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김진배 기자] 암호화폐 거래에 대해 금융위원회(금융위)가 강제적으로 실명제를 도입하고 가상계좌를 제공하지 못하게 한 것은 위헌이며, 과세용 통계자료로 이용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16일 헌법재판소에서 ‘정부의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 등 위헌 확인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렸다.

이날 청구인을 대표해 참석한 정희찬 변호사는 “암호화폐 열풍이 불던 2018년 12월부터 금융위가 시행한 가이드라인은 공권력을 이용해 재산권 등 이용자의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정 변호사 측은 “국가의 공권력 행사는 긴급명령이 아니라면 법률에 따라야 함에도 해당 가이드라인은 이와 관련한 법률에 근거하지 못하다”면서 “이는 법률유보의 원칙을 위배한 것으로, 김영상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시행했을 때도 이러한 방식으로 시행됐다면 위헌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목적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으며 오히려 적절한 규제 또한 바라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 조치는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며 구체적 사례 또한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금융위 측은 “가상계좌를 통한 입출금 서비스는 거래소가 전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은행이 고객확인 의무를 다하기 어렵고, 이상거래에 대응하기도 어렵다”면서 “이런 차원에서 자금세탁 방지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실명확인 계좌가 논의된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위 측은 가이드라인 제시를 통한 실명확인계좌 시행이 청구인 측이 주장한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금융위 대리인은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은행법이나 특금법에 해당하는 법령상의 의무 위반 가능성을 파악하고 자발적으로 실명계좌를 시행한 것”이라면서 “당국 및 거래소들과 논의하면서 진행된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금융위 측은 이선애 재판관이 “해당 조치가 가상통화 과열을 막기 위한 조치인가?”라고 묻자 “그런 목적이 있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해당 조치를 취한 법률적 근거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뚜렷한 근거 법령은 부족하다”고 시인했다.

금융위 측은 이날 변론에서 해당 조치가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시행한 것임을 강조했다. 해당 조치가 법적 구속력이 없음에도 은행들이 스스로 필요성을 인지해 시행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금융위 대리인은 “해당 조치를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면서 “은행들이 필요성을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시행한 것이며, 시행하지 않았을 시 발생하는 자금세탁 등의 위험을 감수하며 가상계좌를 계속 제공하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청구인 측은 “금융위는 은행에 대해 인가, 인가취소,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는 수퍼 갑과 을의 관계에 있다”면서 “영향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비약일 수 있으나, 은행이 거액의 예수금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음에도 스스로 이를 포기한 행위가 사기업의 입장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나? 강제성이 있었을 수밖에 없다”고 응수했다. 다만 불법행위 차단을 위한 게이트키퍼로서 자금세탁 방지 및 의심거래 차단이 필요한 사안이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적법한 법률 근거에 따라서 시행돼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이날 참고인으로 참석한 장우진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자금세탁은 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개인간 P2P거래로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면서 “거래소는 거래 자체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추적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블록체인협회를 통해 자율 규제안을 만드는 노력이 있었다”면서 “2017년 12월 시행된 규제는 많은 부분을 배제한 채 이뤄지지 않았나 싶다. 공청회 등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제정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위원회 측 대리인으로 참석한 한호현 한국전자서명포럼 의장은 “입출금을 통제하는 것과 고객 확인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은 이미 국제적으로 논의된 사안”이라면서 “정부의 대책은 금융규제 체계 범위 내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최후 변론에서 청구인측 정 변호사는 “해당 조치는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기만적 주장”이라면서 “서로 다른 은행 사이에 입출금이 일어나는 것이 자금세탁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 금융생태계의 내재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뿐이지 가상통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가 이를 왜 실천하게 됐냐를 맥락에 맞춰 보면 개개인의 입출금 내역을 은행을 통해 쉽게 파악해 과세용 통계자료로 이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나쁜 국가 권력 행사의 전형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반면 금융위 측 대리인은 “가상통화가 익명성으로 인해 자금세탁이나 마약거래 등에 이용되고 있으며 차명거래 등 금융거래를 곤란하게 만들어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며 “해당 조치는 금융기관의 판단에 따른 자발적 조치이지 공권력 행사가 아니다”고 강조하며 변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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