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박현재] 넥슨이 최근 선보인 블록체인 게임 생태계 넥스페이스(NEXPACE)의 토큰 넥스페이스(NXPC)가 상장 직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넥스페이스 가격은 출시 후 115% 급등해 한때 시가총액 8천억 원, FDV(완전 희석 시가총액) 약 5조원에 도달했다. 이후 일시적인 조정으로 FDV는 약 4조원 수준으로 내려왔지만, 이는 이미 국내 주요 게임사의 가치와 견줄 만한 규모다. 참고로 넥슨 자체의 현재 시가총액은 약 2.11조 엔(2025년 5월 15일 기준)으로, 한화로 약 20조원에 이르는 거대 규모다. 넥스페이스 토큰 하나의 상장 가격은 약 3천 원 선에서 시작되어 단숨에 두 배 이상 급등했으며, 국내 거래소인 빗썸을 비롯해 바이낸스, 업비트 등 국내외 주요 거래소에도 상장되었다.
이는 전통 게임강자 넥슨이 블록체인 게임 분야에 진입하면서 시장의 높은 기대감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한편 넥슨을 비롯해 위메이드, 넷마블, 컴투스, 네오위즈 등 한국의 주요 게임사들이 앞다투어 블록체인 게임과 자체 코인을 선보이고 있다. 글로벌 게임파이(GameFi) 시장은 향후 연 40% 이상 고속 성장해 5년 내 현재의 5배 규모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게임사들은 이러한 150조원대 잠재 시장을 겨냥해 공격적으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 내에서는 이러한 게임과 서비스들이 정상적으로 제공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블록체인 게임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이 눈부신 행보를 보이고 있음에도, 한국 게이머들은 자국 기업이 만든 게임을 할 수 없는 기현상이 왜 벌어지는 것일까?
# 국내서 이용 불가한 주요 블록체인 게임들
넥슨의 블록체인 게임 메이플스토리 N도 한국 이용자들은 VPN 없이는 접속할 수 없다.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로 명명된 이 생태계는 NFT 및 가상자산 보상을 제공하지만, 국내 규제로 정식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현재 국내 규제로 한국 IP 이용이 차단되었거나 서비스가 불가능한 대표적인 게임파이 프로젝트들은 다음과 같다:
메이플스토리 N (넥슨) – 넥슨의 인기 IP를 활용한 블록체인 게임. 게임 내 보상토큰(네소, NESO)을 넥스페이스로 교환하며 NFT 아이템을 다루는 P2E 구조다. 그러나 “게임산업법상 블록체인 게임 영업이 불가능”하므로 국내 서비스 계획은 없다. 넥슨은 이 게임을 해외에서만 출시했고, 한국 유저들은 정상적인 접속이나 다운로드조차 할 수 없어 우회 접속(VPN)이 필요하다.
위믹스(WEMIX, $WEMIX) 플랫폼 (위메이드) – MMORPG 미르4 등으로 유명한 위메이드는 자체 코인 WEMIX와 위믹스 플레이(WEMIX PLAY) 플랫폼을 운영하며 다수의 P2E 게임을 글로벌 서비스 중이다. 하지만 2024년 6월 25일부로 한국 IP 접속 차단 및 한국어 지원 중단을 공지했다. 이는 국내 규제를 준수하기 위한 조치로, 위믹스 지갑(플레이 월렛)이 한국에서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 영업을 했다는 논란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위메이드는 2024년 당국 조사에 직면하자 플레이 월렛의 국내 서비스를 철수하며, 일정 기간 출금용 접근만 제한 지원하고 있다. 이는 가상자산사업자 미신고 논란에 따른 선제 조치다.
마브렉스(MARBLEX, $MBX) (넷마블) – 넷마블의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으로, A3: 스틸얼라이브, 제2의 나라, 킹오파 아레나 등 자사 게임에 $MBX 코인 경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넷마블 역시 국내에는 블록체인 기능을 제거한 버전만 출시하거나 아예 국내 출시를 포기하고 해외 위주로 운영해왔다. 23년에 출시했던 모두의마블2: 메타월드는 한국어를 완벽 지원했으나, P2E 요소가 포함된 글로벌 버전과 미포함된 한국 버전 두 개를 동시에 출시했다.
