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박현재] 블록체인의 특성 중 하나는 바로 무신뢰성(Trustless)다. 무신뢰성은 누군가를 신뢰할 필요 없이 결과가 타당한 것을 검증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는 뜻이다. 실시간 모든 트랜잭션은 모두에게 공개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 블록체인의 장점이다.
이 특성을 바탕으로 블록체인은 은행과 같은 중개자 없이 송금하고, 스마트컨트랙트로 거래를 성립시키는 새로운 웹3(Web3) 질서를 개척하고 있다.
# 검증 불가능한 외부 연산의 문제
하지만 무신뢰성을 가진다고 해서 모든 것을 검증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대부분의 블록체인 디앱은 외부 데이터를 활용하거나 복잡한 연산을 다룰 때는 검증 가능한 신뢰의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서 디파이(DeFi) 플랫폼의 AMM, 리퀴드 풀, 렌딩과 같은 핵심 기능은 무신뢰성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유저 액티비티에 따른 포인트, 에어드랍이나 리워드 분배는 복합적인 기준으로 수많은 유저에게 분배된다. 예치 기간, 토큰 가격의 변동성, 참여 시점, 스테이킹 금액 등을 반영해야하기에 순수하게 온체인으로 연산하는 것은 소요 비용과 시간이 매우 크다.
따라서 대부분 플랫폼은 오프체인에서 위와 같은 과정을 계산한 뒤 결과만 온체인에 따라 입력한다. 그러다보니 사용자는 어떤 기준에 따라 보상을 받았는지 알기도 묻기도 어려운 구조다.
# 오프체인 의존이 부르는 신뢰의 모순
디파이를 포함하여 웹3 게임, 멀티체인 데이터 처리처럼 복잡한 계산은 블록체인 외부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사용자는 결국 프로젝트의 오프체인 계산을 믿어야만 한다. ‘무신뢰성’을 기반으로 한 블록체인이, 중요한 계산과 판단을 프로젝트가 진행하는 오프체인이라는 외부에 위임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설령 대부분의 결과가 옳다고 해서 무신뢰성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정답이 도출되는 과정까지 전부 검증 가능해야만 신뢰가 필요 없는 블록체인이 완성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여전히 블랙박스를 믿어야 한다.
# 리스크제로, 무신뢰성 검증을 위한 도전
이 같은 블록체인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계산 결과를 믿지 않고도 그것이 정직하게 수행된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프로젝트가 바로 리스크제로(RiscZero)다.
블록체인이 웹2 수준의 속도와 확장성을 얻으면서 경제성과 무신뢰성을 전부 얻는 것은 블록체인 트릴레마 특성에 따라 달성하기 어렵다. 그러나 리스크제로는 모든 계산이 온체인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기존 전제를 뒤집었다. 계산은 어디서든 실행될 수 있다. 단, 결과가 올바르게 도출되었음을 수학적으로 검증하면 된다고 믿었다.
리스크제로는 이를 ZKVM(Zero-Knowledge Virtual Machine, 영지식 가상 머신)을 통해서 실현하려 한다. ZKVM은 특정 계산 과정을 공개하지 않아도 결과가 타당한 과정을 통해서 도출된 것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내가 받은 에어드랍이 재단이 공개한 공식에 따라 분배되었다는 것을 하나하나 뜯어보지 않아도 ZKVM을 통해 타당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ZKVM은 실제 CPU에서 사용하는 범용성과 확장성을 갖춘 명령어 체계 RISC-V를 채택했다. 따라서 일반 프로그래머들이 친숙한 러스트(Rust)나 C 같은 언어로 작성한 프로그램이 ZKVM과 호환된다. 여기서 실행된 프로그램은 단순히 결과값만 출력하지 않는다. 결과값과 함께 일종의 영지식 증명서를 생성한다.
이 영지식 증명서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실행됐는지(고유 식별 해시) △어떤 입력값이 사용됐는지 △어떤 출력이 나왔는지 △이 계산이 올바르게 수행됐다는 수학적 증명 과 같은 정보가 담긴다.
