건성세’ 중에서 강을 담당하는 18세기 초반의 황제인 강희제에 해당하고, 18세기 후반 건륭제 시절부터는 이미 태평성세에 젖어 몰락의 조짐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유럽은 18세기 후반부터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 등을 겪으며 인프라와 사상이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따라 중국을 유토피아로 바라봤던 시선은 점차 낡은 것으로 비쳐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나폴레옹이 중국을 ‘잠자는’ 사자로 비유했던 까닭도 마냥 좋은 뜻으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라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한편 영국 동인도 회사의 동아시아 진출도 이 무렵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영국은 중국의 차(Tea)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중국과 교역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은이 필요했습니다. 중국은 은을 화폐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국 수출품은 중국의 차와 달리 별로 경쟁력이 있는 상품이 아니라서 은이 계속해서 중국으로 유출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은 유출과 무역 적자를 메꾸기 위해 영국이 수출한 물품이 바로 인도에서 생산한 마약 ‘아편’이었습니다. 아편전쟁은 이와 같은 영국의 술수로 중국이 병들면서 발발한 사실상의 화폐전쟁이었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중국의 참패였죠.

#격변기의 태동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이후 19세기 후반의 전개를 보면 18~19세기 초의 모습은 격변기의 태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8세기에 분업의 원리를 이야기하는 애덤 스미스의 모습은 한없이 평화로워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제 막 산업혁명의 작은 씨앗이 움트는 모습을 간파하고 그것을 체계화하는 작업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태동기에는 작아 보이는 현상도 큰 발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업만 해도 산업혁명 시기 공장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핵으로 발돋움했죠. 또한 미시시피 거품과 남해 거품 사건으로 불리는 금융 버블의 초창기 모습도 모두 18세기 초중반에 일어난 일입니다.

유럽은 이 태동기의 작은 혼란을 혼란으로 남기지 않고 ‘선순환하는 투쟁’ 국면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19세기 급속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등, 역사의 흐름이 유럽을 현실에 안주할 수 없게끔 만들기도 했습니다. 반면 18세기 중국은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거 같은 태평성대를 구축했습니다. 이 압도적인 안정감이 되레 현실에 안주하는 환경을 만든 셈입니다. 18세기 말~19세기 초 중국의 GDP는 1위를 자랑하고 세계 은의 1/4 이상을 빨아들였지만, 그렇게 작은 태동들이 움트면서 표면상의 숫자 뒤로 이미 패권이 교체되고 있었습니다.

#다시 시작되는 격변기?

총력전(Total war)으로까지 팽창하던 패권 다툼은 2차 세계대전 종전을 기점으로 국지화·자본화되는 흐름을 보입니다. 특히 소련 붕괴 이후 자본주의 질서가 세계를 주도하면서 자본 경쟁 및 화폐 전쟁을 통한 패권 다툼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1971년 금태환 정지로 인한 브레튼 우즈 체제의 마지막과 신용화폐의 본격적인 출현은 격변기의 태동에 해당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체제의 모순이 드러난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로 인한 통화정책의 극단적 흐름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사건입니다. 실물과 금융 시장이 함께 요동치는 최근의 상황을 보면 이 사건들을 더 이상 태동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G2의 실질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가리키고 있음에도 주식 시장은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양적완화라는 숫자의 팽창을 위시한 높은 유동성이 주식 시장 등에 흘러 들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얼마 전 읽은 ‘마이너스 금리의 경고’라는 책에서는 이러한 양적완화와 저금리 정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2016년에 발간됐으며, 저자는 도쿠가츠 레이코라는 금융 베테랑입니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경제의 후유증으로 인해 미국보다 앞서서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독특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 국채의 90%가 국내 소유로 돌아가 있어 일본은 부채(일본의 국가부채는 GDP 대비 200%를 상회합니다)가 많아도 망할 일이 없다’는 명제에 대해 “웃기지 말라”는 독설을 날립니다. 그는 일본의 부채 및 마이너스 금리 기조는 사실상 외국 투자자가 달러-엔 거래에서 지속적인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로 달러-엔 상호차입 거래에서 달러가 확보되지 않으면 엔화 대출 금리가 달러 대비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이 발생하는데, 저자는 이를 ‘달러 조달 프리미엄’으로 설명합니다. 예컨대 엔화 금리가 0.1%인데 달러 조달 프리미엄이 0.3%로 붙으면 0.1%-0.3%=-0.2%라는 수치가 나옵니다. 엔화 금리가 0.1%로 마이너스 금리가 아니었는데도 달러 조달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마이너스 대출 금리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달러 베이스 외국인 투자자는 빌린 엔화 자금에 대해 +0.2%의 금리를 취하게 됩니다.