엑스플라(XPLA, $XPLA) (컴투스) – 컴투스가 구축한 웹3 게임 플랫폼으로, 과거 C2X에서 리브랜딩되었다. 서머너즈 워: 크로니클 등의 글로벌 버전에 $XPLA 코인을 연동했으나, 한국 버전에서는 P2E 요소를 제외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컴투스 역시 국내 규제를 피하기 위해 블록체인 사업 거점을 해외(미국 등)으로 옮겨 추진 중이다.
네오핀(NEOPIN, $NPT) (네오위즈) – 네오위즈 계열사 네오플라이(Neoply)가 운영하는 블록체인 지갑 및 DeFi 서비스. P2E 게임 브라운더스트 글로벌 버전에 $NPT을 연계하고 토큰 스왑, 스테이킹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국내 이용자는 앱 사용이 제한된 상태다. 이는 가상자산 관련 금융규제에 저촉될 수 있어 해외 이용자 중심으로 서비스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게임사들이 만든 블록체인 게임이나 서비스가 정작 한국 이용자에게는 막혀 있는 상황이다. 국내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P2E 기능이 있는 게임은 등급분류를 받지 못해 내려받을 수 없고, 각 서비스 웹사이트나 월렛도 한국 IP는 접속을 차단하는 식이다. 해외에선 이미 상용화되어 수익을 내고 있는 돈 버는 게임들이 유독 한국에서만 그림의 떡이 되어 있는 셈이다.
# ‘바다이야기’ 이후 강화된 P2E 규제
이러한 제한의 배경에는 2000년대 중반 일어난 이른바 ‘바다이야기’ 사태가 있다. 2006년 발생한 바다이야기 사건은 성인용 경품 게임이 사회적 도박 문제로 번진 사례로, 이를 계기로 정부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을 제정하고 게임물관리위원회(당시 게임물등급위원회)를 설립했다. 이후 게임위는 게임 내 사행성 요소와 환전 행위를 강력히 규제해왔다.
게임산업법은 제28조 제3호 등에서 “경품 등 재물을 제공하여 사행심을 조장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고 있는데, 바다이야기 이후 모든 경품성 게임에 이 조항이 엄격히 적용되었다. 게임위는 P2E 게임의 NFT 보상이나 가상자산 환전이 바로 이 ‘불법 경품 제공’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 2021년 국내 한 게임사가 출시한 P2E 게임(파이브스타즈 포 Klaytn)에 대해 게임위는 “NFT 아이템을 이용자에게 귀속시키고, 이를 게임 밖에서 거래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행성을 조장한다”며 등급분류를 취소했다.
해당 업체가 행정소송으로 맞섰지만, 2022년 법원은 게임위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NFT를 제공하는 행위는 현행 게임법상 금지된 경품 제공에 해당하며, 법 개정 없이는 P2E 게임의 국내 서비스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NFT는 블록체인 특성상 이용자가 획득한 아이템을 현실 경제 가치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어, 이것이 활성화될 경우 사실상 환전 수단으로 기능해 도박성을 띨 우려가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게임위는 NFT를 바다이야기 당시의 ‘점수보관증(환전 티켓)’에 비유하며, 동일한 사행성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게임산업법상의 경품 금지 조항과 이를 집행하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엄격한 정책이 현재까지 국내 P2E 게임을 불허하는 핵심 근거다. 이로 인해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허용되거나 부분적으로 인정되는 블록체인 게임이 한국에서만 전면 금지되는 갈라파고스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 P2E 금지의 법적 근거
법률 측면에서 P2E·게임파이 금지는 앞서 언급한 게임산업진흥법의 사행성 규제 조항에 근거한다. 게임 내 재화(아이템, 포인트 등)를 현금이나 가치 있는 것으로 교환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사행성(도박성)을 원천 차단하는 취지다. 게임위는 등급분류 단계에서 이를 위반하는 모든 게임을 불승인 또는 취소하고 있어, 사실상 사전 차단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정식 서비스된 P2E 게임은 전무하며, 일부 시도를 했던 중소 업체들도 모두 등급 거부에 막혀 서비스를 포기하거나 해외로 눈을 돌렸다. 금융 규제 측면에서도 장벽이 존재한다. 블록체인 게임은 통상 암호화폐의 발행·유통을 수반하는데, 한국에서는 2021년 개정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및 자금세탁방지 의무가 부과된다.