만약 내가 1+1을 계산하면 2라는 결과에 더해서 ‘A라는 프로그램에서 1+1을 넣어서 나온 결과이며, 중간에 조작이 없었음’이 수학적으로 검증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증명은 누구나 검증할 수 있다. 어떤 체인에서든 이 영수증만 있으면 수학적으로 유효성을 검증할 수 있다. 따라서 ZKVM을 도입하면 모든 계산을 직접해 볼 필요 없이 증명서만 검토해 결과의 무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RISC-V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개발자가 ZKVM 위에서 러스트나 C로 코딩, 빌딩, 실행하면 자동으로 영지식 영수증이 찍힌다. 따라서 기존 온체인 상에서 실행되는 ZK보다 확장성과 유연성도 높다.
# 바운드리스: 다양한 블록체인으로 증명을 전달
여기서 리스크제로가 ZKVM을 통해서 오프체인 상의 계산 결과에 무신뢰성 영수증을 만들었다면, 특정 블록체인이 그 영수증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리스크제로는 이 과정을 쉽게 진행할 수 있는 별도의 컴포넌트 바운드리스(Boundless)를 개발했다.
바운드리스는 ZKVM에서 생성한 영수증을 다양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제출하고 검증하는 중간 계층 네트워크(Middle Layer Network)다. ZKVM의 계산 결과를 체인 상에서 직접 검증할 수 있는 증명 전달 시스템을 구성했다.
바운드리스의 기본구조는 다음과 같다.
- 사용자는 zkVM을 통해 어떤 계산을 오프체인에서 실행한다
- 계산과 동시에 영지식 증명이 포함된 영수증이 생성된다.
- 이 영수증은 바운드리스 네트워크를 통해 특정 블록체인에 제출된다.
- 해당 체인에 배포된 검증용 스마트 계약은 영수증의 유효성을 수학적으로 검증한다.
- 결과값(출력 데이터)은 체인의 스마트 계약 로직에 따라 반영된다.
이더리움에서 바운드리스의 적용 예시, RiscZero
이 과정을 통해 블록체인은 직접 계산하지 않고도 지정된 코드와 입력값으로 실행된 결과임을 검증한 뒤 받아들일 수 있다. 복잡한 계산은 오프체인으로 넘기고 온체인의 신뢰 수준은 유지하게 된다.
이처럼 바운드리스는 ZKVM이 생성한 영수증을 원하는 체인에 제출하여 검증하고 그것을 다시 디앱에 반영하는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하는 레이어다. 그리고 바운드리스는 특정 체인에 종속되지 않고 다양한 블록체인과 연동 가능하다.
디파이에 ZKVM과 바운드리스를 접목하면 다음 과정을 거친다. 복잡한 에어드랍 계산 로직은 ZKVM 기반 오프체인에서 실행되고 동시에 코드에 따라 정확히 수행되었다는 영수증을 생성한다.
이 영수증은 바운드리스 네트워크를 통해 자동으로 블록체인에 제출되고, 해당 체인에 기배포된 검증용 스마트 컨트랙트가 이를 검증한다. 짧은 검증 후 타당하다는 것이 밝혀지면 온체인 상으로 보상이 지급된다.
# 속도와 신뢰를 동시에 확보하는 새로운 표준
이 방식은 계산을 온체인에서 직접 실행하지 않기 때문에 가스비는 낮추고, 계산의 정당성은 수학적으로 보장 받을 수 있다. 플랫폼 운영자는 “우리는 서버에서 이렇게 계산했다”는 설명이 아닌, “이 계산은 저 코드로 정직하게 수행됐고, 블록체인이 그 증명을 직접 확인했다”는 구조적 신뢰를 제공할 수 있다.사용자도 이 결과가 공정하게 도출된 것임을 영수증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블록체인 신뢰성과 확장성의 균형점
블록체인은 확장성, 보안성, 탈중앙성이라는 세 가지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다양한 기술적 시도를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복잡한 계산은 종종 오프체인으로 밀려났고, 그 결과의 신뢰성은 플랫폼이나 운영자에 대한 암묵적 신뢰에 의존해왔다.
리스크제로가 제안하는 구조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ZKVM을 통해 계산의 무결성을 증명하고, 바운드리스를 통해 이를 온체인에 안전하게 전달함으로써, 계산은 오프체인에서 유연하게 처리하되, 신뢰는 온체인에서 확보하는 방식을 구현한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처리 속도나 비용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블록체인이 다룰 수 있는 로직의 범위 자체를 넓히는 실용적인 확장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모든 계산을 체인 위에서 실행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그러면서도 그 결과에 대한 신뢰는 유지되는 구조로 리스크제로는 이 균형점에 실용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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