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문정은 기자] ‘블록체인’만 육성하겠다는 정부 기조 아래 암호화폐 산업은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다. 정부는 퍼블릭 블록체인 개발, ICO(암호화폐 공개), 암호화폐 기반 서비스 등 암호화폐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항들을 외면하고 있다.

모두에게 네트워크 참여가 개방돼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은 일반인들의 참여를 끌어들여야 생태계가 운영된다. 이 때문에 보상 수단이 필요하고, 암호화폐가 그 역할을 한다. 개발 회사 입장에서는 스스로 경쟁력을 증명하고 좋은 서비스를 만들면서, 보유한 암호화폐 가치를 높여 일반 참여자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일반인들이 블록체인 서비스에 참여해 보상으로 해당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암호화폐 보상 경제 시스템을 시장에서는 ‘토큰 이코노미’라고 부른다.

업계에서는 ‘암호화폐’가 중앙화, 권력집중 경제 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개발된 (퍼블릭) 블록체인을 작동시키는 핵심 동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정부의 근시안적 태도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들이 ICO를 못하게 되면서 퍼블릭 블록체인 개발을 시도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야 경제서인 ‘넥스트 머니’의 저자 이용재 작가는 “블록체인의 효용성과 수익성을 100% 끌어내기 위해서는 암호화폐를 활용한 보상이 필수”라며 “민간 기업들의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성장하면서 그 혜택이 해당 암호화폐를 보유한 사람들 또는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가는 방향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ICO 막혀 스타트업 살아남기 힘든 구조

특히 ICO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스타트업들은 자금 유치가 어려워져 살아남기 힘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내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자금력이 없는 관련 스타트업들이 비즈니스를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이들은 국내에서 ICO를 할 수 없으니 엔젤투자를 받는 등 우회적으로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정부 검증을 통과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한 블록체인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여전히 부정적이고, 암호화폐에 대한 판단 기준도 모호해 관련 스타트업이 정부 지원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많다”며 “이 때문에 많은 스타트업들이 법인 자체를 싱가포르나 홍콩에 설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금이나 세제 지원 등도 결국 정부가 승인하는 블록체인기술 개발 업체에게만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들이 사라지고, 자본력을 가진 대기업 위주의 경제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블록체인 업체 관계자는 “월드와이드웹(www)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인터넷 기업들이 급성장했지만 지금처럼 정부는 사업 운영에 제재를 취했다”며 “당시 한국 기업이 구글을 뛰어넘는 잠재력을 지녔음에도 정부 규제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재 관련 스타트업들은 자금 창구가 막혀 있고, 운 좋게 ICO를 해 자금을 모은 스타트업들은 암호화폐를 활용한 사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시간과 비용을 소비하고 있다”며 “시간이 지체되면 결국 자금력이 충분한 대기업들 가운데 내부적으로 블록체인 사업을 준비한 기업들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해외 금융플랫폼에 잠식될 것

해외 상황은 국내와  전혀 다르다. 전 세계 이용자를 대거 보유하고 있는 페이스북 등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부터 세계 최대 커피 체인점인 스타벅스에 이르기까지 ‘암호화폐’를 활용한 핀테크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최근 체인파트너스 리서치센터가 발간한 보고서는 스타벅스 ‘모바일 앱’에 주목했다. 모바일 앱 내 선불충전서비스(스타벅스 카드서비스)를 통해 모인 고객 예치금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월스트리트저널과 S&P 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 조사를 인용해 “2016년 스타벅스 예치금은 12억달러 (한화 약 1.3 조원)로, 이는 미국의 웬만한 중소은행 예치금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스타벅스는 자사 예치금을 은행 사업을 통해 수익화시키고자 할 것이고, 전 세계 통화 다양성 등의 제약을 ‘비트코인’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스타벅스가 단순히 비트코인 결제를 가능케 하는 수준이 아니라 ‘비트코인 금융 플랫폼” 구축 작업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한중섭 체인파트너스 리서치 센터장은 아마존 등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에 국내 데이터 주권을 잃어가는 상황과 관련 “한국이 향후 5년 내 글로벌 블록체인 기업을 키워내지 못하면 비슷한 상황이 그대로 재현될 것”이라며 “해외 플랫폼에 국내 소매 금융시장이 서서히 잠식될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그 때 블록체인 식민지가 다국적 기업에 뺏기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용재 작가 또한 “2020년부터는 글로벌 ICT 기업들과 월가 금융회사들을 필두로 블록체인 상용화 및 자체 토큰 발행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민간기업에서 생성된 암호화폐 기반 이코노미가 경제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러한 기업 중 일부는 전 세계적으로 커질 것이고, 이를 이끄는 기업들을 많이 보유한 국가가 차세대 패권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 “정부, 암호화폐 투자 숨통 열어줘야”

업계에서는 블록체인 기술 육성과 동시에 시장에서 암호화폐를 활용하고 투자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한 관계자는 “닷컴버블 때도 투자가 너무나 활발해 투기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시장에서 옥석 가리기가 진행됐고 그래서 네이버와 같은 기업들이 나온 것”이라며 “블록체인 산업에서도 정부는 우선 자본이 투입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되 사기사건 등 문제가 발생하면 제재를 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재 작가도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 개발 업체에 모험자본이 적절하게 투입될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특히 제도권 금융회사들의 암호화폐 투자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기 우려에 대해 그는 전문 투자자를 시작으로 점차 일반 투자자들로 확대될 수 있는 단계별 투자 방식을 제시했다. 이 작가는 “이미 홍콩에서는 자산운용사들이 암호화폐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 기관투자자들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고 있다”며 “기관투자자들은 선점 효과를 가져갈 수 있는 동시에 위험도 안게 되지만 시장이 성숙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관투자자들이 기존 경험을 토대로 암호화폐 투자에 나서면서 ‘암호화폐용’ 투자 전략, 파생상품 생성 등 양질의 정보들을 추출해 낼 수 있고, 이는 시장을 성숙하게 만들 것이란 시각이다.

ICO 자금조달 부분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법정관리처럼 조달한 자금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외부 기관을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당장의 제도화나 규제가 어렵다면, ICO를 한 업체들의 자금을 제3자 외부 기관에 예치해 자금 운영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이는 적어도 페이퍼컴퍼니를 걸러낼 수 있을 것이며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도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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