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이 선보이면서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야기된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 많은 이들은 중앙집중화된 권력과 정보가 얼마나 많은 불합리성을 낳고, 그에 따른 병폐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금융시장의 탈중앙화 욕구는 더욱 커졌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출현한 블록체인은 이제 인류 사회 전분야에 스며들며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과거 역사나 현대사를 조명할 때 정치·경제·사회란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맨 먼저 언급된 “정치”란 단어는 그 행위와 함께 우리 생활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되어왔습니다. 최근에는 블록체인이 금융 뿐 아니라 정치 전반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며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시대가 이끌 정치적 환경 변화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고, 또 우리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지를 블록미디어 박재형 특파원이 “블록체인과 민주주의”란 주제로 고민해 봅니다. [편집자주]

[뉴욕 =박재형특파원]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 연구소의 이토 조이치 소장은 “인터넷이 정보를 제공했다면 블록체인은 신뢰를 제공할 수 있다. 인터넷이 그랬듯이 블록체인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다.

이 표현처럼 블록체인은 인터넷으로 아직 이루지 못한 변화를 정치의 영역에서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하나의 중앙집중형 권력이 통제하는 전통적인 거버넌스가 아닌 탈중앙화 됨으로써 권력과 책임이 분산된 블록체인 거버넌스는 어찌 보면 수천년 동안 이어져 온 인류의 정치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세계 각국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아닌 민간 조직들을 중심으로 블록체인 민주주의를 향한 새로운 시도가 지금 이 시간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는 2018년 6월 예비선거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인터넷 투표를 미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했다. 이 지역에서는 유권자의 얼굴을 인식해 정부 발급 신분증 사진과 일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보츠(Voatz)라는 모바일 투표 플랫폼을 이용해 해외 거주 유권자들의 부재자 투표를 실시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초기 단계 기술 실험을 주목적으로 하는 만큼 새로운 방식의 투표에 유권자들의 참여는 저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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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주의 주도 덴버(Denver)시도 올해 5월 지방선거에서 블록체인 기술 기반 스마트폰 앱을 이용할 계획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전문가들은 선거에 블록체인을 사용한다는 아이디어가 실험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우선 안전하고 검증된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모바일 투표는 부정선거 가능성을 없애면서 투표율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선거 관리에 있어 선거 과정의 투명성을 유지하고, 선거 비용을 최소화하며, 개표 과정을 간단하게 만드는 등 선거 전반에 많은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 국립과학공학의학아카데미(NASEM)는 지난해 가을 발간한 보고서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아직 선거에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의 저자들은 “블록체인을 이용한 투표가 유망해 보일지라도 이 기술은 선거에서 근본적인 안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아직 초기 단계이고, 평가도 다르지만 블록체인을 정치 영역, 특히 선거에 도입하려는 시도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차원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투표 방법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블록체인 투표를 포함하는 이른바 ‘블록체인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흔히 블록체인 투표가 주는 이점으로 투표 과정의 부정 방지, 투명성 제고, 비용 절감, 절차 간소화 등을 들고 있지만 각국 정치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정치 참여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이용으로 대중의 정치 참여 확대를 기대하는 것은 단순히 발전된 온라인 투표 방법이 유권자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해서 투표율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한국, 미국 등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정치 무관심 또는 정치 불신 현상은 투표의 불편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행사하는 권리가 제대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정치적 무력감 또는 정치적 소외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선거 과정에서의 이점을 넘어 유권자들의 이러한 의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적, 제도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블록체인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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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서스카인드는 “첨단 디지털 기술은 소비자로서 뿐만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21세기에 디지털은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도라 코스타코풀루는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은 무한대의 구성원들 사이에 포괄적이고 안전하며 투명한 데이터 공유 메커니즘을 제공함으로써 참여 시민의 개념과 성격을 변화시킬 것을 약속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점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정치에 도입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투표율을 높이거나 특정 정치세력에 유리할 수 있다는 등의 단편적 또는 정파적 인식에서 이를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만을 초래할 수 있다. 블록체인 민주주의와 관련된 현실과 미래에 대해 보다 깊고 폭넓은 이해와 고민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