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문정은 기자] 은행들이 벌집계좌 암호화폐 거래소들을 옥죄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암호화폐 거래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투명하게 운영하는 벌집계좌 중소 거래소들에게는 선별적·순차적으로 ‘가상계좌(실명확인 가상계좌)’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벌집계좌를 사용하는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암호화폐가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규정되면, 거래에 있어 투명성은 필수전제 조건이 된다. 책 <넥스트머니>를 쓴 암호화폐 전문가 이용재 씨는 미국을 비롯해 금융 선진국들은 암호화폐를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산(assets) 또는 증권(securities)로 규정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해당 자산이 거래되는 거래소 역시 금융회사에 준하는 책임과 의무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실제 벌집계좌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얼마나 사고 위험을 안고 있는지는 그간의 투자자 피해로 알 수 있다. 벌집계좌를 통해 쉽게 원화 입출금 시장을 연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덤핑과 펌핑으로 시세를 조작해 투자자 피해를 초래하거나 자극적인 이벤트를 열어 단기 수익 목적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빈발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은행들은 지난해 초 정부가 내놓은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나인빗 포함 일부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의 벌집계좌를 회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금융당국도 벌집계좌 단속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중점 입법 과제로 8개 법안을 제시했다. 금융 8법에는 지난해 3월 제윤경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특금법 개정안도 포함됐다. 이달 임시국회가 본격 가동되면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첫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고 ‘금융 8법’ 법안 논의를 시작했다.

업계는 오는 7월 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FATF)의 현지 실사 방한 일정에 맞춰 금융당국이 특금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제 의원의 특금법 개정안은 암호화폐 거래소(가상통화 취급업소)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상호 및 대표자의 성명 등을 신고하도록 하고, 암호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 등 의심 거래가 발생하면 곧바로 FIU에 신고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히 자금세탁방지 의무가 거래소에 주어진다는 내용이 암호화폐 거래소의 실명계좌 운영과 관련돼 있는 부분이다. 국내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실명계좌를 이용해 자금 출처를 알아야만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실행할 수 있다”며 “특금법이 실제 시행되면 벌집계좌로 영업했던 곳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배경으로 업계는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등 이미 가상계좌를 발급받은 4곳을 제외한 중소거래소들의 원화 입출금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특히 보안이나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중소 거래소들은 금융권에서 영업 신고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특금법 개정안이 암호화폐 시장에 필요한 조치라는 부분에 공감은 하지만, 특금법 개정안의 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용재 암호화폐 시장 전문가는 “기존 벌집계좌 사용 거래소들의 투명성을 측정하는 것이 먼저”라며 “이후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서비스 발급 및 관리’ 에 대한 요건을 마련해 선별적으로 가상계좌를 발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전처럼 무분별한 선(先) 제재-후(後) 조치는 미국 등 글로벌 선진 국가들과 ‘혁신’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도 “기존 벌집계좌를 이용해왔던 거래소 가운데 일부 요건을 충족한 거래소에는 가상계좌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전환 과정이 없으면 암호화폐 시장을 죽이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금법 시행으로 암호화폐 시장이 받을 충격을 막고자 중소 거래소들에게는 ‘신고 유예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 신고제가 실제 효력이 생긴다면, 중소 거래소들이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과 자금세탁방지 관련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도록 기간을 줘야 한다”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거래소를 제대로 운영할 의지가 있는 곳만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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