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發 에너지 위기·미국 금리 인상으로 유로화 약세
유럽, 수출에 유리하고 여행객 늘어나며 관광수입 증가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인플레 자극 수출 증가 상쇄 안돼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 우려와 미국의 금리 인상 영향으로 유로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서 20년 만에 1유로=1달러 등가(패리티·parity)가 무너졌다.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수출에 유리하고 여행객이 늘어나 관광 수입이 늘어날 수 있지만 에너지, 원자재 등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유로는 이날 달러 대비 0.4% 평가 절하 되면서 0.9881 달러를 기록했다. 유로의 달러에 대한 가치는 2002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WSJ는 “두 통화가 패리티에 도달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에 그쳐 금융 시장에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유로화 약세는 결국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유로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면 상대적으로 유로존 상품 가격이 하락하면서 수출에는 유리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대부분 달러로 표시되는 수입 원가가 상승하면서 유럽 물가를 치솟게 할 것으로 보인다.
애버딘자산운용의 선임 투자 매니저인 제임스 애씨는 “유로존에 끔찍한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며 유로화가 단기적으로 90센트 또는 그 이하로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로화 약세는 출범 초기인 2000년대 초반에 나타났다. 당시 유로화에 대한 시장 신뢰도가 낮아 달러화와 동등한 가치로 평가받지 못했다. 당시 이같은 상황이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나서서 개입해야만 했다. 유로화가 안정을 찾은 것은 3년 뒤의 일이다.
이번에는 러시아에서 시작된 에너지 공급 위기는 유로화 약세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ING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카스텐 브제스키는 “이번 유로화의 약세는 유로화에 대한 신뢰보다는 유로존의 에너지 문제를 포함한 경제 현실에 대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저렴한 러시아산 에너지는 유럽을 산업 강국으로 만든 핵심 요인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노르트스트림-1 정비’를 영구적으로 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브뤼셀의 싱크탱크인 브뤼겔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로존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지난달 천연가스의 약 20%를 러시아에서 공급받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보다 더디게 금리를 인상한 것도 유로화 약세를 불러왔다.
ECB는 현재 마이너스 0.50%인 기준 금리를 이번달에 0.25%포인트 인상해 마이너스 0.25%로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10여년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것이지만, 연준과 비교하면 금리 인상에 적극적이지 않은 셈이다. 연준은 이달 말 기준금리를 2.5%~2.75%대로 최대 1%포인트까지 올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로화 약세는 유럽의 수출 상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만들면서 해외 관광객들이 그리스와 스페인의 휴양지를 방문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출 증대 효과는 에너지·원자재 등 수입 물가 상승으로 상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수입 물가 상승은 유로존 전체로 번져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고 있다.
DZ은행의 소냐 마르텐 애널리스트는 “수입 물가와 생산자 물가의 극단적인 상승은 수출업자들이 통화 약세로 받을 수 있는 이익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각국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시장의 초점이 경기침체 완화를 위한 연준의 금리인하 전망으로 옮겨가게 되면 유로의 달러에 대한 가치 또한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UBS의 키란 가네쉬 멀티 에셋 전략가는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 어느 순간 해외 투자자들에게 모든 것이 비싸지기 때문에 미국이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잃기 시작할 것”이라며 “결국 유로화가 달러에 비해 너무 싸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2paper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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