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이정화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가 2년 전 파산했다. 불법 대출을 한 것도 아닌 SVB가 뱅크런으로 문을 닫게 된 배경에는 은행 시스템에 대한 구조적인 위험이 있었다.
은행이 고객 예금으로 투자한 국채나 모기지에서 대규모 손실을 본 것. 은행이 금융 중개 이외의 업무를 수행하면 이 같은 시스템 위험에 노출 될 수 밖에 없다.
SVB 뱅크런 당시 비트코인과 탈중앙금융(DeFi)이 대안으로 급부상한 바 있다. 17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는 SVB 파산 이후에도 미국 은행 시스템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비판 기사를 게재했다.
금융시스템 위험요소 여전…의회·당국 규제는 제자리걸음
미국 금융 규제 당국은 SVB 파산 직후 초기에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으나, 2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실질적인 변화는 거의 없었다.
2023년 은행 위기를 촉발한 SVB 붕괴는 예금의 급격한 인출, 이른바 ‘뱅크런’에 취약한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당시 연방준비제도(Fed)는 자성의 목소리를 담은 102쪽짜리 보고서를 냈고, 의회는 청문회를 열어 재발 방지를 모색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주요 입법이나 규제 조치는 나오지 않았다.
연준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자금조달 위험으로 인한 취약성은 역사적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금융 시스템 전반은 △무보험 예금 △단기 차입금 등 즉시 회수 가능한 자금에 의존하고 있다. 위기 시 이들 자금은 빠르게 빠져나가며 은행을 파산으로 몰 수 있다.
규제 완화 조짐에 전문가들 우려
당초 2023년 마련된 자본 확충 계획은 올해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은행권 로비의 영향으로 연기되고 일부는 축소됐다. 은행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출을 늘리고, 투자 업무에 나설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이 로비가 먹혀들고 있는 상황이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은행이 (자기자본 규제를 완화해) 대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동성 규제를 느슨하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고를 내놓고 있다. 하버드 로스쿨의 대니얼 타룰로 교수는 “SVB 사태 이후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개선한 위험관리 조치를 공고히 할 규제 기반이 없다”고 지적했다.
2024년 말 기준, 미국 전체 금융 시스템 내 ‘런어블(급격한 위험시 이탈 가능한) 자산’ 규모는 GDP의 약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SVB 붕괴 전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보험이 되지 않는 자산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대안은 있지만 실현은 더뎌
SVB와 유사한 붕괴를 막기 위한 방안도 제시됐다. 일부 학자들은 은행을 △단기 유동자산 100%로 구성된 △채무 없는 뮤추얼펀드 형태로 바꾸자는 ‘협의은행(narrow banking)’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의회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개선은 은행들의 자발적 조치에 의존했다. 보험이 되지 않는 예금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제도적 뒷받침은 미흡하다.
연준도 긴급대출 창구나 환매조건부대출(RP) 제도를 정비하고 있지만, 실제 위기 시 효과적으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미국 예금보험공사(FDIC)의 보험 한도를 넘는 자산을 은행 간 교환해 보험 대상 안으로 묶는 ‘상호예금 네트워크’도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규제의 부재와 금융업계의 위험을 망각하는 ‘단기 기억력’이 결합될 경우, 몇 년 내 또 다른 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근본적인 구조 개선 없이는 SVB 사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같이 보면 좋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