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박재형 특파원

앞서 살펴봤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선거는 블록체인을 이용한 정치에서 단편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과정은 물론 정부의 행정 및 공공 서비스 전반에 걸쳐 블록체인을 이용하고 그것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혜택은 생각보다 매우 광범위하며 향후 그 범위의 확대 가능성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전망이다.

뉴질랜드 캔터베리대 경영대 연구팀의 워킹 페이퍼 “공공 서비스에서 블록체인 기술의 구현”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이 정부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솔루션 기능으로 기록관리, 정보의 비대칭 문제, 도덕적 해이 방지 등을 들고 있다. 그런데 정부 행정에서 이 세가지는 분리되기보다 그 수행 과정에서 연결되고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여기서는 이 세 가지 기능과 관련해 블록체인이 현재 구현되고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정부의 기록관리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데 있어 현재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는 곳은 의료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의료 분야에서 효율적이고 안전한 수단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초기부터 계속됐으며, 이미 상당한 발전도 이루었다. 의료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고 글로벌 의료 시스템의 발전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검증 및 신뢰성 제고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더해가고 있다.

의료 산업에서의 공급망은 건강에 직결된 문제인 만큼 다른 분야보다 특히 민감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근본적인 것은 신뢰의 문제가 꼽힌다. 의료 산업 공급망의 신뢰 향상을 위해서는 강력한 의사 소통과 높은 수준의 투명성, 책임감 등이 요구되는데 블록체인의 분산원장기술은 이 문제 해결에 매우 적합한 것으로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글로벌 의료 네트워크는 기존 종이에 환자의 상태를 기록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 또한 블록 체인 네트워크는 의료 관련 중요 정보를 보호하고, 데이터의 변조 또는 제거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미국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 서비스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저소득층에게 제공되는 정부 지원 건강보험 메디케어 관련 정보의 절반 이상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는 정부의 막대한 보건 예산 낭비와 미국인들의 과도한 보험료 및 세금 부담으로 이어져 결국 국가 경제에 손실을 초래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건강보험 제공자들은 관련 데이터 저장을 위해 매년 21억달러까지 지출하고 있는데,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한 데이터 공유로 상당한 비용 절감이 가능할 전망이다.

테러 등 범죄 예방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미국 정부는 공항 등을 통해 국경을 통과하는 여행객들의 생체정보 추적에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방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지난해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생체추적 기술에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것이 여행보안 분야의 ‘킬러 앱’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CBP 관계자는 “우리가 큰 성공을 거둔 분야 중 하나는 얼굴 비교와 생체 측정 데이터로, 미국 입국을 원하는 개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만든 서비스다. 앞으로 검증할 자료를 더 확보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러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복수의 조직이 통신을 하기 위한 블록체인 시스템 간의 표준화된 규격 개발 등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도 많다고 지적했다.

공급망 등에서의 기록관리, 정보 비대칭성 해소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미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경향이다. 러시아 정부 교육과학부는 천연 다이아몬드 이력 추적을 위한 블록체인 플랫폼을 도입했다. 기관은 새로운 블록체인 다이아몬드 추적 기술이 원석 채굴부터, 가공, 최종 소비자에 이르는 공급망 전 과정에서 다이아몬드 상품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IT 기술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이 새로운 시스템은 다이아몬드 시장에 뒤섞여 있는 천연 제품부터 합성 제품들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전해졌다. 러시아 교육과학부는 새로운 시스템에서는 각 다이아몬드에 분산원장을 이용해 디지털 코드를 부여하고 이 코드는 모든 시장 참가자들이 공유하게 된다. 또한 이 시스템은 소유권 이전을 기록할 수 있으며, 모든 거래의 추적을 통해 위조나 변조 등이 감지되면 즉시 이를 알릴 수 있다.

칠레 재무부 산하 기관인 일반재무국(TGR)은 지난해 10월 칠레 대통령 직속 디지털 정부 사무국과 협력해 시민, 금융 중개인, 공급업체를 연결하는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칠레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 플랫폼은 칠레의 공공기관에서 처리하는 세금, 특허 수수료 등의 결제 내용을 모두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TGR은 새로운 플랫폼이 정부, 기관 및 은행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데이터베이스에서 데이터 불일치 문제를 제거하고, 지불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며, 운영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보안 수준의 향상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난민 지원 등 인도주의적 문제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의 다양한 활용이 기대된다. 블록체인 기술은 전세계적인 인도주의 노력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미 현장에서 사용이 시작되고 있다. 이 기술은 난민들의 생체인식, 건강 데이터 관리 등은 물론 기부를 원하는 사람의 컴퓨터를 암호화폐 채굴에 이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기금 모금을 가능하게 한다.

최근 세계식량계획(WFP)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기부를 위한 자금 이체를 안전하게 하고 보안을 향상시키는 성과를 얻었다. 이러한 유형의 기부 활동은 직접 식량이나 물을 지원하는 것보다 난민들에게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경제 활용을 위한 현금을 새로운 방식으로 지원함으로써 개인의 신뢰 회복과 함께 지역 경제의 활성화 효과까지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블록체인 기술은 미술품 등 예술품 거래, 저작권 보호와 관리, 온라인 게임 등에 다양하고 폭넓게 활용되며 그 영역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공공 행정 서비스에 도입해 기록관리 능력을 향상시키고 정보의 비대칭성과 도덕적 해이에 따른 문제 해결에 이용하는 시도를 확대 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것에 입력되는 데이터의 정확성 보장이 선행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블록체인 기술의 도입 이전에 어떤 데이터의 입력 과정이든 자동화하거나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어 데이터 오류의 가능성을 줄이는 노력부터 실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