저자는 둘째로 미국채와 일본국채의 이율 차이를 비교하면서 5~30년물에 양자간의 격차가 0.5~0.6%나 발생한다는 통계를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미국의 투자적격 사채 수준으로 일본국채는 국채임에도 불구하고 투자가에게 사채와 동등한 투자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결국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재정확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일본인이 그 대가를 지불하는 쪽이고 해외투자자는 대가를 받는 쪽이다”이라는 견해를 내놓습니다.

#거품이 아닌 것과 거품인 것

물론 현재 상황에서 양적완화와 저금리 기조를 무턱대고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정책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질서가 당장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상황에서의 신속한 유동성 확대는 ‘거품 생산’이라는 부정적 측면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미국의 경우 양적완화를 한다고 해도 자금의 상당부분은 은행에 묶여 있습니다. 달러 가치 폭락 등의 극단적 상황이 단기간에 벌어지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실물과의 괴리 현상은 앞으로의 상황을 봤을 때 거시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실물 경제 상황이 풀리거나 금융 시장이 다시 충격을 받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시장이 괴리를 인식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해당 충격도 더 커지게 되겠죠.

#암호화폐가 금을 넘어 혁신의 아이콘 될 수 있을까

이러한 가운데 주식 시장 바깥에서는 금 이야기가 뜨겁습니다. 지금과 같은 제로금리 수준의 유동성 확대는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고 금과 같은 대체자산의 가격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금 가격은 계속해서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의 엔화가 표면적인 안전자산으로 인식돼 통화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엔저 현상을 이룩하기 어려운 것처럼, 달러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러야말로 최강의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양적완화라는 공급보다 달러 수요가 더 많아지면 약세 현상이 생각보다 나타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코로나19 당시 달러를 제외한 모든 자산이 폭락한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달러 약세가 꺾이지 않는 시나리오를 고려해도 금이 오를 가능성은 높게 점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저금리 기조 아래 달러 강세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미국 주식 시장과 금까지는 가격 부양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달러와 금은 반비례 관계를 형성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금리 인상 국면에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저금리 국면에서는 어떻게든 유동성이 흘러 들게 되고, 이러한 기조가 미중 갈등 등의 요소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된다면 메이저 주식 시장의 독주(물론 현재 상황에서 메이저 시장의 독주는 신흥국의 침체를 담보로 합니다)와 함께 금 시장이 덩달아 오를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금광기업 배릭 골드에 5억 63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집행했습니다.

암호화폐의 대장으로 불리는 비트코인도 ‘디지털 금’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금과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지난 2017년 이후 주식 시장과 비트코인의 상관관계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트코인 분석은 S&P 지수와 금과의 상관관계를 동시에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금과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는 비트코인의 지위가 아직까진 불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점차 금과 같은 ‘하나의 자산’으로 굳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줍니다. 최근 OCC(미국 통화감독청)의 암호화폐 수탁 서비스 허용 방침도 궤를 같이하죠.

하지만, 암호화폐가 디지털 금과 같은 지위로만 만족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시대의 변화가 그 이상을 요구하고 있고, 대내적으로는 여기에 그치면 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젝트의 미래가 어둡습니다. 그렇게 되면 시장이 기대하는 파이의 최대폭도 줄어들게 되겠죠. 매트릭스포트 대표 거웨성도 지난 12월 조인디가 개최한 디지털 자산 포럼에서 “향후 암호화폐의 불마켓을 기대하려면 암호화폐가 금보다는 인터넷과 비슷해야 한다”며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암호화폐 업계 바깥에 있는 레이 달리오 등의 금융 전설들도 “단순 통화·재정 정책과 자산 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역사는 위기를 맞을 때마다 항상 혁신이 구원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레이 달리오는 지금이 바로 그 혁신이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마이너스 금리의 경고’ 저자인 도쿠가츠 레이코 역시 마이너스 금리에 의한 표면적 호황에 젖어있을 게 아니라 인적 자본의 중요성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이러한 정책에 부작용이 발생해 엔화 ‘초약세’ 현상이 발생한다면 혁신이 사라지고 인재 유출이 일어날 것을 염려합니다.

결국 실물이 뒷받침된 암호화폐의 중흥은 단순 자산의 지위를 넘어선 혁신의 가치가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늘날의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그 혁신을 향해 바람직하게 나아가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나타내는 시선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러나 비트코인이라는 자산과 블록체인 기술의 명분은 그러한 의문과는 별개로, 수년 전과 달리 시장의 공식적인 선택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날이 갈수록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는 요즘, 암호화폐가 그 혁신의 길을 걸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박상혁 기자 park.s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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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디와의 전제 계약을 통해 게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