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사르, 이태리 현지 맛·향 그대로인
에스프레소를 2000원에 선보여
에스프레소용 원두도 고퀄리티
[블록미디어 권은중 전문기자] 이탈리아 유학 뒤에 내 생활에서 가장 달라진 것은 커피였다. 물론 이탈리아 와인도 내게 충격을 줬지만 와인은 커피처럼 매일 마시지는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 맛과 멋에 반한 나는 귀국 후에도 어떻게든 에스프레소를 먹으려고 했다.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어로 ‘익스프레스’라는 뜻이다. 그만큼 빠르게 커피가 추출돼 나온다는 뜻이다. 19세기 말 증기 보일러를 이용해 짧은 시간에 커피를 추출하는 기계를 이탈리아인들이 세계 최초로 만들고 나서 붙인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름과 달리 처음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가 추출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쯤이었다고 한다.
이걸 가정에서도 간편하게 쓸 수 있게 소형화한 것이 1933년 알폰소 바일리티가 만든 모카 포트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먼저였고 모카포트가 나중이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돌아올 때 귀여운 모카포트를 몇개 사왔지만 이탈리아에서 맛본 에스프레소 맛은 좀처럼 구현되지 않았다. 원인은 원두였다.
당연히 이탈리아에서도 에스프레소가 무조건 맛이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많은 곳의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바르(이탈리아에서는 커피숍을 바르bar라고 한다. 커피뿐 아니라 가벼운 와인과 빵을 팔기 때문이다)를 다녔지만 내 입맛에 맞는 에스프레소는 무조건 쓴 게 아니라 초콜릿같은 질감에 상큼한 꽃향으로 마무리가 돼야 했다. 원두를 그저 태우 듯 강하게 볶는 강배전 원두가 에스프레소의 최적 원두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 커피숍 원두는 가격이 가장 저렴한 브라질 강배전 원두 중심이다. 그래서 반드시 이런 강배전 원두와 함께 중간배전 혹은 약배전한 상큼한 아프리카 원두나 고소한 중남미 원두가 10~20%는 섞여 있어야 내가 원하는 커피 맛이 났다. 이렇게 배전과 블렌딩을 차별화된 커피를 1885년 세계 최초로 출시한 커피업자가 이탈리아의 라바짜였다. 이탈리아의 커피가 맛이 있는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그래서일까? 이탈리아에서 마신 커피 가운데 내가 입맛에 가장 맞았던 것은 라바짜 에스프레소였다. 어디서나 평균은 했다. 심지어 역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에스프레소도 맛이 있었다. 반면 또다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메이저 커피 브랜드인 일리, 캄보 카페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일리를 자주 마신다. 유일하게 한국에 진출한 에스프레소 바르다).
물론 이탈리아에는 이런 커피대기업 에스프레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에스프레소 바르도 매우 인상적이다. 내가 가본 작은 바로는 학생이 많던 대학의 도시 볼로냐의 ‘테르찌’, 그리고 시칠리아 팔레르모 법과대학 앞의 ‘아테네’의 에스프레소가 가장 입에 맞았다. 특히 테르치는 커피가 상큼했다. 인도 원두나 코스타리카 싱글 스페셜티로 만든 에스프레소를 팔 정도로 전문적이었다. 이 집은 먹어본 모든 커피가 맛이 있어서 매일 가서 100가지가 넘는 메뉴 깨기를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에스프레소 불모지였다. 맛이 있는 에스프레소를 내놓는 집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한잔에 5000원쯤을 받았다. 맛이 있으면 그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지만 그냥 쓰기만 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커피숍인 T나 대기업이 하는 S도 마찬가지였다. 에스프레소의 맛과 철학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어 보였다. 한국은 카페인을 몸에 빠르게 공급하는데 최적화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나라였지 인생의 쉼표같은 커피의 멋과 맛을 즐기는 곳이 아니었다.
