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박현재] 시뇨리지(seigniorage)는 화폐 주조 차익을 뜻한다. 천원짜리 지폐를 하나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10원이라면 시뇨리지는 990원이 되는 셈이다. 이것이 현대 금융 시스템으로 넘어오면서 화폐를 발행해서 생기는 이익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중앙은행이 돈을 발행해주고 그 대가로 국채를 사서 이자 수익을 얻는 것을 현대 시뇨리지라고 한다.
이 시뇨리지가 가장 활발한 곳 중 또 하나는 바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이다. 제일 유명한 테더(USDT)와 써클(USDC)를 필두로 다양한 발행사들이 달러 토큰을 발행하고 유통하고 있다. 준비금이 가장 탄탄하고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고 있는 양사는 시뇨리지를 완전하게 누리고 있다.
규모가 조금 작거나 준비금 중 디지털자산의 비율이 높은 발행사는 이자 수익의 일부를 예치자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를 수익으로 챙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크던 작던 화폐를 발행해서 생기는 이익을 챙기는 시뇨리지 전략을 취하고 있음에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스테이블코인의 핵심 기능은 가치가 급변하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달러라는 하나의 기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달러 가치를 유지하는 것을 페깅(pegging)이라고 하며 여기엔 시장 아비트라지(Arbitrage)를 활용한다.
달러 토큰 또한 시장의 호가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수요와 공급에 따라 1달러를 벗어나는 경우가 생긴다. 1달러보다 비싸면 신규 발행해서 팔고 1달러보다 싸면 들고 가서 달러로 바꾸면 된다. 하지만 달러로 바꾸는 과정에서 수수료가 발생하기 때문에 테더와 써클은 항상 1달러보다 약간 아래에서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이 페깅을 유지하기 위해서 발행사는 발행량 이상의 준비금을 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공격적인 테더와 규제친화적 써클
테더는 1550억 달러를 발행 및 유통하는 압도적인 1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다. 발행에 따른 준비금 중 83%는 미국 단기 국채나 머니마켓펀드와 같은 고유동성 안전 자산이다. 나머지 17%는 △비트코인 △담보대출 △귀금속 등이다. 준비금 중 미국 국채 보유량은 약 970억 달러로 글로벌 최대 보유기관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2024년 테더는 누적 순이익 77억 달러(약 10조원)를 기록했다. 그러나 테더의 △준비금 구성의 불투명성 △담보 대출의 세부 정보 비공개 △분기 단위의 증명 보고 방식은 규제 당국과 신용평가사들의 지적을 받고 있다.
써클은 610억 달러를 발행 및 유통해 테더 다음으로 큰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다. 써클은 딜로이트의 월간 감사를 받고 블랙록이 운용하는 머니마켓펀드를 준비금으로 구성하는 등 높은 신뢰도와 투명성 전략을 취하고 있다. 준비금은 머니마켓펀드의 구성을 포함해 100% 현금 또는 국채 기반 자산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코인베이스와의 이자 수익 공유 계약을 맺고 피서브나 비자, 마스터카드와 제휴하여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규제친화적인 면모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웹2 비즈니스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25년 미국 상원이 통과시킨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를 살펴보면 △100% 고유동성 자산 준비금 △월별 감사 △준비금 재사용 금지 △연방 감독 등을 규정한다. 이는 써클이 자발적으로 시행하던 기준과 일치한다.
반면 테더는 비트코인, 담보 대출 등 위험자산 포함과 분기별 증명 보고 등으로 이 법안을 충족하지 못한다. 테더가 미국 시장을 유지하려면 별도 법인을 설립하거나 신흥 시장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상황이다.
후발 주자들의 수익 분배 전략
위처럼 테더와 써클의 전략은 초기 플레이어만이 누릴 수 있는 네트워크 효과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해당 시장에 늦게 진출한 후발 주자들은 유통량을 늘리기 위해 수익 중 일부를 예치금을 통해 분배하는 전략을 취했다. 발행 이익을 취한다는 점에서는 시뇨리지가 맞으나 좀 더 고수익 포트폴리오를 통해 사용자에게 수익을 분배하고도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대표적인 수익형 스테이블코인으로 에테나(ENA)와 리졸브(Resolv)가 있다.
에테나의 USDe는 합성 달러로 페깅을 유지하기 위한 담보금 중에 디지털 자산이 포함되어 있다. 디지털자산의 높은 변동성을 헷징하기 위해서 보유하고 있는 현물과 숏(short) 포지션을 1:1 비율로 보유하는 델타 헷징 전략을 설계했다.
USDe의 시뇨리지는 두 가지 원천에서 발생한다. 첫째는 담보로 예치된 stETH에서 발생하는 스테이킹 수익이다. 둘째는 파생상품 시장의 펀딩비(funding rates)다. 펀딩피는 디지털자산 선물 시장의 특성 중 하나로 현물과 선물의 갭(Gap)을 줄이기 위한 제도다.
통계적으로 디지털자산 시장은 숏 포지션에 대한 펀딩피 지급이 많았기 때문에 이 수익은 에테나의 핵심 수익원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에테나는 이 수익을 USDe를 스테이킹한 사용자에게 분배함으로써 높은 예치 이율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하고 수익을 얻는다.
리졸브는 USR라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 에테나와 마찬가지로 델타 헷징을 통해 디지털 자산 담보금의 변동성을 줄이는 전략을 취했다. 그러나 델타 헷징은 가격 변동 리스크 부분만 감당하기 때문에 운영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있다. 운영 리스크는 펀딩피 손실이나 오라클 오류, 거래소 리스크 등이 있을 수 있다.
리졸브는 리스크의 이원화를 통해서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높였다. 리스크에 1차적으로 노출되는 고수익 펀드(RLP)를 리스크 완충재로 따로 두어 USR 풀을 보호하는 설계를 채택했다. 이처럼 수익형 스테이블코인의 모델도 점점 고차원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테더와 서클이 ‘안정성’을 대가로 시뇨리지를 독점하는 모델이라면 에테나와 리졸브는 ‘수익 공유’를 통해 예치금을 확보하고 파생상품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더 높은 수익 창출을 시도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 시뇨리지 시장이 단순한 이자 수익 경쟁을 넘어 리스크와 수익률의 트레이드오프에 기반한 다각적인 경쟁 국면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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