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 대거 가담했으나 위험자산 간주 우선 처분
장기적으로는 신뢰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조심해야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던 암호화폐가 폭락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암호화폐가 급등하다가 폭락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수퍼볼 미식 축구 경기 중계 때 암호화폐 거래소인 크립토닷컴사 TV광고에 미 프로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출연해 “역사를 이루려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고는 “용감한 사람만이 부를 누릴 수 있다”는 문구로 끝을 맺었다. 지난주 크립토닷컴은 직원 5%를 해고했다.

암호화폐 사업은 자신만만하고 낙관적이었다.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반대론자들에게 “가난한 채로 살아라”며 으스댔다. 암호화폐를 사지 않으면 부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암호화폐는 인기 폭발 곰인형 장남감과 닷컴 주식과 록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더한 수준의 인기를 끌었다. 열광적이고 돈많은 유명인사들이 가담했다. 환상과 위험 거부, 탐욕을 바탕으로 역사상 최고 수준의 거품을 누렸다.

그러나 시장이 폭락하고 전세계적 고물가에 직면하면서 암호화폐는 최우선적으로 처분해야 하는 자산으로 몰락했다.

지난해 11월 최고가를 기록할 당시와 비교할 때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 2조달러(2582조원) 가량 줄었다. 이는 전체 암호화페 시가총액의 3분의 2가 넘는 액수다. 개당 6만7802.30달러(약 8753만원)에 달하던 가격이 21206달러(약 2738만원)으로 폭락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이용자들은 출혈이 심하고 암호화폐 회사들은 종업원들을 해고하고 있다.

암호화폐 세계도 거품이 터져 “겨울”에 접어들었다. 투자자들과 종업원들은 이 겨울을 다른 산업분야보다 더 심하게 겪고 있다. 소동이 가라앉은 뒤엔 적지 않은 암호화폐와 회사들이 사라질 것이다.

1990년대 닷컴 붐 당시 거부가 돼 암호화폐에 큰 돈을 투자한 번 마크 쿠반은 “주식과 마찬가지로 암호화폐도 호황기에는 모두가 돈을 번다. 주식과 암호화폐가 폭락하면서 눈먼 돈으로 비정상적으로 유지되던 회사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절정기

비트코인은 2009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의 개설자가 만든 전자화폐다.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가치의 등락이 극심했다. 그러나 투자자들 상당수가 기존의 금융시스템이 실패하고 암호화폐가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종종 폭등했다.

지난해 4월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상장했고 시가총액이 850억달러(약 109조7350억원)에 달하는 최초의 비트코인 중심 상장회사가 됐다. 암호화폐 업계의 분수령으로 간주되는 사건이었다. 지난 8월 마이애미시가 마이애미코인을 발행했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농구스타 제임스가 출연한 크립토닷컴의 광고가 수퍼볼을 장식한 뒤로 메이저리그 심판복에 암호화폐 회사명이 등장했고 주요 경기와 대학 스포츠에도 등장한 이유다. 코인베이스는 NBA 농구 결승전에 광고를 냈다.

지난 2020년 5월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인 폴 튜더 조운스가 비트코인에 소액을 투자했다고 공개하면서 “훌륭한 파생상품”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비트코인은 개당 9000달러(약 1163만원)이었다. 빌 밀러, 앨런 하워드, 스탠리 드러큰밀러 등 다른 전문 투자자들이 뒤를 이었다. 주류 투자자들이 갑자기 비트코인에 뛰어든 것이다.

지난해 12월 로스앤젤레스의 유명한 “스태이플센터” 경기장이 “크립토닷컴 경기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상 최대인 7억달러(약 9047억원)에 이름을 사들인 것이다.

올해초 마이애미 암호화폐 총회에 2만5000여명이 몰려들었다. 프란시스 수아레스 시장은 뉴욕 월스트리트의 황소상을 능가하는 3.6m 길이, 1.4t의 테크노 스타일 황소 제막식을 거행했다. 총회의 하일라이트는 종이반죽으로 만든 연기를 내뿜는 거대한 화산이었다.

총회 참가자들은 앞다퉈 비트코인의 미래를 칭송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마이크로스트래티지사 공동 창업자 마이클 세일러는 10만 비트코인을 사들여 장부상 가치가 60억달러(약 7조7592억원)에 달하면서 “비트코인의 미래를 낙관한다”고 공언했다.

ARK 인베스트먼트 CEO 캐시 우드는 비트코인이 개당 100만달러(약 12억9360만원)까지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팔사 공동 창업자 피터 티엘은 암호화폐 “반대인 명부”를 만들어 공격해야 한다고 했다.

2015년 비트코인 투자를 시작해 현재 암호화폐 회사인 Hxro 네트워크의 CEO인 댄 군스버그는 “희열감과 든든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격정이 문제가 될 것임을 알았다고 했다. “그토록 빠르게, 말도안되도록 높은 가격이 유지될 순 없다. 중력이 다시 지구로 끌어내릴 것”이라고 했다.

◆폭락

인플레이션 우려가 대두하면서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흑자를 내지 못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했고 신흥기술기업들은 시장가치가 상반기중 절반 이상 줄었다. 암호화폐도 우선 처분 대상이 됐다.