이런 한국의 현실에서 에스프레소용 원두를 구매하는 것도 당연히 힘들었다. 밖에서야 안마시면 그만이지만 매일 아침마다 에스프레소를 마셔야 몸이 깨어나는 나에게 맛없는 원두로 내린 에스프레소는 재앙와 같았다. 그래서 내가 쓴 방법은 서울에서 맛있다는 커피집 원두를 사서 에스프레소를 내려보고 내가 원하는 맛이면 그냥 먹고, 내가 기대한 맛이 아니면 내 나름의 브렌딩을 했다. 따로 산 아프리카 브룬디나 에티오피아 원두 혹은 콜롬비아 원두를 살짝 섞어 자체 블렌딩을 했다. 이럴 정성을 쏟을 여유가 없으면 라바짜를 여러 팩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마셨다. 마치 지하세계에서 몰래 에스프레소를 찬미하는 광신도처럼 그렇게 몇년을 살아던 셈이다.
그런데 지난해 초 서울 중구 약수역 근처에 에스프레소를 잘하는 집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남순대국집에서 멀지 않다고 했다. 그게 리사르 커피였다. 해남순대국을 먹고 리사르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마셔보니 정말 이탈리아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맛이었다. 쓰면서 감미롭고 약간의 상큼함으로 여운이 있었다. 약간 무거운 뉘앙스도 있었지만 그때까지 한국에서 마셔본 에스프레소 가운데 베스트였다. 소문이 날만한 맛이었다. 로스터리를 겸하고 있어 에스프레소에 맞는 원두 블렌딩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거기다 가격이 놀라웠다. 1500원이었다(지금은 2000원이다). 이탈리아 커피 가격이었다(내가 유학갔던 2019년 이탈리아 커피가격은 대부분 1유로였다(시칠리아는 0.9유로였다. 지금은 1.2유로 정도다). 놀라웠다. 어떻게 이 가격으로 한국에서 카페를 운영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메뉴도 다양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유학했던 나의 눈에는 다소 생소한 메뉴도 있었지만 죄다 맛있었다. 그래서 나는 리사르에 가면 나 혼자서도 보통 3~4잔을 마신다. 에스프레소는 물론이고 커피와 오렌지로 만든 이탈리아 시칠리아식 샤베트인 그라니타(카페 리에토)도 즐긴다. 그래도 1만원이 나오지 않는다. 미안할 정도다.
하지만 리사르 이민섭 대표의 언론 인터뷰를 보고 이 카페의 철학을 이해했다. 이 카페는 커피의 원점인 에스프레소 문화에 대한 확대가 목표다. 그래서 에스프레소 가격을 낮추고 대신 고객 회전을 빠르게 하기 위해 좌석을 없앴다. 그 흔한 와이파이도 없고 화장실이 없는 매장도 있다(놀라운 발상이다!). 물론 청담, 명동같은 매장은 멋진 좌석이 있고 화장실도 있다. 대신 이 매장의 에스프레소 가격은 약간 비싸다. 그래봤자 별다방의 반값도 하지 않는다.
내가 이 집에 더 각별한 애정을 갖는 이유는 원두다. 커피 맛의 강도에 따라 5종류의 원두를 판다. 뒤에 브라질 원두인지 에티오피아 원두인지 콜롬비아 원두인지 친절히 설명해놓았다. 디카페인 빼고 모두 에스프레소를 내려봤는데 모두 맛있었다. 리사르를 알게 된 뒤부터 나는 매일 아침 에스프레소를 내릴 원두 걱정을 하지 않게 됐다. 가격도 200그램에 1만5000원대로 매우 합리적이다.
또 리사르는 약수, 종각, 청담, 명동처럼 여러 곳에 매장이 있어 지인들과 약속을 하기에도 좋다. 또 리사르 매장은 모두 직영이어서 커피 맛이 일관된 점도 장점이다. 더 많은 리사르 매장이 생겨 커피의 꽃인 에스프레소를 찬미하는 나같은 에스프레소 광신도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주소: 서울 중구 다산로8길 16-7(약수점)
메뉴: 카페 에스프레소 2000원, 카페 콘 판나(생크림 얹은 에스프레소) 2300원, 카푸치노 2800원, 카페 오네로소(에스프레소에 크림, 우유를 얹음) 2500원, 카페 리에토(오렌지 커피 그라니타) 2500원
* 권은중 전문기자는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경향신문과 연합뉴스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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