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박재형 특파원

요즘 한국 정치권은 선거법 개정, 이른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각 당의 입장 차이로 극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와 같은 논란은 결국 선거의 공정성, 투표를 통한 유권자 의사의 반영 문제 등이 그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각 주의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한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 수 전체를 가져가는 “승자 독식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계속되는 선거제도 관련 논란은 유권자의 투표가 선거의 공정한 결과, 나아가 실제적인 정책적 결과로 반영되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 정부와 시민사회들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보다 투명한 정부와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정치과정에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것에서 현재 단연 진전된 분야는 블록체인을 이용한 투표라고 할 수 있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반면, 선거의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블록체인 선거에서는 각 투표가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변경할 수 없다. 또한 그 결과는 일반 대중들이 안전하고 정확하게 즉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는 2018년 6월 예비선거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인터넷 투표를 미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했다. 이 지역에서는 유권자의 얼굴을 인식해 정부 발급 신분증 사진과 일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보츠(Voatz)라는 모바일 투표 플랫폼을 이용해 해외 거주 유권자들의 부재자 투표를 실시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시의회는 지난 2월  전자투표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시의회 측은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 덕분에 유권자의 개인정보와 투표 결과를 별도로 관리할 수 있으며, 선거부정 방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사이버 보안 기업 카스퍼스키랩이 개발한 폴리(Poly)라는 블록체인 전자투표 시스템을 이용해 사라토프주에서 4만명이 참여하는 지방선거를 성공리에 실시한 바 있다.

외신들을 보면, 이외에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을 선거에 도입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초 태국 국립 전자컴퓨터기술센터는 블록체인 전자투표 시스템 개발을 발표했다. 일본 스쿠바시의 경우 이미 지방 선거에서 블록체인 투표를 실시했으며, 선거 뿐 아니라 의료 등 여러 사회복지 프로그램 등에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차원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투표 방법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웹루츠 데모크러시’(WebRoots Democracy, https://webrootsdemocracy.org/)는 기술과 민주적 참여의 교차점에 초점을 맞춘 청년 주도형 싱크탱크다. 이곳의 아릭 초드리 대표는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들이 영국의 현대화, 강화, 그리고 미래에 대비한 민주주의를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온라인 투표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에 초점을 맞춘 ‘크라토스 프로젝트’(Cratos Project)를 운영하며, 온라인 투표 시스템의 향상과 세계적인 보급에 노력하고 있다. 웹루츠 데모크러시는 최근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투표 시스템 개발, 평가 등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 도쿄대 전기공학 및 정보시스템학부 연구팀의 논문 “블록체인 기반 전자 투표 시스템”에서는 블록체인 기반 투표의 장점으로 전체 데이터베이스 저장 노드가 완전히 분산됨에 따라 기존 데이터에이스에 비해 높은 가용성, 누구나 해시를 계산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검증 가능성, 모든 블록은 재계산되어야 하기 때문에 체인의 오래된 값을 변경하기 어려운 무결성 등을 들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투표의 기반을 이루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관련 논의가 더욱 구체화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 기술에 관심이 높다. 블록체인이 처음 세상에 소개된 이후 가장 발전적이고 혁신적인 기술로 평가되는 이더리움과 스마트 계약 기술은 블록체인에 대한 제한적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됐을 뿐 아니라 블록체인의 활용 가능성을 크게 확장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터키 도쿠즈에일룰대 컴퓨터공학과 연구팀의 논문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이용한 전자 투표”에서는  전자투표를 위한 시도가 증가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선거의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 기능을 제공하지 못하거나 확장성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 기술 기반의  전자 투표 솔루션은 유권자의 개인정보 보호, 투표의 무결성, 검증, 개표의 투명성 등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블록체인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속성도 있다. 예를 들어 유권자의 인증은 생체측정 요소의 사용과 같은 추가적인 통합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즉 블록체인을 이용한 투표가 흔히 논의되는 것보다 엄청나게 광범위하고 규모가 큰 네트워크를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상의 디지털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이라는 개념을 가진 오늘날의 연결된(Connected) 세상에서는 기존 컴퓨터 뿐 아니라 수 많은 비컴퓨터 기기들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다. 현재 블록체인의 사용적합성 확대를 위해 스마트폰 등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계속 개발하고 있지만, 전화와 태블릿 뿐 아니라 에어컨, 자동차, 가구, 옷, 냉장고, 텔레비전 및 많은 일상의 물건들이 인터넷에 직접 접속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투표 측면에서 이렇게 큰 네트워크와 예비 처리 능력이 있을 때 이를 바탕으로 탈중앙화 시스템을 구축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모든 기기가 하나의 블록체인에서 트랜잭션의 유효성 확인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그리드로 함께 작동한다면, 투표 외에도  대부분의 온라인 트랜잭션을 이론상 뿐 아니라 실제로도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선거에 블록체인을 사용한다는 아이디어가 실험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안전하고 검증된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모바일 투표는 부정선거 가능성을 없애면서 투표율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선거 관리에 있어 선거 과정의 투명성을 유지하고, 선거 비용을 최소화하며, 개표 과정을 간단하게 만드는 등 선거 전반에 많은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 국립과학공학의학아카데미(NASEM)는 지난해 가을 발간한 보고서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아직 선거에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의 저자들은 “블록체인을 이용한 투표가 유망해 보일지라도 이 기술은 선거에서 근본적인 안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미 세계 여러 국가들, 지방정부 등에서 블록체인을 이용한 투표를 시도하고 있으며,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블록체인 투표를 그동안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블록체인 투표는 이제 막 첫걸음을 시작하려는 단계로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성급함 보다는 보다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와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다음회 주제: 블록체인 투표의 한계와 해결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