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이뤄지는 모든 기술적 개선은 ‘비트코인 개선안(BIP)’이라는 절차를 따른다. 개발자 간 합의와 채굴자들의 지지를 통해 실행되는 이 절차는, 비트코인의 탈중앙적 운영 방식을 보장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BIP의 개요와 종류
BIP는 2011년 아미르 타아키(Amir Taaki) 개발자가 제안한 첫 개선안부터 시작됐다. 이는 파이썬(Python) 개발 커뮤니티가 사용하는 ‘파이썬 개선안(PEP)’에서 영감을 얻은 시스템이다.
BIP는 비트코인 개발의 모든 변화가 기록되고 공유되는 공식적인 경로다. 하드포크처럼 중요한 변화는 물론, 작고 반복적인 개선도 이 과정을 거친다. BIP는 △표준 추적 △프로세스 △정보 제공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며, 이 중 ‘표준 추적 BIP’가 비트코인 프로토콜 변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BIP는 일반적으로 트위터를 포함한 커뮤니티 내 비공식 토론에서 시작된다. 이슈가 정리되면 BIP 초안이 만들어져 메일링 리스트로 공유되고 피드백을 받는다. 이후 여러 단계를 거쳐 ‘활성(active)’ 상태가 되면 실질적인 구현이 시작된다.
채굴자 동의 여부가 핵심
기술적 BIP는 채굴자의 지지를 필요로 한다. 다수의 채굴자가 새 제안을 지지하지 않으면 개선안은 보류되거나 철회된다. ‘시그널링(signaling)’은 채굴자의 지지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특정 수의 블록에 정보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 ‘세그윗(SegWit)’ 도입이다. 당시 BIP 91 제안은 “세그윗을 지지하지 않는 블록은 거부한다”는 방식으로 표현을 바꾸며 지지를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세그윗은 블록 477,120에서 활성화됐다.
탭루트와 스피디 트라이얼
개선안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2021년 ‘스피디 트라이얼(Speedy Trial)’ 절차가 도입됐다. 이 제도는 채굴자 의견 수렴 기간을 기존 1년에서 3개월로 줄이고, 지지율이 90%에 달하면 6개월 내 활성화된다. 이 절차를 통해 ‘탭루트(Taproot)’가 빠르게 적용됐다. 탭루트는 개인 정보 보호와 거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슈노르 서명(Schnorr Signature)’과 스마트 계약 기능을 도입하는 기반이 됐다.
BIP의 한계와 미래
BIP는 특정 주도 세력 없이 개발자와 채굴자 간의 합의로 기술 발전을 추진하는 탈중앙적 구조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비트코인 철학의 구현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일반 사용자나 투자자는 공식적인 절차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제한된 집단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안으로는 테조스(Tezos)와 같이 일반 사용자까지 투표 참여를 통해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온체인 거버넌스 방식이 제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BIP는 비트코인이 독립적이고 탈중앙화된 네트워크로 진화하는 핵심 도구다. 기술적 합의와 참여자 간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구조로, 향후에도 비트코인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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