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강련호 변호사] 2024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전통 금융시장 내에서 가상자산(디지털자산)의 제도적 수용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상장지수집합투자기구(ETF)를 통해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편입시키는 방안은 제도권 편입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일반 투자자에게 가상자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법상 ETF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가상자산 특유의 가격 변동성과 수탁의 문제, 유동성 확보 등에 대한 제도적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자본시장법 제234조에 따르면 상장지수집합투자기구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ETF는 기초자산의 가격 또는 이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수의 변화에 연동되어 운용돼야 하며, 해당 지수나 가격은 거래소 또는 금융위원회가 고시하는 시장에서 공정하게 형성되고, 투자자에게 매일 공표될 수 있어야 한다. 또 수익증권 또는 투자회사 주식의 환매가 허용돼야 하며, 해당 증권은 설정일 또는 설립일부터 30일 이내에 증권시장에 상장돼야 한다. 이와 함께 지정참가회사는 ETF의 설정 및 환매에 관여하고 시장에서 ETF 가격이 순자산가치(NAV)와 괴리되지 않도록 유동성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한편 ETF가 추종하는 지수는 증권지수이거나 증권지수 이외의 지수일 수 있다. 증권지수의 경우 구성종목이 10종목 이상이어야 하며, 특정 종목의 비중이 30%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구성종목 중 시가총액 기준 상위 85%에 해당하는 종목은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가총액 및 거래대금을 갖춰야 한다. 반면 증권지수 이외의 경우, 예를 들어 상품이나 외환 등을 기초로 한 지수는 해당 가격이 공정하게 형성되고 매일 신뢰 가능한 방식으로 발표돼야 하며, 공신력 있는 기관이 이를 산출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고려할 때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가 가능하려면, 먼저 가상자산이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본시장법 제4조 제10항은 기초자산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금융투자상품, 통화, 일반상품, 신용위험, 경제적·환경적·자연적 현상 등에 속하는 위험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가상자산은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지만, 경제적 현상으로 간주될 수 있고, 일정한 현금흐름이 발생하며 재산적 가치를 갖는다는 점에서 ‘경제적 현상에 속하는 위험’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해석에 기반해 가상자산 ETF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으나, 현재 금융당국에서는 가상자산의 경우 기초자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다.
또한, 가상자산 ETF가 추종하는 지수는 공정하게 형성돼야 하고 매일 공시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가격 또는 지수가 금융위가 인정하는 거래소나 이에 상당하는 시장에서 산출돼야 한다. 현재 S&P, CF Benchmarks 등 국제적인 지수산출기관에서 다양한 가상자산 관련 지수를 발표하고 있으나, 이들이 국내에서 ‘공정한 지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금융위원회의 명확한 해석과 고시가 필요하다. 최근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으며 시세조종 행위에 대한 제재를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금융위 고시 시장’으로 인정될 가능성도 있다.
가상자산 ETF의 설정을 위해서는 수탁 문제도 중요한 이슈다. 일반적인 ETF에서는 투자자가 납입한 금전으로 자산운용사가 기초자산을 매수하고, 그 자산을 신탁회사가 수탁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자본시장법 제103조는 신탁재산의 범위를 금전, 증권, 부동산, 무형자산 등으로 한정하고 있어, 현재 가상자산은 신탁재산으로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무적으로는 신탁회사가 직접 가상자산을 보관하기보다는, 가상자산 보관업체(Custody)에 위탁하고 그 보관증서를 수탁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장기적으로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가상자산을 명시적인 신탁대상 자산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제도 정합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ETF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유동성 공급이다. 이를 위해 주식 등 ETF에서는 지정참가회사가 ETF의 설정과 환매에 참여하고, 시장 가격과 순자산가치 간의 괴리를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가상자산 ETF의 경우에도 지정참가회사가 자산운용사와 협력하여 가상자산을 매수하거나 환매 시 현금화하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경우 증권회사나 가상자산사업자가 지정참가회사로 등록하여 직접 참여하는 방식을 고려될 수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증권회사의 가상자산 매매가 어려우므로 지정참가회사 요건을 일정 부분 완화하거나, 새로운 유형의 참가자를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설계가 필요하다.
가상자산 ETF는 제도권 금융시장 내에서 가상자산의 신뢰성과 투자 접근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자산 해석의 확장, 신탁제도의 정비, 지수요건의 명확화, 지정참가회사 요건의 유연화 등 종합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 강련호 변호사 약력
· 고려대학교 행정학과·경제학과 졸업(2011)
·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2014)
·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 졸업(2020)
· TSMP Law corporation(싱가포르) 파견(2022-2023)
· 자금세탁방지전문가 (CAMS)(2022)
· TPAC 시험 출제 및 검토위원(2024)
강련호 변호사는 법무법인 세종의 파트너 변호사로서, 금융규제·인허가, 금융회사 제재, 디지털금융, 가상자산, 자금세탁방지 분야의 전문가다. 특히 2018년부터 2024년까지 금융위원회에서 은행, 금융분쟁대응, 금융그룹감독, 금융정책 등 다양한 부서에서 근무했다.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는 가상자산사업자, 전자금융업자 등에 대한 자금세탁방지 제도 설계와 감독을 담당했다. 현재는 국내외 금융기관 및 핀테크·가상자산 기업들을 대상으로 활발한 자문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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