올들어 지금까지 비트코인은 가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2020년 하반기 이래 최저치에 거래되고 있다. 이더리움은 올들어 68% 하락했다.

암호화폐 중심 금융서비스회사인 갤럭시 디지털 홀딩스의 리서치 책임자 알렉스 손은 “자산가들 사이에 자만심이 넘쳤다. 그로 인해 탐욕에 눈이 멀었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비지니스 모델과 암호화폐에 큰 돈을 투자했다. 그 거품이 꺼지고 있다. 수많은 암호화폐 펀드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LMAX 디지털사 자산거래 전략가 조엘 크루거는 암호화폐 붐이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자금 공급과 주식시장 활황에 따른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암호화폐가 그 시스템을 대체할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낙진

돌이켜보면 비트코인이 “훌륭한 파생상품”이라고 말한 조운스가 선견지명이 있어 보인다. 암호화폐의 거품이 경기부양 정책이 뒤집히고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꺼지는 것이다.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 회사들이 대거 무너지고 있다. 거래소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코인베이스는 지난 달 4억297만달러(약 5556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이용자들이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회사 임원들조차 회사주식을 처분해 서둘러 돈을 챙기고 있다.

이달들어 2012년 설립 이래 처음으로 직원의 5분의 1 가까이를 감원했다. 지난해 4월 상장 첫날 429.54달러(약 55만6000원)의 최고가를 기록했던 주가가 51달러(약 6만6000원)으로 떨어졌다. 제미니, 블록파이, 크립토닷컴도 직원을 해고했다.

지난달 초 큰 사건이 벌어졌다. 스테이블코인 테라USD가 폭락했다. 하룻밤새 테라USD와 이를 지탱하는 루나의 시장가치 400억달러(약 51조7280억원)가 사라졌다.

그 파장이 곳곳에 미쳤다. 이달초 암호화폐 대부회사인 셀시우스 네트워크가 120억달러(약 15조5208억원) 상당의 예치금 인출을 중지했다. 다른 대부회사 바벨 파이낸스도 지난 17일 인출을 정지했다. 암호화페 헤지펀드인 쓰리 애로우 캐피털사는 큰 손실을 기록하면서 자산 매각이나 회사 매각을 검토중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여전히 낙관론을 편다. 교육용 TV 프로그램 제작자 마샬 존슨 주니어는 지난해 비트코인이 3만8000달러하던 시기에 사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1개가 될 때까지 조금씩 사들이려는 생각이었다. 그는 지금도 비트코인의 미래를 믿고 계획을 바꿀 생각이 없다. 오히려 가격이 떨어진 지금 계획을 앞당길 수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C.J. 윌슨은 2012년 처음 비트코인을 접했다. 당시는 디지털화폐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 2019년 메이저리그에서 은퇴한 뒤 나카모토 사토시가 비트코인에 대해 설명한 백서를 읽은 뒤 가담했다.

자칭 불면증환자라는 윌슨은 심야에 비트코인을 거래했으며 곧 다른 암호화폐에도 관심을 가졌다. 전세계에서 열리는 암호화폐 회의를 기웃거렸다. 윌슨은 결국 비트코인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도 올들어 거품이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크립토닷컴이 로스앤젤레스 경기장을 사들였을 때 “어디서 돈이 나오지?”라고 의문을 가졌다. 암호화폐로 큰 돈을 번 사람의 커다란 요트 파티에 초대된 적도 있었다.

코인베이스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캘리포니아에 1억3300만달러(약 1719억원)짜리 저택을 사들였다. 마이애미 암호화폐 총회에 참석했을 때는 제미니사가 대저택에서 개최한 파티에도 참석했다.

그는 “내게는 그때가 최고점이라고 느껴졌다”면서도 여전히 비트코인을 믿지만 투자금을 늘리지는 않고 있다.

현재의 암호화폐 시장은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과 유사하다. 거품이 있는 동안엔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지 않았다. 인터넷에는 미래가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인터넷 회사들이 도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봤다.

세콰이어 캐피털사 숀 매과이어 파트너는 “장기적으로 암호화폐를 신뢰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샌프란시스코의 전문 음악인이던 켈리 밀러(35)는 수입이 없어지면서 로빈후드 마켓에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지난해 1월 도지코인 암호화폐를 샀고 가격이 급등했다가 폭락하는 것을 경험했다.

현재 이스탄불에 거부하는 그는 여전히 암호화폐에 돈을 넣어두고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비트코인, 이더리움, 솔라나를 사들였다. 특히 솔라나에 대부분의 자금을 넣었다. 최근 폭락사태로 포트폴리오를 바꾸기로 했다.

그는 “규제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더 안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암호화폐와  대체불가능토큰(NFT) 기술은 가치가 크지만 현재의 겨울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추락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호화폐에 대해 알지 못하던 2012년 댄 헬드는 텍사스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해 비트코인 모임에 참여했다. 그는 비트코인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려 애써왔고 많은 트위터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 그는 올들어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길거리에서나 텍사스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그는 비트코인이 기존 금융시스템이 가진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소한다고 믿는다. 지금도 그같은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2012년과 똑같은 생각이다. 나같은 사람이 많다. 이번 일로 비트코인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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