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박재형 특파원

세계 여러 국가들, 지방정부 등에서 블록체인을 이용한 투표를 시도하고 있으며,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블록체인 투표를 그동안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만병통치약 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블록체인 투표는 이제 막 첫걸음을 시작하려는 단계로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기존 온라인 투표 방식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장단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인터넷정보학회의 “블록체인 방식을 활용한 온라인 투표시스템 적용 가능성 연구”에서는 온라인 투표의 장점으로 투표의 편리성과 투표율 향상, 투표 관리 업무의 효율성 증대 등을 들고 있다.

반면, 이 학회는 온라인 투표 시스템의 단점으로 보안 문제 및 신뢰 확보의 문제(직접선거 원칙 위반), 투표의 비밀 보장 문제(비밀선거 원칙 위반), 그리고 디지털 격차의 문제(평등선거의 원칙 위반)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온라인 투표의 장단점은 블록체인을 이용한 투표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아직 초기 단계 기술인 만큼 기술적 문제들이 다양하게 추가된다.

미 국립과학공학의학아카데미(NASEM)의 보고서는 블록체인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자 장점이 ‘탈중앙화’이지만 투표를 통한 선거행위는 본질적으로 중앙집중화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록 블록체인이 탈중앙화 된 응용 프로그램에 효과적일 수 있지만, 선거 관리자들이 투표 용지의 내용을 정의하고, 유권자 명부를 확인하며, 투표 기간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활동들은 본질적으로 중앙집중 또는 중앙집권적이라는 것이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투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을 탈중앙화 된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 가능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블록체인 위에 기록된 투표들은 전자적이다. 종이 투표용지는 유권자가 직접 검증할 수 있는 반면 전자 투표용지(즉, 블록체인 투표용지)는 검증하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블록체인 기록물을 검토하도록 설계된 소프트웨어가 손상된다면, 검증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일단 구현된 블록체인 투표 시스템은 악의적인 행위자들에게 새로운 공격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 채굴자 또는 이해관계자(블록체인에서 항목을 추가하는 사람)는 추가되는 항목을 통제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재량권을 이용해 그들은 특정 지역 또는 계층 등의 투표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게다가 블록체인 프로토콜은 일반적으로 채굴자 및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일치된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 합의는 유권자 대중의 투표를 통해 이루어진 합의를 나타내지 못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충분한 힘을 가진 채굴자와 이해관계자들은 이루어진 합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블록체인 시스템에 대한 혼란과 불확실성을 부추길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선거관리기관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가 우선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블록체인 투표는 비밀번호 키 생성, 메시지 암호화, 해시 계산, 데이터 서명, 블록체인 네트워크로의 투표 기록 전송 등 유권자 쪽에서 처리해야 할 것이 많은데 결국 이들을 선거관리기관이 책임지고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투표에서 보안의 핵심인 비밀번호 키의 생성, 관리 등을 제3의 기관이나 업체에 맡길 경우 선거관리기관과 유권자 아닌 제3자가 투표 내용을 볼 수 있게 된다. 즉 선거의 기본원칙인 “비밀투표” 원칙에 위반된다. 또한 이 투표 결과가 유출될 경우 선거 자체가 무효화 되면서 국가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일본 도쿄대 전기공학 및 정보시스템학부 연구팀의 논문 “블록체인 기반 전자 투표 시스템”에서는 기존 비트코인 블록체인을 투표에 활용할 때 예상되는 익명성과 작업증명(PoW) 방식의 개선책을 제시했다. 현재 프로토콜의 익명성 개선을 위해 믹스코인(Mixcoin)이나 대시(Dash) 블록체인 등에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또한 다른 노드의 개입 없이 트랜잭션을 혼합하기 위해 블라인드 서명, 동형태 암호화(homomorphic encryption), 믹스넷(mix-nets) 기술 등이 고려된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전형적인 작업증명 방식은 투표 프로토콜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막강한 컴퓨팅 파워을 보유한 조직이 소위 “51%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를 통해 충분한 해시파워를 갖춘 채굴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블록체인을 다시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대 연구팀은 블록체인의 무결성 보장을 위해 다음 블록을 채굴할 노드를 무작위로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터키 도쿠즈에일룰대 컴퓨터공학과 연구팀의 논문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이용한 전자 투표”에서는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대안으로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 기술 기반의  전자 투표 솔루션을 제안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유권자의 개인정보 보호, 투표의 무결성, 검증, 개표의 투명성 등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연구팀은 코인의 유효성 검증이 주목적인 비트코인에 비해 이더리움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스마트 계약 기술은 더욱 광범위한 사용 사례들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스마트 계약은 웹 서버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를 의도적으로 조작하거나 손상시키는 것이 아예 불가능 하지만 않더라도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온라인 투표, 특히 새로운 기술인 블록체인 방식을 활용한 온라인 투표를 제대로 치를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해당 선거가 100% 투명하고 신뢰 가능하다는 것부터 증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한 투표율의 증대, 관리 비용의 절감 등 장점을 보여주는 것은 나중 문제가 된다. 표 하나하나가 중복되지 않은 실제 인간 유권자에 의해 행사되고 정확히 집계된다는 사실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러한 신뢰까지 갈 길이 한참 멀다. 퍼블릭 블록체인과 프라이빗 블록체인 중 어떠한 방식을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것부터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처럼 기본적인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블록체인이 기존 투표와 선거의 문제, 즉 관리, 비용, 투명성, 신뢰성 등을 완벽하게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기는 무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