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박현재]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 이하 ZK)은 단순한 블록체인 기술의 한 갈래를 넘어서, 차세대 인터넷과 개인정보 보호를 아우르는 중요한 기반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리스크제로(Risczero)의 ZKVM을 만든 CTO 출신이자, 현재 바운드리스(Boundless)의 CEO인 쉬브 샹카(Shiv Shankar)는 이 분야를 주도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블록미디어는 쉬브 샹카와의 인터뷰를 통해 ZKVM, 바운드리스, 그리고 아시아와 한국 시장에 대한 전략까지 심층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Q. 커뮤니티를 위해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A. 내 이름은 쉬브다. 바운드리스 CEO이고, 이전에는 리스크제로(RiscZero)의 CTO였다. 그 전에는 아바랩스에서 아발란체 L1을 담당했고, 코인베이스에선 국가별 런칭, QR 코드 광고 같은 프로젝트를 맡았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리프트, 그랩 등에도 있었다. 기본 전공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이지만, 지금은 디지털·물리적 상품 시장 설계를 함께 고민하는 중이다.
Q. Risk Zero의 ZK는 무엇을 의미하며, 기존의 ZK 회로나 규칙들과 어떻게 다른가?
A. ZK는 verifiable computation, 즉 ‘검증 가능한 계산’의 일종이다. 누군가가 특정 연산을 수행했는지를, 그 연산의 세부 내용을 알지 않고도 증명할 수 있는 개념이다. 보안과 정보 시스템 문제로 수십 년간 연구되었지만, 실제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는 아니었다. 이전에는 수학적 논리를 AND 게이트, OR 게이트 등으로 회로화해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작성하기 매우 고통스러웠다.
블록체인이 ZK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약 8~9년 전이다. ZK는 ‘succinctness’라는 특성이 있어 계산의 크기에 상관없이 증명 크기를 작게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블록체인에서 저장 공간과 가스비가 비싸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당시에는 회로를 직접 작성해야 했기에 일반 개발자가 접근하기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레미와 우리 팀은 일반적인 컴퓨터 프로그램, 예컨대 Rust로 작성한 코드를 받아 이를 자동으로 회로로 변환하는 ZKVM을 개발했다. 이는 사용자로 하여금 회로를 직접 쓰지 않고도 ZK를 활용할 수 있게 만든 혁신적인 전환점이었다. 즉, 누구나 Rust 프로그램을 작성하면, 이를 기반으로 커스텀 회로를 생성하고, 그 실행에 대한 영수증(Receipt)을 생성하는 구조다.
Q. R0VM 2.0에서는 22초 블록 증명과 정형 검증(formal verification)을 달성했다고 들었다. 이제 ZKVM은 실제 배포가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나?
A. 그렇다. 사실 우리는 이미 실시간 증명을 달성했고, 블록 증명 시간은 12초 이하로 줄었다. 누구나 약 10만~15만 달러 수준의 하드웨어만으로 실시간 증명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도록 클러스터를 설계하고 있다. 보안 측면에서도 오랫동안 감사를 거쳤고, 정형 검증도 거의 완료된 상태다.
ZK 생태계의 핵심은 네 가지다: 성능, 비용, 사용 편의성, 보안. 우리는 이 네 가지 모두에서 매우 빠르게 진전을 이루고 있다. 오프체인 연산은 이미 온체인보다 훨씬 저렴하며, 보안은 완전히 끝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계속해서 발전 중이다. 바운드리스는 증명 비용과 UX 측면 모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이는 곧 더 빠른 확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Q. 바운드리스의 ‘Proof of Verifiable Work(POVW)’는 향후 블록체인들이 채택하게 될 표준이라고 보나?
A. 모든 블록체인이 ZK를 채택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는 100% 동의한다. 다만 POVW는 바운드리스 프로토콜에 특화된 구조다. 계산 자원을 네트워크에 기여하는 이들을 위한 매우 효율적인 시장 메커니즘을 만들어주며, 우리가 만든 커스텀 프리미티브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검증 가능한 일’에 대한 개념 자체는 점차 확산될 수 있다고 본다.