즉, 한국인을 대상으로 암호화폐 지갑, 거래, 교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금융당국에 신고하고 요건을 갖춰야 한다. 위메이드의 사례에서 보듯, 이를 지키지 않고 국내에서 서비스를 했다가는 “미신고 사업자”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위믹스플레이 월렛은 싱가포르 법인 명의로 운영되었으나 국내 이용이 가능했던 탓에 당국 조사 대상이 되었고, 급기야 한국 시장 철수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위메이드 측은 이유를 공식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는 “미신고 가상자산 영업 의혹에 따른 조치”로 받아들였다. 이처럼 국내 규제를 회피해 해외 법인을 세워 운영하던 게임사들도, 기술적으로 국내 이용이 확인되면 법적 리스크에 노출되므로 결국 IP 차단, 한국어 미지원 등의 방어 조치를 취하는 실정이다. 정리하면 게임법의 사행성 조항과 특금법상의 가상자산 규제가 겹쳐 작용함으로써, 한국에서는 게임파이 서비스 전면 금지에 가까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와 규제 당국 입장에서는 사행산업으로 번질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고 투기 과열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다만 이러한 규제가 오늘날 블록체인 기술 발전 속도와 글로벌 트렌드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업계 안팎의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 규제로 인한 기회비용과 형평성 논란
엄격한 규제로 국내 P2E 게임 생태계가 봉쇄되면서, 여러 부작용과 기회비용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우선 국내 게이머들의 소외감이 크다. 예컨대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N은 글로벌 유저들이 플레이하며 토큰 수익을 얻는 동안, 정작 한국 팬들은 참여조차 못 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산 블록체인 게임들이 한국어를 지원하면서도 한국에서는 막혀 있다 보니, 일부 열성 이용자들은 VPN으로 우회 접속하는 실정이다.
이는 같은 게임을 두고 내·외국인 이용자 사이 형평성 문제로도 이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게이머들만 합법적으로는 돈 버는 게임을 못 한다는 게 아이러니”라고 토로했다. 산업적 기회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글로벌 P2E 게임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인데, 한국은 법적인 장벽 때문에 정식 비즈니스가 불가능하다.
그 결과 위메이드, 넷마블, 컴투스 등은 부득이 해외에서만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이는 세수와 일자리 등 경제적 효과가 국내에 머물지 못하고 해외로 유출되는 요인이 된다. 또한 블록체인 게임 기술 혁신에서도 한국이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미 일본 등은 제한적이지만 NFT 게임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미국 역시 규제보다는 자율에 맡겨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한국만 과도한 규제로 갈라파고스화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물론 일각에서는 P2E 게임의 부작용도 경계한다. 게임의 본질이 훼손되고 묻지마 투기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로 일부 해외 P2E 게임에서는 사기성 코인 발행이나 경제 시스템 붕괴 사례도 있었다.
국내 규제가 결과적으로 리스크를 차단함으로써 게이머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또한 NFT와 암호화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충분치 않은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현재로서는 당장 정책 변화 조짐은 뚜렷하지 않다. 다만 업계의 지속적인 요구와 해외 동향에 따라 규제 완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도 블록체인 게임 허용 여부를 놓고 공청회가 열리는 등 논의의 물꼬는 트이고 있다.
넥슨을 비롯한 대형 게임사들이 본격 뛰어든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규제와 혁신 사이에서 균형 잡힌 정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한국 게임업계는 당분간 안방에서 외면받는 블록체인 게임이라는 기묘한 상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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