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김효봉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새로운 정부가 가져올 많은 변화들이 있겠지만,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산업의 입장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것은 디지털자산 공개(ICO)와 다양한 서비스를 가능하게 할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이 아닐까 싶다. 2017년 12월 “국무조정실장 주재 관계부처 차관회의”가 발표한 ‘가상통화 긴급 대책’은 어떠한 법적 근거도 갖지 않으나 금융당국의 명시적 의사로서 사실상 존중돼 왔는데, 이러한 형태의 “암묵적인 금지 행위”는 2017년 이후 속절 없이 늘어나기만 했다. 페이코인 사태 이후 가상자산을 이용한 지급결제 서비스가, 델리오 사태 이후 가상자산을 집합해 운용하는 서비스가 각각 위 금지 행위에 추가됐다.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이 현실화되면 위 금지 행위에 포함돼 있던 서비스들을 라이선스를 받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어떠한 행위를 가상자산업으로 규율할 것인가 – 다른 말로는, 가상자산업의 라이선스 단위를 어떻게 유형화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앞으로 본 지면을 통해 블록미디어 독자들과 함께 국내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해외 각 국은 어떤 아이디어로 자국의 규제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함께 고민해보려고 한다.
그 첫걸음으로, 오늘은 얼마 전 발표된 영국의 암호자산 규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 정부는 2025년 4월 29일 「2025년 암호자산 관련 금융서비스 및 시장법상 규제활동 및 기타 규정 명령」 초안(이하 “암호자산 명령 초안”)을 발표하였다. 위 초안은 암호자산과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FSMA상 투자자산의 지위를 부여하면서, 동 법상 Regulated Activities Order(RAO)을 개정해 6가지 주요 암호자산 서비스를 새로운 규제대상 활동(Regulated activities)으로 지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① 암호자산 거래플랫폼 운영, ② 암호자산 매매(principal dealing), ③ 타인을 대리한 암호자산 거래(agent dealing), ④ 암호자산 수탁/관리(safeguarding or controlling), ⑤ 암호자산 거래 주선(arranging deals) – 암호자산 스테이킹 서비스를 위한 주선 포함, ⑥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등이 이에 해당한다.
좀 더 상세히 각 서비스(인가 유형)의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① 암호자산 거래플랫폼 운영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거래소의 거래 방식인 오더북 운영 방식 뿐 아니라, 주로 법인 전용 시장에서 사용되는 호가 요청 방식(RFQ), 자동 마켓메이커(AMM) 방식까지도 제3자 간 주문을 매칭하는 이상 플랫폼 운영에 해당하는 것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② 암호자산 매매(principal dealing)에는 자기 계정으로 암호자산을 사고파는 모든 행위가 포함되며, 마켓메이킹, 장외거래(OTC) 데스크 운영, 암호자산을 대여(렌딩)하거나 차입하는 행위까지 이 범주에 포함된다.
③ 타인을 대리하여 매매를 체결하는 행위에는 중개(brokerage)가 포함되며 고객과 상대방 사이를 연결해주며 거래 성사에 관여하는 모든 경우가 해당된다.
④ 암호자산 수탁·관리는 어떤 형태로든 타인을 위해 암호자산의 프라이빗키 또는 이전 통제권을 보유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즉, 개인키를 보관하거나, 멀티시그(MPC) 구조에서 복수 키 중 하나라도 단독으로 자산을 이동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면 ‘수탁’으로 간주된다. 예컨대 런던에 기반한 디파이(DeFi) 프로토콜이 스마트컨트랙트 풀에 사용자 ETH를 모으고 9개 중 5개 서명자가 해당 ETH를 이동시킬 수 있다면 그 5명이 모두 수탁관리자로서 규제대상이 될 수 있다.
⑤암호자산 거래 주선은 직접 자산을 취급하지 않더라도 거래 당사자들을 소개하거나 매칭시켜 거래 성사를 돕는 모든 형태를 광범위하게 포괄하고 있으며, 특히 암호자산 스테이킹 서비스를 위한 주선에는 고객의 암호자산을 락업하거나 재예치(re-hypothecate)하여 보상을 분배하는 모든 행위가 포함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⑥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련해 영국은 스테이블코인을 전자화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하면서 증권과 유사하게 투자자산으로서 규제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법안과 함께 공개된 정부의 정책 노트(Policy note)에 따르면, 현재 스테이블코인의 결제 활용도가 낮으므로 기존 전자화폐·결제 규제(EMRs, PSRs)를 적용하지 않고 당분간 금융서비스 규제를 통해 규율할 예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2단계 입법에서 단연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가상자산업의 유형을 분류하는 것이다. 기존 금융업 라이선스의 틀과 유사하면서도 입법의 공백없는 업 분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영국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본질적인 기능에 집중함으로써 명확하고 간결한 업 구분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영국은 2025년 말까지 FSMA의 입법을 완료하고 2026년 시행할 계획임을 밝혔는데, 최근 미국이 지니어스액트(GENIUS Act)의 상원 본회의 의결에 실패한 점을 감안하면 유럽연합에 이어 영국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암호자산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체계를 마련하게 될 가능성도 상당히 높아 보인다.
6월 대선이 끝나면 여의도에도 본격적으로 입법의 계절이 찾아올 것으로 생각된다. 해외 주요국들이 차근차근 자국의 가상자산 규제체계를 마련해가는 것에 발맞춰, 우리도 우리 시장의 실정에 맞는 규제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일 시간이다.
# 김효봉 변호사 약력
·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2009)
· 제51회 사법시험 합격(2009)
· 제41기 사법연수원 수료(2012)
· 미국 컬럼비아 법학대학원 법학석사 수료(2017)
· 금융감독원 디지털 금융혁신국(2022-2024)
· 금융감독원 가상자산감독국(2024)
김효봉 변호사는 10년 이상 금융감독원에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디지털금융 및 디지털자산 분야의 규제와 시장 실무에 모두 정통한 전문가다. 특히 금감원 재직 당시 가상자산이용자 보호법 및 하위 규정의 제정 지원, 디지털자산 거래소의 상장 관련 자율규제 마련 지원 등 규제 체계 구축에 주력해 왔다. 이러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현재는 법무법인 태평양(BKL)에서 블록체인, 토큰증권, 금융회사 인허가, 자금세탁방지 등 디지털자산 및 디지털금융 관련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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