Q. ZKVM에서 프로그램이 실행되면 어떤 과정으로 증명이 만들어지는가? 그 내부 ‘레시피’를 설명해줄 수 있나?
A. 사용자가 작성한 프로그램과 입력값을 ZKVM에 넘기면, 내부적으로 커스텀 회로로 컴파일된다. 이 회로는 실행되고, 그 결과로 영수증(receipt)이라 불리는 증명이 생성된다. 이 증명은 온체인에 배포된 검증기를 통해 검증 가능하다.
즉, 누구든 어느 컴퓨터에서든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온체인에서는 그 증명이 유효한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실행 자체는 오프체인에서 빠르게 진행되지만, 그 결과는 온체인에서 안전하게 검증받는다.
Q. 이미 ZKVM을 만들었는데도 왜 바운드리스가 필요했는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가?
A. ZKVM을 만들어서 많은 팀에 배포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직접 VM을 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운영 비용이 높고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AWS 상에서 Bonsai라는 클라우드 기반 ZK 서비스 형태로 제공했지만, 파트너들은 “우리는 탈중앙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AWS 같은 중앙화 의존은 불가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예 멀티체인에서 작동하는 탈중앙 프로토콜을 고민하게 되었고, 바운드리스가 탄생했다. 바운드리스는 L1이나 L2가 아니라, 다양한 체인에 배포되는 스마트컨트랙트 집합이다. 이로써 사용자는 각 체인의 네이티브 토큰으로 지불하고, 증명을 받을 수 있다. 탈중앙성과 접근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구조다.
Q. 전체 증명 파이프라인에서 ZKVM, Bento, Boundless는 어떤 역할을 각각 수행하며, 어떤 것이 개념적이고 어떤 것이 구현체인가?
A. 증명자(Prover)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는 여러 도구가 필요하다. 그중 Bento는 클러스터 관리를 돕는 툴이다. 내부적으로 최적화되어 있으며, 우리가 우리 서버를 관리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ZKVM은 각 머신에 설치되는 실제 연산 수행 소프트웨어다. Boundless는 이 모든 클러스터를 연결하는 프로토콜로, 각 체인에서 들어오는 증명 요청을 모아 증명자들이 이를 입찰하고 처리하는 구조다.
Q. 실제 사례로 보면, ZKVM과 바운드리스 조합은 어떤 분야에서 신뢰를 높이는 데 유용할 수 있나?
A. 예를 들어, Cash Flow라는 서비스는 ZKVM을 활용해 거래 상태 전이를 검증한다. 예치된 자금이 임의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상태 전이가 항상 유효한지를 증명으로 보장한다. 이는 FTX 사태 같은 불투명한 거래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다.
또한 AI 영역에서도 ZK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컨대 고가의 AI 서비스를 구독하는 사용자가 실제로 최신 모델을 제공받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대부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ZKVM은 LLM의 버전 검증이나 실행 검증을 통해 이를 보장할 수 있다.
에어드랍, KYC, ID 검증 등에도 ZK는 매우 잘 맞는 기술이며, 개인정보 보호가 중요한 시대에 점점 더 많이 사용될 것이다.
Q. 최근 한국어 백서도 공개하고, 한국 개발자 생태계와도 교류하고 있다. 왜 한국 시장이 중요한가?
A. 아시아는 인류의 절반이고, 아시아 진출의 시작은 한국이다. 한국은 기술 수용이 빠르고, 크립토 커뮤니티도 강하며, 개발자 풀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피드백’이다. 동남아에서 Grab을 운영하며 배운 것은, 각 국가와 도시가 얼마나 다른지다. 직접 현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해해야만 제대로 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내가 한국을 최근 2개월 동안 22번 방문했을 정도로 집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국에서 피드백을 받고, 맞춤형 접근을 통해 아시아 전체로 뻗어나갈 전략을 세우고 있다.
Q. 바운드리스 메인넷은 언제 기대할 수 있을까? 2025년 로드맵은 어떤가?
A. 우리는 가능한 빨리 메인넷을 출시하고 싶다. 지금 개발은 거의 완성단계에 접어들고 있고, 곧 테스트와 파트너 정렬을 거친 뒤 출시할 예정이다. 메인넷 이전에 중간 단계 론칭도 있을 것이며, 이후에는 장기 로드맵도 공개할 계획이다.
바운드리스는 단기 이익을 위해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10년, 15년, 혹은 100년 후에도 살아남을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그래서 속도보다 정확성과 보안을 더 중시한다.
같이 보면 좋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